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클럽
"한국학대학원에서의 7년, 제 연구활동에 든든한 토대입니다."
이번 ‘한국학 클럽’ 코너에서는 탄천초등학교 권경희 교장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Q1.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 소식지 독자들(17,000여 명)을 위해 선생님의 간략한 소개와 하고 계시는 연구교육 활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졸업생이 되어 한국학 클럽 코너를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현재 성남 탄천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1997년 교육학 박사과정으로 입학해서 2004년 2월에 졸업했고, 학위를 받기까지 약 7년동안 인생에서 가장 강도 높은 고난도 훈련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 중에는 한국교육사를 중심으로 공부했고, 박사논문은 한국근대교육사 중에서 특히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했고, 그 과정에 일본 문부성 교원연수유학생으로 약 2년간 일본에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성남교육지원청 장학사를 거쳐 현재 교장을 하기까지 공교육의 공공성과 방향성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 동력이 교육을 행하는 사람들(관리자와 교사)과 교육을 행하는 행위(수업)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리자를 위한 수업코칭과 교사를 위한 새로운 좋은 수업 패러다임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Q2. 선생님께서는 현재 교육학 분야에서 연구·교육 활동(강연, 교육, 저서 발간 등)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렇듯 시대의 흐름에 맞춰 창의적 활동을 지속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이련 분야의 연구(교육)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최근에 발표하신 연구 성과나, 관심을 갖게 된 새 연구 분야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박사과정 1학기에 공부가 너무 힘들었고, 제 자신의 학습역량에 크게 좌절을 해서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연구원의 커리큘럼이나 글쓰기 방식이 제가 그때까지 공부했던 교육학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도 공부 좀 한다고 자신했었는데 연구원에 입학하니 현타가 왔고, 학위를 받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생 처음 접하는 논어 한문책은 충격 그 자체였지요. 현대 철학, 불교, 미술사, 민속학까지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많아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때까지 교육학 전공은 교육학만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박사과정 동기들을 보니 본인 전공 이외의 분야에도 박학다식했고 어떤 주제도 자유자재로 토론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 힘들었던 그 공부들이 지금 하고 있는 연구활동에 가장 튼튼한 토대가 된 것 같아요. 연구원 공부를 통해 공부의 철학을 배웠습니다.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서로 통(通)하고, 학문간 연대가 필요하다는 아카데미즘을 그때 배웠습니다.
  저는 최근에 ‘수업’과 ‘교육연극’을 연결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단지 한시간의 수업을 기능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수업은 교육의 본질과 목적을 실천하는 최소단위입니다. 그런데 많은 수업을 참관하면서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서 ‘소외’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사들이 수업철학보다 수업기능을 더 중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할 수 없다면 그 수업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소모적인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학교현장의 수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수업관이 바뀌어야 하고, 교사의 실천이 동반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현재 관리자 수업코칭을 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연극’이라는 문화예술과 연계시켜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림 1] 교사연수 장면
Q3. 1997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대학원 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며, 선생님의 인생에는 대학원 당시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요?
  저는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은 연구원을 방문합니다. 봄, 가을에 산책을 하러 가기도 하고, 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가기도 합니다. 졸업하고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구원을 갈 때마다 새록새록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딸들에게 말합니다. “엄마 아빠가 여기서 공부할 때는 말이지...여기서 매주 축구를 했고, 여기는 대학원 연구실이고 매일 새벽까지 공부했고....” 딸들은 엄마의 라떼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영혼을 갈아놓은 청춘의 시간이었기에 연구원의 낡은 벤치조차도 마음에 새겨진 장소입니다.
  연구원은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교사로서 쉽지 않은 3년간의 휴직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평생 반려자가 될 남편도 만났고 인생의 터닝포인터가 되었으니까요. 국가의 전액 지원금이라는 특혜를 받으며, 기숙사에 살면서 죽을만큼 공부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후배와 아침마다 한문 스터디를 하며, 동기한테 일본어도 배우고,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유학생을 만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습니다. 혹독한 교수님의 피드백에 늘 긴장하고 힘들었는데 그 덕분에 지금도 글을 쓰는 작업에 신중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공부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도 그때 배운 진실입니다. 얄팍한 공부는 생명이 짧다는 것과 공부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을 꾸준하게, 마음과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원이 주는 공간의 고요함이 더 많은 사색과 고민을 하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연구원에서의 7년은 제 인생에서 물리적 7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공부하는 습관이 저의 일상에 장착된 것은 그때 연구원 동료들의 모습에서 배운 것입니다. 특히 그때까지 교육학에서 들을 수 없었던 다른 전공들의 강의와 공부, 그리고 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공부가 깊은 선배와 후배들과의 교류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게는 미국 교육학 중심의 교육사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인문학과 글쓰기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은, 연구원을 나와보니 연구원에서 배운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원을 나와보니 연구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구원만큼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공부’에 매진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졸업을 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연구원에 있을 때 더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더 많은 다른 전공 강의를 들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구원은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보물창고’라 생각됩니다.
