한국학 캠퍼스
내 속에 새겨진 너, 네 속에 새겨진 나
  푸른 뱀의 을사년 하반기에 접어들고 있고, 졸업식도 함께 다가온다. 이번 한국학대학원 졸업식에 나는 당당하게 석사 과정 졸업생으로 참석한다. 입학 후 졸업까지의 긴 여정, 나는 어떻게 올 수 있었을까?
1. 나의 길 찾으려고
  2018년 시간을 거슬러 누군가가 18살이었던 나, 올가(Olga Barbara MLYNARZ)에게 ‘당신은 7년 후에 한국으로 유학을 가서 문학 석사로 졸업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는 한국어 공부조차 시작하지 않았으니, 더욱이 한국말로 했으면 분명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2년 폴란드 브로츠와프 대학교에서 한국어학 학사를 졸업한 22살인 올가에게 같은 말을 했다면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지금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 나는 아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2년 동안 공부한 25살 올가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 그리고 언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다. 폴란드어는 표현력이 많은 언어임에도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은 또 다른 길로 흘러나가며 표현되고 싶어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고 싶은 또 다른 길이 한국어였던 것 같다.

[그림 1] 2023년 2학기 한국학대학원 입학식 사진
2. 이 길을 따라가면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많았다. 폴란드에 있는 가족들, 언제나 내게 힘을 주던 그리운 친구들과 떨어져 있게 된 데 따른 외로움, 은행·병원·행정복지센터 등에 가면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 나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존재로 인식하는 듯해 보이는 상대와의 거리감 등이 내게는 힘들었다.
  다만, 상상할 수 없었던 즐거움도 셀 수 없을 만큼 가득했다. 대학원 내 학과 친구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느끼는 동질감, 사소한 행복이더라도 함께 기숙사 주방에서 만나 아침밥 또는 저녁밥을 먹을 때 느끼는 생활 속의 따뜻함, 그리고 내가 동경하고 감탄하는 문화 속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설레임, 바닷가에서 석양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동경.... 또한, 한국 문학에 더 깊게 빠져들며 더욱 커지는 애정. 이 모든 다양한 감정들은 가끔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 코 박고 읽었던 책들, 책 속에는 정말 다른 세상이 있는 줄 알았었다. 그렇지만 나는 석사 논문을 쓰면서 한국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더욱 다양한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됐다. 말로는 표현을 조금 다르게 하지만 마음으로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뭔가 새로운 세상이다. 이 세상 속으로 이끌리는 이 길은 한국과 폴란드를 밀착시키는 붉은 동백꽃과 양귀비꽃 길인 것 같다.

[그림 2] 대학원 동기들, 신정수 교수님과 함께 한 사찰 답사 사진(2024. 5.)
3. 하오개로 323
  이 위대한 상상과 추억 속을 잠시 벗어나 현실을 돌아본다.
  2023년 8월, 한국학중앙연구원 캠퍼스를 보자마자 ‘여기가 내게 딱 맞는 곳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산 속에 위치하고, 자연과 가깝고, 당시 ‘조선시대 서원에서 공부했던 양반들이 이런 환경에서 공부했었나?’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다만, 위치와 풍경도 중요하지만 대학원이니만큼 무엇보단 중심은 교육이라 생각했다. 원래 학부에서 한국어학과 공부했던 나같은 사람에게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학교로 보이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내게는 참 좋은 선택인 것은 분명했다.
  글로벌한국학부 교수님들 덕분에 다양한 수업 중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골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국문화 수업 때 한국의 문화를 영상으로 발견하는 법, 작은 것에도 큰 의미가 숨겨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신정수 교수님, 언어학 수업을 통해 한국어의 역사와 구조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보여 주신 연재훈 교수님, 연구를 할 때 두 개의 상반된 논리의 중요성을 보여 주신 우정연 교수님, 세상은 생각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전성호 교수님, 그리고 심리학 수업 때 다문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주신 소원현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강의를 듣고 즐기면서 모든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바로 학위 논문을 써야 할 시간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처음 입학했을 때는 현대 교육 문제점과 그로 인해 겪는 청소년들의 어려움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쓸 계획이었지만, 결국 그렇게 주제를 정하지 않았다. 아니, ‘않았다’ 라기보다 ‘조금 바뀌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결국 석사 논문으로 한국 청소년 소설을 영어로 번역했다. 이 소설은 어느 정도 교육제도나 현대인의 어려움을 소설 속 이야기로 잘 담겨졌는데, 무엇보다 이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한국인에게 힘을 주겠다’라고 생각하다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힘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 소설을 폴란드어로도 꼭 번역해보고 싶다.
  논문을 쓰는 기간은 참으로 내게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시간적 압박, 같은 문단을 쓰고 또 다시 쓰면서 완벽하게 내가 표현학좌 하는 내용을 담는 것, 결국 논문 심사 때 긴장감에 떨려도 발표를 잘 해내야 하는 것.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결국 낙과 졸업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의 고생은 아니었다. 나를 응원해주고, 내가 방황할 때마다 바로잡아 주신 지도교수, 논문을 읽고 나서 소중한 의견을 남겨 주신 심사위원들, 그리고 항상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내 학우들도 정말 나와 고생을 함께 했다.
4. 한 길이 끝이 나면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

  이제 곧 폴란드로 돌아갈 날이 코앞이다. 인생이 기나긴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한국에서 지냈던 2년은 그 긴 여행의 아주 작은 일부지만, 이 시간의 흔적이 오랫동안 계속 지속될 것 같다. 내 마음에 새겨진 이 시간의 흔적처럼, 한국학대학원에서 내가 학생으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친구로서 누군가에게는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폴란드에 돌아가서 무언가 새로운 흔적을 더 남기고 싶어하는 것을 인정한다. 어떤 흔적이냐면 한국 청소년 문학의 문을 열어주는 번역가로서, 학생에게 한국을 조금 더 이해시키는 좋은 선생으로 남고 싶다.
  지금, 한 길의 끝이 조금씩 보인다. 하지만 이 길 넘어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바라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일 것이다. 그 넘어서는 더 다른 길과 길. 이 길들이 어디로 나를 이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머리보다는 심장으로...
그래서 당분간은 내 심장 속 뜨거운 열정의 반은 한국에 살짝 두고 간다. 잠시 폴란드에 남겨진 내 뜨거운 열정의 반을 느끼기 위해.
이만 줄이겠다.

[그림 3] 끝이 보이지 않지만 내게는 두렵지 않은 머나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