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사회학 연구자로서 한국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번 ‘한국학 클럽’ 코너에서는 전남대학교 정수남 교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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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안녕하세요 교수님,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 소식지(AKS Newsletter) 독자들을 위해 교수님 소개와 하고 계시는 연구교육 활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으로 2010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줄곧 시간강사 혹은 연구교수로 활동하다가 2020년 전남대학교 사회학과에 임용되어 현재까지 연구와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광주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다보니 연구나 교육에 있어서 적응해야하는 부분들도 있고 반면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들도 있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적응을 못해 정신없이 산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네요.


Q2. 교수님께서는 문화사회학, 감정사회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교육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특별히 이런 분야의 연구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또 최근 연구 성과나 관심갖는 연구 분야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학부, 대학원 석사와 박사 모두 사회학을 전공으로 했는데, 사회학 연구자로서 늘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최근의 학계 흐름을 따라가려고 애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가령 제가 학부시절 90년대 중반은 사회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도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이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지구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시대적 상황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20대 후반에 사회학을 공부하겠다는 초년생에게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놓칠 수 없었습니다. 90년대 한국사회는 문화적으로 탈전통화, 세계화, 소비주의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신세대’ 신드롬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들이 폭발적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아직은 짐작이지만 오늘날 K-pop의 세계화가 가능할 수 있는 원초적 동력 또한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아이돌 그룹의 대부분의 수장들이 당시 대중문화의 장에서 최전선에 있었던 인물들이니까요. 영화도 물론이고요.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저에게 문화는 (역사적 유물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힘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회학 전공자로서 문화에 대한 관심은 불가피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저만 가졌던 것이 아니고 주변의 많은 동료연구자들도 가졌기 때문에 문화사회학은 ‘누구나 하는’ 연구분야로 여겨졌습니다. 뭐랄까요, 기본적으로 공부가 되어 있어야하는 분야이긴 했지만 제게는 좀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세부 연구분야가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그 기준은 사회학이 좀 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어떻게 포착해낼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시·공간은 인간의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시·공간은 사회적 관계를 틀짓는 ‘사회적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학부시절부터 각별히 존경해왔던 사회학자 박형신 선생님께서 ‘감정’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소개해주셨을 때, 그 순간 찰나적으로 느낀 감흥은 그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지적 흥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회학이 ‘감정’을 다룬다니......제게 감정은 한 발짝 더 인간의 사회적 삶을 이해하게 해주는 출구였습니다. 사회학에서 감정은 사회적 구성물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해체하거나 창출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감정의 역동성을 사회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액체성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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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좌] 한국학대학원 김경일교수님과 함께 뉴욕 출장 사진(2022. 5.)   [우] 런던 방문 사진(2007. 1.)


  그렇지만 저는 이론적 작업에는 큰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게 있어서 문화사회학과 감정사회학은 경험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도구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러한 프리즘으로 한국사회의 불평등, 사회적 약자, 친밀성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경험적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주제는 제 지도교수이자 얼마 전 퇴임하신 김경일 선생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경일 선생님의 작업은 상당 부분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제 작업은 현재성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는 있지만 사회학자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대상에 대해서만큼은 선생님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 시대의 약자나 피지배자의 삶을 사회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사회학자의 역할이라는 점은 제게 있어서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스승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Q3. 2010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시 대학원 생활과 그때 시절에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기억과 추억은 무엇입니까? 또 대학원 전공 공부와 당시 생활이 교수님에게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학대학원에서 저는 석사과정부터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0년 동안 지냈습니다. 기숙사생활만 놓고 보면 5-6년 정도지만 수업시간은 물론 기숙사생활에서 제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삶의 찬란했던 한 시절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0대에 입학했던 저에게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꽤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이 돌고, 주변은 온통 녹색에 인근엔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게다가 왜들 이렇게 한문에 능하고 해박한 사람들이 많은지(실제로 제 삶에서 지적 열등감을 가장 많이 경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종종 딴 세상에서 온 사람마냥 엉뚱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까지 제겐 모든 게 다 어색하고 갑갑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대략 1년 정도 고행(?)의 시간을 보낸 뒤에 이 모든 것들은 제게 이색적이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탐험가의 도전처럼 다가왔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밤새워 세미나를 하고 때론 술 한 잔을 빌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주던 선배나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과 지적인 조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옛 기숙사의 비좁은 공간에서 술 몇 병과 치킨 한 마리로 서로 부대껴 앉아서 날 선 학문적 논쟁과 세상사를 논했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다들 가난하기도 했지만 마트도 인근에 없어서 술자리는 늘 귀했던 것 같습니다. 이 동료집단과 보내면서 얻은 배움과 인격적 가치는 현재까지도 제 삶의 버팀목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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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좌] 대학원 전공 행사(2001. 6.), [중간] 대학원 학술 답사(2002), [우] 장서각 윤대봉 선생님과의 추억 사진


