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한국학
해외 한국학자를 만나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 University of Ljubljana -
Q1.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 소식지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는 ‘강병융(Kang Byoung Yoong)’이라고 합니다. 보통, 여기 슬로베니아 친구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는 ‘대한민국에서 온 아저씨’라고 하지만, 좀 더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아시아학과 한국학 전공 책임 교수이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는 작가이고, 한국 문학을 슬로베니아에 소개하고, 슬로베니아 문학을 또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문학 전공자이자, 외국에 사는 작가이니만큼 디아스포라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류블랴나 대학에서는 문학과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교수로서, 작가로서, 번역가로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 터키 이스탄불 대학에 가서 젊은이들과 문학에 관해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Q2. 현재 슬로베니아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한국학 연구, 교육 현황은 전반적으로 어떠한가요?
(슬로베니아에서 한국학 연구는 류블랴나 대학에서만 하고 있으므로 이 나라에서 느낀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에 집중해서 대답하겠습니다.)
10년 전,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10년 전 첫 통장을 개설하러 갔을 때 만났던 은행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반도 남쪽에 있는 나라로 알고 서류를 잘못 만들어줄 정도였습니다. 당시,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한국에 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빠는 강남 스타일”을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엘지 냉장고에서 김치뿐만 아니라, 김치만두도 꺼내 먹고, 기아 차 안에서 BTS 노래를 듣고, 삼성 텔레비전으로 <더 글로리>를 보고, 손흥민의 플레이에 열광합니다. 저는 이것이 비단 대중문화의 힘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10년간 혹은 그보다 긴 시간 한국 기술의, 한국 문화의, 한국 경제의, 한국 스포츠의, 한국인의 힘이 축약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류블랴나 한국 식당에서 한국인이 저밖에 없는 일은 여기서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한국의 무엇이 이들에게도 익숙합니다. 마치 저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훨씬 더 잘 아는 학생들을 만나는 일과 같이, 말입니다.
=> [이야기꽃이피었습니다] 강병융 류블랴나대학교 한국학 교수 / 출처: YTN KOREAN (YouTube 동영상 Click)
Q3. University of Ljubljana에서 진행되는 한국학 연구, 교육 활동 및 그 결과나 성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13년부터 10년간 류블랴나 대학교의 한국학 전공은 한국 경제와 같이 압축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10년간 씨앗형 사업을 2회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며, 현재 발전 단계를 수행 중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한국학 연구소가 생겼고, 한국학이 전공이 되었고, 한국학 전공 전임 교원(텐뉴어 트랙 교수직)도 임용되었습니다.
또, 슬로베니아 학생들을 위한 한국 문학 대학 교재가 출간되었고, 한국 문학이 슬로베니아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한국어 말하기 대회와 시 쓰기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박사 과정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학이 인문 대학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전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림 1]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한국학과) 한국어 번역 동아리 사진과 한국학 전공 학생회장 인터뷰 사진
(출처: YTN KOREAN '이야기꽃이피었습니다' 영상)
10년 전에는 전공도 아니었고, 2017년 한국학 전공이 개설되었을 당시만 해도 학생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에는 인문 대학 전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전공이자, 류블랴나 대학 전체에서도 학문적, 문화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공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러한 긍정적인 압축 성장에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제교류재단,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사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한국 정부의 노력에 화답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 특히 인문 대학 측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실이라고 봅니다. 특히, 아시아학과 동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고, 발전시키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학과 구성원 전부가 한국학, 중국학, 일본학은 반드시 뭉쳐야 학문적 시너지가 나고, 그랬을 때 비로소 아시아학과가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학문적 또 문화적 다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Q4. 2022년부터 해외한국학씨앗형 발전단계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재까지 과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희 씨앗형 발전단계 사업팀은 연구 책임자인 저를 포함해 총 5명입니다. (연구 책임자 1인, 공동 연구원 3인, 전문가 1인) 이 중 3명이 씨앗형 초기부터 함께 일해왔던 터라 손발이 잘 맞습니다. 매주 회의를 통해 연구와 사업 성과에 대해 공유하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함께 해결합니다.
작년에는 작은 규모의 국제 학술 대회를 잘 마무리했으며, 4월에도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국제 학술 대회를 준비 중입니다. 이미 발표자 선정 등 중요한 절차들이 순조롭게 마무리가 된 상태입니다. 그 외에 전문가 선발, 장학금 지급, 초중고등학교 한국어 캠프, 동유럽 지역 한국학 강의, 글쓰기 대회, SNS 활동 등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다만, 연구 첫해이기 때문에 지면에 발표된 논문이 없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연구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장기적으로 목표한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연구원 전원이 진지한 태도로 연구에 임하고 있으므로 곧 그 결실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Q5. 해외한국학사업을 추진하시면서, 혹은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장기적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농담조로 “슬로베니아 한국학 설립자”로 동상이 세워질 만큼 열심히 일하겠다고 합니다. 웃자고 던진 말이지만, 그 안에 뼈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이 나라에 한국학이 학문으로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뛰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선 매년 신입생을 받을 수 있도록 교원 확보를 더 해야 합니다. (현재는 교원 부족으로 2년에 한 번씩 신입생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재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석/박사 과정 개설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능력과 관심만 있으면 모교에서 학부, 석사, 박사까지 공부한 뒤, 슬로베니아 더 나아가 유럽의 한국학을 선도할 수 있는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후학들이 슬로베니아 한국학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자 합니다. 후학들이 그저 한번 밟고 지나가 버리고 마는 발판이 아닌,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구름판이 되고 싶습니다.
Q6. 마지막으로,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한국학 연구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슬로베니아 사람들의 한국 사랑은 갈수록 깊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슬로베니아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의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서울에는 슬로베니아 대사관은 있지만, 류블랴나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습니다. 슬로베니아 고등 교육 기관에는 한국학 전공이 존재하지만, 대한민국 고등 교육 기관에 슬로베니아 관련 전공은 아직 없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한국학 발전을 위해 슬로베니아 교육 기관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슬로베니아 정부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슬로베니아 정부가 학문적 발전을 위해 한국에 투자 혹은 지원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약간 기울어진 애정의 추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저 또한, 제 자리에서, 제 깜냥껏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