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클럽

"작은 비판과 비난을 웃으며 수용할 수 있는 담대한 마음가짐을 가지십시요"

이번 ‘한국학 클럽’ 코너에서는 경기도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 김윤기 과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Q1. 안녕하세요, 온라인 소식지 독자들(17,000여명)을 위해 간략한 소개와 하고 계시는 활동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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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교육청에서 교육과정정책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전국 유, 초, 중, 고등학교 약 1/4에 해당하는 1백 62만여 명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 교육을 위해 크게 교육과정, 수업, 평가 영역으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 부분을 제가 책임지고 있는 교육과정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올해 초등 1~2학년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본격 적용되기에 이에 대한 준비를 위해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현장 연수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Q2. 현재 경기도교육청에서의 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활동도 왕성하신데요. 이렇듯 교육계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사업 운영, 교육 사업을 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이련 분야의 교육 연구 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는 학부과정에서 사범대 윤리교육과를 나왔고, 1990년 대학원 석사과정 교육/윤리 전공에 입학해 윤리학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석사과정 2년을 마치고 늦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 후 미뤄뒀던 현장 교사의 직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과의 생활이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았지만, 1998년 박사과정에 대한 개인적 소망으로 인해 다시 윤리학 전공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면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학생들에 대한 이해의 폭은 훨씬 넓어지고 가르침에서도 깊이가 생기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을 견딘 과일일수록 달콤함이 더해지는 것처럼 한 주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이었고, 가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격려해 주시는 교수님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도성달교수님과 박동준교수님의 은혜에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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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학위 취득 후 다시 학생들과 재밌게 생활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 날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서 교육부에서 교육연구사를 선발한다는 공문이 왔으니 한번 응모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장학사(또는 교육연구사)가 갖는 위상은 엄청났기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경기도교육청 소속 장학사도 그러한데 교육부 장학사라니... 게다가 저의 전공인 윤리는 전국에서 1명만 선발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묵묵히 교장선생님 말씀만 듣고 나와 제가 첫 번째 한 생각은 ‘우리 교장 선생님은 장학사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말씀하시는 걸까, 아니면 나를 골탕 먹일려고 하는 걸까... 장학사 준비를 보통 2~3년씩 한다던데 아무런 준비도 없는 초짜 선생님인 나에게 왜 권하시는 거지?’였습니다. 그러다가 1주일 정도 지나자 다시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보셨고, 이런 대화가 두어번 더 반복되었을 때 저는 사실대로 준비해 본 적도 없고 지금 준비해서는 될 리도 없으니 안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교장 선생님께서는 결과에 관계 없이 그래도 한 번 응시해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1차로 16개 시도에서 각각 3~5명씩 선발했는데, 이 인원이 모여 2차로 교육학, 전공논술, 일반논술을 치렀습니다. 2차 결과로 다시 3명을 선발해 3차로 심층 면접을 1시간 정도 본 다음 4차 최종 현장실사를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당시 2차 객관식 교육학 시험을 앞두고는 관련 과목인 교육학 수험서도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떨어질 것이니 책을 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에 동료 기간제 선생님의 교육학 수험서를 빌려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선발되어 최종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분들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30대 후반에 교육부 장학사에 합격한 후, 다양한 부서를 거치며 학교에 있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처리하며 저도 조금씩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교원자격, 학교폭력, 교육과정 및 교과서, 국정과제총괄, 대통령지시사항 관리, 언론관계 및 교육부 정책지 총괄 등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경기도내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총괄하면서 창의적인 문제해결역량을 갖춘 미래인재로 우리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Q3. 1990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윤리학 전공 석사과정부터 밟으셨다고 들었어요. 선생님의 대학원 시절(석박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며, 선생님의 인생에는 대학원 당시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요?