  특히 타전공자들과 엮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대학원 생활에서 저는 한국학대학원의 가장 큰 장점을 흠뻑 누렸는데, 특히 제가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인류학, 역사학,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한 동료 대학원생들로부터 얻은 지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면 저는 완전히 다른 사회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회학은 상상하기도 싫군요. 대학원 답사 또한 제게 있어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결 더 넓혀준 기회였고, 함께 답사를 준비하고 다니면서 동학들과 어울렸던 시간 또한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수료 후 해외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처음으로 장기간 동안 해외에 머물면서 지적인 훈련을 쌓은 것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런 시절은 왜 인생에 딱 한 번만 있는지 모를 정도로 그립습니다.


  공부도 신나게 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열심히 했던 게 바로 축구였습니다. 지금 대학원생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 별로 놀 게 없었던 대학원생들(특히 남학생)에게 축구는 모든 여가와 유흥을 대체하는 놀이였습니다. 발로 하는 운동은 완전히 잼뱅이였던 저에게 축구는 동료들과 가장 빨리 어울릴 수 있는 수단이자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출구였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힘껏 뛰고 난 뒤 푸른 잔디 위에 누워 땀을 식히는 순간은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힘줄이기도 했습니다.


  제 대학원 생활에 지적으로, 인격적으로 큰 영향을 준 많은 선배나 동료들 중에 일찍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그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끔 그 분들을 떠올릴 때면 숨이 잠깐 멎을 때도 있고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여전히 기대고 의지하면서 많은 일들을 함께 했었을텐데 이젠 그렇지 못해 아쉽지만 그 분들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려고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사람들과의 지적 교류, 인격적인 어울림, 축구 그리고 슬픈 일들을 겪으면서 미숙한 존재가 그나마 조금 성숙해진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한국학대학원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삶의 기회를 갖게 해주는 학문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Q4. 최근 글로벌 한국학, K-Culture, K-Pop 등 전세계적으로 한국학의 세계화가 화두인데요. 한국학자로서 이런 사회 변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지요? 또한 앞으로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춰 연구자들은 어떤 자세로 연구하면 좋을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또 한국학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한국이 지구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이제 문화적 차원에서도 커다란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사실은 그만큼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 또한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겪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약소국으로서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 책임에 있어서 제국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식민지 지배를 겪고 있거나 독재정권 하에 있거나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게 한국은 세계시민사회의 평화,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관차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지정학적으로나 외교적으로 풀어야할 엄중한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한국학은 하나의 ‘과학’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주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게 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학은 한국사회에 대한 자기성찰적 과학으로 존재해야하고 세계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자기객관화를 실행할 수 있는 과학으로 자리를 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를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입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를 상대화시키면서 세계사회 어딘가에 한국을 위치시키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해 한국사회라는 실체는 없습니다. 저는 실체론적 사회관에서 벗어나 한국사회가 인류의 역사과정에서 어떤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고 어떤 특징을 가진 사회로 이르게 되었는지를 ‘과정’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K-culture가 산업적 측면만이 아닌 한국적인 예술과 미학의 세계를 전달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세계사회와의 소통과 공감의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문화는 평화에 이르는 길고도 아주 먼 길이지만 가장 확고한 길이기도 합니다. 저도 포함되지만 한국학을 연구하는 후배연구자들이 이제 이 긴 여정에 함께하면서 더 멀리 보고 한국학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5. 한국학 연구자이자,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교육자로 왕성하게 활동하시고 있으신데요. 요즘 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육자로서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신지요? 