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문과(文科)에 2번 급제한 사람들

저자 사진
이재옥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연구실 전문위원

   조선시대 문과(文科)는 현대의 3대고시, 즉 사법시험(일명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와 같은 위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고시(考試)처럼 어려운 문과에 2번 급제한 사람들이 있었다. 조사에 의하면 조선시대 문과가 시행되었던 1393년(태조 2)부터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었던 1894년(고종 31)까지 53명의 재급제자(복과 포함)가 나왔다.
   이 53명은 파방(罷榜)이나 삭과(削科)로 인해서 과거 합격 사실이 취소되었다가 응시 자격을 갖춰 다시 과거에 응시한 경우다.
복과(復科)는 취소된 급제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므로 재급제는 아니나 종합방목(문과)에 2번 출현하는 복과는 재급제로 간주할 수 있다. 파방은 과거 시험 자체가 무효 처리된 경우이고 삭과는 어떤 이유로 급제자의 과거 합격 사실이 취소되는 경우다.
시기별 재급제자의 출현 빈도는 아래 표와 같다.


방목

   최초의 재급제자는 1519년 기묘 현량과에서 나왔다. 현량과에 합격한 김명윤(金明胤, 1493∼1572)이 현량과가 파방된 후 1524년(중종 19)에 다시 급제했다. 그리고 1600년대에 가장 많은 재급제자가 출현했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시기와 일치한다. 사회 혼란이 과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재급제자를 만든 원인과 재급제 방식을 아래 표로 정리했다.


방목

   조선시대 과거에서는 7회의 파방이 있었다. 그 중 두 사례는 과거를 시행한 왕과 파방 조치를 내린 왕이 달랐다. 경종대 시험은 영조 1년에 파방되었고, 영조대 시험은 정조 1년에 파방이 되었다. 이는 모두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삭과를 당해 방목에서 삭제되는 발거(拔去)의 예를 보면 방목에서 성명을 아예 빼버리는 경우도 있고, 성명 전체를 먹칠하거나 성명에 검은색 선으로 테두리를 둘러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지배계층의 엘리트를 선발하는 수단인 과거에서 1번 급제하기도 어려운데, 2번 급제한 재급제자들을 이상 문과에서 살펴보았다. 정치적인 이유나 시험 자체의 문제로 과거 시험 자체가 취소되는 파방이나 과거 부정 또는 개인적 이유로 삭과를 당하여 과거 급제가 취소될 때에도 시험볼 자격만 된다면 언제라도 과거에 응시했다. 그 결과 문과에서는 조선 전 시기에 걸쳐 53명의 재급제자가 출현하게 되었다.


방목

[그림 1] 김명윤의 첫 번째, 두 번째 급제한 방목[출전: 국조문과방목(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 사법시험: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을 선발하기 위해 1963년부터 2017년까지 실시했던 국가시험이다. ‘사법시험령’에 따라 실시된 2000년까지는 행정자치부에서, ‘사법시험법’에 따라 실시된 2001년 이후에는 법무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1963년까지 ‘고등고시 사법과’로 운영되었고, 2018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으로 시험이 대체되었다.
2) 행정고시: 대한민국의 5급 공무원을 선발하기 위해서 매년 실시하는 공개채용시험이다. 과거에는 행정고등고시(行政高等考試)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현재까지도 이러한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3) 외무고시: 1968~2013년까지 실시된 외교관 선발 시험이었다. 2013년부터 외무고시의 후신으로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4) 복과(復科): 취소된 과거 급제를 다시 찾는 것. 여기서 복과는 재시험을 보지 않고, 다시 급제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급제는 아니다. 그러나 종합방목(문과)에 2번 출현하는 복과는 재급제로 포함했다.
5) 파방과 삭과: 파방은 과거 시험 자체가 무효 처리 되는 경우이고, 삭과는 어떤 이유로 급제자의 과거 합격 사실이 취소되는 것이다. 발거는 급제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