Q4. 최근 미래교육이 화두인데요. 교육학자로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앞으로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춰 연구자들은 어떤 자세로 연구하면 좋을지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참 안타깝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미래교육의 담론은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다고 봅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뒤쫓아가느라 우리의 교육 현주소를 보는 안목을 상실한 것이지요. 방향타를 잘못 잡은 배가 열심히 향해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진짜 심각한 것은, 정책입안자들이 그 방향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과, 그 잘못된 방향에 대해 비판해야 할 교육학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잘못된 정책에 편승하여 기득권을 선점하려는 학자들과 교육시장이 손을 잡고 ‘효율성’과 ‘가성비’가 중심가치인 교육정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에서 강행을 하고, 거기에 교육시장계가 시너지를 만들고 있는 조합입니다. 저는 디지털기기 중심의 미래교육 담론은 너무 협소하다는 입장입니다. 태블릿과 AI가 미래교육의 핵심인 것처럼 2025년에 AI 교과서를 세계 최초로 배부하겠다고 공표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로 태블릿을 나눠주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당황스럽습니다. 또 교사의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것도 매우 위험스런 발상 중의 하나입니다. 공부는 AI가 가르칠테니 교사들은 인성교육이나 하라는 발상은 공교육의 역할을 고민하지 않은 결과라고 봅니다. 공부와 인성교육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왜곡된 교육관의 발상입니다.
  지금 디지털기기 보급보다 더 시급한 것은 디지털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조절하는 디지털 시민교육과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사회성과 소통 역량의 증진입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사회’라고 푸념하고 있습니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디지털로 생겨난 갈등과 부작용인데 정책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움과 가르침을 사람보다 AI에 의존하라는 발상에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교육정책이 지금처럼 단기간의 성과내기에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교육감이든 이들의 정치적 임기는 기껏 4-5년이지만, 잘못된 정책으로 학생들이 받는 피해는 평생을 갈 수도 있습니다. 삶의 가치를 배워야 할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을 시장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5. 한국학 연구자(교육자)로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교장선생님으로서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지요? 향후 하고 싶은 연구·교육 활동 계획도 알려주세요.
  요즘 저는 몇 가지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교사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시기라는 점입니다. 높은 수능 점수로 교직을 선택하고, 임용고시 합격을 위해 대학 4년을 올인했는데, 정작 교사가 된 이후에는 자신이 꿈꿨던 교사상과 다른 현실 앞에 방황하게 되지요. 이런 교사문화로는 한국교육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핀란드교육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핀란드 교사들이 갖는 책임감과 연구자세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그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성과로 핀란드교육을 부러워합니다. 교육행정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핀란드 교육행정을 부러워하면서 시찰도 많이 갑니다. 그런데 시찰을 다녀오면 뭐 합니까? 그런 행정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데.
  저는 누구든 자기자리에서 혁신을 실천해야 이 사회가 달라진다고 믿습니다. 남의 노력에 숟가락을 얹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일부의 교사로도 배움과 공부하는 자세를 갖도록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학교 안에서는 교사 학습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 밖에서는 인문학 독서모임을 두 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것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젊은 교사 한 명을 잘 인도하는 것이 선배로서의 책무라고도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학생들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수업패러다임을 학교현장에 어떻게 안착시킬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수업철학을 정리해서 세 번째 책으로 출간하려고 합니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책상에 가만히 앉아 교과서 중심으로 학습지 풀고, 수행평가하고, 맹목적으로 경쟁하게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찾기도 전에 실패자라고 스스로 낙인찍게 만드는 것을 ‘수업’이라고 말하면 안되겠지요. 아이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상상하고, 대화를 나누고, 몸으로 표현하는 수업을 학교에서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적이거나 불가능한 수업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가교 역할로 제가 선택한 것이 ‘교육연극’이라는 예술적 장르입니다. 실제로 교육연극으로 수업을 해 봤더니 일제강점기나 난민, 통일 같은 어려운 주제도 교과서로 배우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이 몰입했고, ‘나의 삶의 문제’로 공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어른들이 아이들의 배움과 창의성을 황폐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업이 살아나도록, 나아가서는 교육의 본질이 살아나도록 교육연극으로 하는 수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교육연극수업을 기획해서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림 2] (좌) 수업코칭 장면 (우) 학생 교육연극 장면
  마지막으로 저의 교육철학과 연구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외부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대학원 강의와 관리자 연수 강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남문화재단과 함께 사업을 기획해서 운영하기도 하구요. 학교 밖 시선으로 학교를 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한 것 같아서요.
Q6. 마지막으로 온라인소식지 독자들 및 이 글을 읽으실 학계 연구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제 인생에서 연구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는 분명히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특혜이지요. 제가 누린 이 특혜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처럼, 국가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 공부를 세상에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발 딛고 있는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교육현장에서 한국의 교육생태계에 안주하지 않고, 교사들이 소명감을 갖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 변화의 동력을 교사에게서 찾고자 합니다. 좋은 교사가 학생들을 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능이 뛰어난 교사가 아닌 교육의 방향과 가치를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교사문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교사뿐만 아니라 누구든 각자 자기자리에서 공공성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자리를 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불나방같이 돈이 되고, 권력이 되는 곳으로만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거 때마다 사람들이 자기 하던 일을 뒷전으로 하고 정치인의 대열로 서둘러 줄을 서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졸업생으로서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연구원이 정치적 이권이나 정권의 개입에서 완전히 벗어나 연구기관으로서 안전한 무풍지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대와 정치적 권력을 초월한, 그래서 대한민국 최고 한국학 연구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다졌으면 합니다. 다른 연구기관이 가질 수 없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최고의 강점은 학제간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지식의 통합은 이제 시대적 요망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듯이, 지금이야말로 연구원이 정체성을 공고히 할 때라고 봅니다. 이것이 연구원이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연구원의 지속적인 해외 홍보정책 덕분인지 유학생도 늘어나고,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한국학의 메카로서, 한국학의 등대가 되어 주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