앞으로 소속 대학에서 하시는 연구·교육 활동에 대한 향후 계획을 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암울한 현실이지만,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 즉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 나아가 인구감소 문제는 지역사회와 지역대학에 커다란 문제와 과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학술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지역사회 내부의 학술장이나 연구자네트워크가 매우 협소해지거나 빈약해졌다는 점입니다. 디지털네트워크 시대에 이런 문제는 쉽게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은 허황될 뿐입니다. 아주 오래된 문제지만 쉽게 건드리지 못한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치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교육자로서 역할을 해야하는 제게도 큰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사회학과 교수로서 학부생들에게는 과학적 사유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함양시켜줘야 하지만 학생들은 점점 이러한 능력을 쌓기 위한 여유가 없는 듯 보입니다. 졸업 후 취업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름 긴장감을 갖고 대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학생들에게 정부나 대학이 좀처럼 물질적 기반이나 환경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대학원의 현실은 더욱 참담합니다. 대학의 역량은 얼마만큼 전문연구자를 배출하는가와도 높은 상관성을 갖는데,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학원생들의 삶은 매우 척박합니다. 물적 기반도 약하지만 동료집단의 부재도 후속세대 연구자들이 처한 어려움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한동안 이런 환경 속에서 교육자로서 활동을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만큼 제게 주어진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역량을 높일 수 있는 여러 시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시절부터 쌓아온 역량들을 쏟아부으면서 광주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이 지역만의 자체 연구역량을 키울 수 있는 학술장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학의 빈 자리 중 하나가 지역사회연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학이 표준화되고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글로벌 차원은 물론 국내적 차원에서도 로컬리티 연구는 필수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지역사회연구를 위한 연구자네트워크를 만들고 현재 각각의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과 지역사회의 현재성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왜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역소멸의 비극을 겪고 있는지가 해명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남대학교에 와서 광주의 비극적인 역사적 경험인 5·18민중항쟁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5·18은 공식적으로 한국 민주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러한 의미보다는 5·18에 대한 주류 담론과 서사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존재’나 지워져 버린 존재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5·18은 민주화라는 규범적 목적으로만 해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충돌한 실존적 투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쟁의 희생자나 피해자들의 2세대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 민주화를 열망하거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지구 어느 한 편의 집단이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쟁점들입니다. 제가 한국학 연구자로서 한 줌의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이런 연구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Q6. 마지막으로 온라인소식지 독자 및 이 글을 보시는 연구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어떤 분들이 보시게 될지 감히 안 잡히지만 그럼에도 한국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후배 대학원생분들에게 작은 조언을 하나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한국학대학원은 일반 종합대학의 대학원과 달리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이 차이에 대한 생각은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을 단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장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가장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이 지점부터 어디로 나아가야할지를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학대학원은 제게 여러 실망과 한계를 안겨준 곳이기도 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는 많은 지적 활력과 인간적 깨우침을 준 곳입니다. 제가 다니던 시절보다 현재 한국학대학원은 지적인 자원은 물론 글로벌 차원의 지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역량을 월등히 많이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국내외 외부 연구자들과의 지적 교류와 소통에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문연구자로서 직업활동을 해야한다면 끊임없이 동료집단을 만들어가면서 시대를 함께 고민해갔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연구자들 간에도 업적주의와 기형적인 전문가주의가 횡행하게 되면서 공적 인간으로서의 지식인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가 팽배해질수록 학술장의 생명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의 선배로서 누군가의 선생으로의 위치에 올라서게 될 것입니다. 이 위치에서도 후배나 후속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와 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학문공동체를 만들어가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