  제가 입학했던 당시 한국학대학원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속으로 인문사회분야 전공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기관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비로 대학원과정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국내외 최고의 교수님들이 포진하고 있어 이 곳에서 공부하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에 학생들은 강한 연구능력으로 타 대학원을 압도하고자 했고 자연히 재학생들의 자부심도 높았습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기숙사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께 배우는 한편으로 자발적인 학습동아리를 통해 학문적 역량을 높이고자 했고, 통합수업을 통해 한 강좌 내에서 여러 교수님들의 지혜를 맛볼 수 있었던 점도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매년 전체 학생들이 함께 떠나는 현장학습답사는 역사와 문화, 문학과 풍습, 사상과 인물 등 다양한 전공에서 하나의 주제 아래 사전 준비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발표하고 토의하는 교육이 이뤄졌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났지만 대학원 청계관 기숙사에 머물며 공부하던 그 시기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에게도 푸르른 청년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취업에 대한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밤늦은 시간 라면을 먹으면서도 즐거운 날 막걸리잔을 기울이면서도 각자의 전공지식을 기반으로 벌어진 치열했던 논쟁들이 지금 돌아보면 서책으로 배울 수 없었던 소중한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최근 학문적 분위기가 달라져 학문이 개인 위주로 이루어지는 풍토가 강화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학대학원은 다양한 전공자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크므로 전공은 다르더라도 토론이 활성화되는 대학원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Q4. 최근 인공지능(AI)이 화두인데요. 교육자로서, 교과과정 정책 입안자로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앞으로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춰 교육자들은 어떤 자세로 임하면 좋을지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한국학을 어떻게 정의하면 될지에 대해서도 여쭙니다.


  AI 등장에 따른 사회 변화를 우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림  인터넷, 인공지능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변화를 요구하는 급속한 산업기술 발전이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교육계 역시 학생들의 교육에 얼마나 에듀테크(EduTech)를 접목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 교육이 암송과 암기를 중시하고 고전(古典)이나 교과서에서 사례를 찾아 해법을 제시하는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 교육의 트랜드는 암기식 교육보다는 창의성에 방점을 두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상황의 대처에 필요한 문제해결력 향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도입 예정인 AI 디지털 교과서가 본격화된다면 앞으로 우리 학생들의 수업과 평가 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급속한 사회 발전에 뒤처지는 강의식 수업으로 미래 사회의 주역들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학교의 역할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 교실에 30~40명의 학생들을 넣고 일률적인 수업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은 서로 관심이 다르기도 하고 수준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적으로 아픈 학생도 있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까지 모두 담임선생님이나 수업 담당 선생님들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과감하게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만이 갖는 고유한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특수한 학생이나 특별한 상황에서까지 선생님들에게 역할을 맡기기보다는, 외부 전문가를 비롯하여 다양한 해결 방법을 찾아 지원해 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의 적용 시기가 짧아지는 것처럼 관념을 바꾸어야 할 시기도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전공자들은 이런 유연한 자세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실보다 과거의 잣대에 얽매인다면 한국학 전공자들은 여전히 먼지 쌓인 한적(漢籍, 아주 오래전에 간행된 책)이나 뒤적이는 시대착오적인 연구자들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외투가 필요하지만 더운 여름에는 외투를 입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한국학대학원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시대의 흐름과 주어진 상황과 대상에 따라 유연한 맞춤형 사고방식을 갖추길 바랍니다.


Q5.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윤리학이라는 학문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 학문일까요? 또한 윤리학자로 교육계에서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선생님의 향후 계획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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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학생들과 수업하며 가졌던 가장 큰 소망은, 제 수업을 통해 위대한 학자로 성장하는 학생이 나오는 것도 좋고 큰 사업가로 성장하는 학생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착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학생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선현들이 ‘신독(愼獨)’이라는 경구를 가슴에 품었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배운 학생들은 지구환경보호 캠페인을 위한 이동 길에 자동차를 타고 가거나, 평소 흘린 땀과 먼지를 씻고자 샴푸와 비누로 온몸을 닦으며 낭비되는 샤워물에 몸을 맡기는 이율배반적 행위를 하지 않기를 희망했습니다. 남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이 되지 말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베풀며, 보여주기 위한 선행은 하지 않는 용기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선과 악의 철학적 개념은 몰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자연스런 태도가 습관화되길 바랬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경기도에서 공부한 모든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Q6. 마지막으로 온라인소식지 독자들 및 학계 연구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한국학대학원에서 공부하시는 후배 동학 여러분들, 어려운 여건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여러분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할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멀리 보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작은 비판과 비난은 웃으며 수용할 수 있는 담대한 마음가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러 경구 중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는 말처럼 여러분이 하고 있는 학문적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천리 밖까지 퍼지고 있을 겁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