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해외 한국학자를 만나다

Boris Škvorc 사진
Boris Škvorc
University of Split

독자들을 위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보리스 슈크보르츠(Boris Škvorc)라고 합니다.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이자, 동남부 유럽 최고 수준의 대학 중 하나인 스플릿 대학교(University of Split)에서 문학 이론 및 비교문화 연구를 수행 중인 전임 교수입니다. 트랜스크리에이션(transcreation), 즉 문학적, 문화적 유산 등이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어떻게 옮겨지고 번역되는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학과(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에서 2년간 강의를 하며 문화 간 이해를 쌓았습니다. 현재 저는 스플릿대학교의 비교문화 및 한국학 연구소(Centre for Cross-Cultural and Korean Studies)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한국인 관광객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현지의 한국에 관한 관심도 높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크로아티아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요?


한국은 크로아티아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과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크로아티아의 모범이 될 만한 나라인데, 놀라운 경제 성장, 뛰어난 영화 및 비디오 산업, 음악, 뉴미디어 예술, 그리고 문학 등이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이미 현대 한국 소설 몇 권이 번역돼 있기도 합니다. 한국이 소프트파워를 키워온 방식은 저희가 보기에 매우 매력적이어서, 크로아티아에서는 그를 인정하고 존경할 뿐 아니라 대학에서 연구할 정도이며,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저희 대학 연구소의 중점 연구 주제 중 하나도 그것입니다. 이 지역의 일부 다른 대학들도 한국어 프로그램들을 선택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저희 연구소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단순히 크로아티아 사회에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각도로 분석해 크로아티아라는 공간과 문화 속에 그것들을 또 하나의 문화로 재창조함으로써 연구에 매력적이거나 흥미로운 대상만이 아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크로아티아에는 한국학과나 한국어학과가 정식 개설된 기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와 동남부 유럽에서의 전반적인 한국학 현황과 수요는 어떻습니까?


크로아티아는 물론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인접 국가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한국의 경제, 예술, 언어 등에 점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스플릿대학교에서는 한반도와 발칸반도 간 비교검토가 가능한 주제들을 연구할 연구소 및 학술지를 설립ㆍ창간하는 한편,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와도 비슷한 전문 한국학부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크로아티아의 풀라(Pula)와 자그레브(Zagreb)에 한국어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동아시아학 사업의 일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스플릿에서도 동아시아 연구 및 문화 분야 프로그램을 개발하려 노력 중이지만, 저희는 한국문화에 방점을 두려 합니다. 양국의 작은 영토, 파란만장한 역사는 저희로 하여금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의 전통, 역사, 음식, 습관, 가치관 등에 친숙함을 느끼게 합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위의 모든 것들을 연구하고 우리 상황과 비교해 결론을 도출하고 유사점과 차이점까지도 밝혀낸다면 크로아티아와 한국 양국의 문헌학(philology) 및 인문학 모두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광, 경제, 신기술의 이해와 발전에도 공헌할 것임은 물론입니다.


황정연 사진

스플릿대학교의 한국학 관련 교육프로그램 및 연구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스플릿대학교에서는 2015년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구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였습니다. 단순히 기초 언어 능력 및 역사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두 문화 간의 역동적 교류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칸과 동아시아의 관계, 크로아티아와 한국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할 센터 설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입니다.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저희는 문학, 영화 및 뉴미디어 등을 대상으로 기존의 고립된 역사연구 방식이 아닌 비교문화적 방법론을 기초로 한 상호접촉 방식의 연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영화, 언어학, 문학, 정치학, 뉴미디어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로 학제적 연구팀을 구성하고, 한국어 입문부터 중급 한국어까지 운영하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영화와 문학을 다루는 강좌를 추가하였습니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1년에 두 번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비교문화연구 리뷰(Cross-Cultural Studies Review)』를 창간했는데, 수록된 논문들의 절반은 한국에 관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국제회의를 두 차례 개최하였고, 코로나19 위기가 잦아들면 ‘실크로드: 크로아티아에서 한국으로(Silk Road, from Croatia to Korea)’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내년에 개최할 예정입니다. 한국어 부전공을 신설하기 위해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강사를 정규 교원으로 채용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후에는 동아시아학 전공도 신설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들을 초빙하고 있지만, 향후 한국학, 특히 문헌학 분야의 강사를 저희 대학교 정규 교원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스플릿대학교는 2018년부터 '크로아티아 스플릿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설립 및 한국학 전문가 양성 사업'을 위한 ‘해외한국학씨앗형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와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큰 성과는 한국 대사 등 한국학계의 여러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구소 개소식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인 교수들이 스플릿 대학교에서, 스플릿대학교 교수들이 서울에서 수행 중인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도 성과 중 하나입니다. 저희는 또한 매년 50명 이상의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수한 연구자들로 구성된 연구진이 탁월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는 것과 학술지 또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일부 한국 서적의 크로아티아어 번역도 시작했는데, 이 역시 훌륭한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가장 어렵고 힘든 점은 코로나로 인해 체류장학 프로그램 등 여러 국제사업들의 준비가 지연되고 있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다음 씨앗형사업을 위해 어떤 목표나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한국학 종합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선 문헌학과에 한국학 부전공을 신설하려고 하며, 이후에는 별도의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고 싶습니다. 또한 학술지도 계속 발간하고, 우수 연구결과를 공유할 학회 또한 개최하고자 합니다. 저희의 목표는 발칸반도와 중부 유럽 지역에서 한국 및 동아시아와의 비교문화 연구를 수행할 주요 거점기관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밖에 장학 교환 프로그램을 개선하여 대학생과 대학원생 모두에 혜택을 주려 합니다. 지난 12개월 동안 코로나 문제로 갑자기 중단된 이 노력이 곧 재개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저희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립니다. 한국과 크로아티아가 양국의 한국학 연구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저 역시 한국학진흥사업단,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한국 내 몇몇 대학들의 지속적인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함께 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김상훈 교수와 인하대학교, 연세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동료들이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합니다. 또 폴란드 포즈난의 동료들과 함께 저희는 쌍방향 소통은 물론 의견, 생각, 문학의 교환, 즉, 트랜스크리에이션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문화, 환경에 대한 이해를 크게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컨소시엄도 설립하였습니다. 한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행사들, 더 많은 장학금 혜택, 번역, 출판, 학회 등의 학술활동을 통해서도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한국학에 관한 관심을 더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또한 크로아티아를 연구하는 한국학자들이 차후 양성되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이뤄질 경우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씨앗형사업 지원을 받는 저희 노력의 또 다른 큰 성과가 될 것입니다. 저희는 그것이야말로 비교문화 영역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라 생각하며, 그것이 다시금 이곳 스플릿은 물론 유럽 여러 지역의 학부생과 대학원생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한국학 프로그램 구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