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호락(湖洛)논쟁의 주제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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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후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조교수

호락논쟁

호락논쟁은 충청도 기반의 호론(湖論) 학자들과 서울 및 근기 기반의 낙론(洛論)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으로, 학계에서는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 ‘예송(禮訟)논쟁’과 함께 호락논쟁을 조선조 유학의 3대 논쟁으로 꼽기도 한다. 호론과 낙론의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두 학파의 정체성이 성립되던 시기, 즉 18세기 초ㆍ중반이었고, 이를 통해 호론과 낙론은 자신들의 이론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해갔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돈점(頓漸)논쟁, 사칠논쟁, 예송논쟁, 명덕주리주기(明德主理主氣)논쟁 등에서 보듯이, 사상사의 논쟁은 대체로 논쟁의 주제로 그 명칭이 정해진다. 그런데 호락논쟁은 논쟁의 주체로 이름을 붙였다. 어째서인가? 호락논쟁의 주제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락논쟁의 세 주제

낙론계 학자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은 당시 호락 제현들의 논변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1)

①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같은가, 다른가.
② 감정이나 사려가 발하지 않은 마음[未發心]은 선한가, 선악이 혼재하는가.
③ 명덕(明德)에 개인의 차이는 없는가, 있는가.


이 셋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첫 번째 주제이다. 그래서 호락논쟁은 ‘인물성동이논쟁’으로도 불린다. 조선 유학사 서술에서 호락논쟁의 핵심 주제는 대체로 인물성동이 문제로 설정되어 있고, 호락논쟁의 연구도 인물성동이 논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문석윤 교수는 호락논쟁의 핵심 쟁점을 인물성동이 문제로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논쟁의 전모에 대해 단순히 부분적인 이해에 그치게 만들 뿐 아니라, 논쟁의 실체와 의미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해석을 결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이다.”라고 평하였다.2)

이러한 평가를 토대로 그는 지각론과 미발론 등을 중심으로 호락논쟁의 형성과 전개를 서술하였다. 문석윤 교수의 연구 이후로, 두 번째 주제에 관한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으나 양적으로 비교했을 때, 인물성동이론 연구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호락논쟁의 핵심 쟁점

필자 역시 호락논쟁의 핵심 쟁점은 두 번째 주제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호락의 분기와 갈래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짚어낼 수 있다. 두 학파의 분기는 기(氣)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는데, 그 이해의 차이는 두 번째 주제에서 첨예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 아니다. 두 번째 주제를 통해야 호락논쟁의 무게와 심각성을 정당하게 측량할 수 있다. 홍직필은 다음의 말로 두 번째 주제의 절박성을 논하였다.

‘마음은 본래 선하다[心本善]’는 것은 정자(程子)에게서 나온 말이니, 맹자의 성선(性善)의 뜻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남당(南塘)3) 등 여러 학자는 정론(定論)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마음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는 의론을 창도하였으니, 세교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 인물성이론보다 만 배나 더 심하다.4)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주제 중 첫째는 ‘동물에게도 인의예지의 본성이 있는가?’를 묻는 것으로 도덕적 본성의 보편성을 만물의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선한가?’를 묻는 것으로 오염되지 않은 선한 마음을 성인(聖人)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허여할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첫 번째 주제는 근원적 본체의 절대성과 보편성에 관한 논의로 이에 대한 탐구는 직업 철학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종신 사업이지만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란은 우후죽순 일어나는 19세기에 이를 구제할 사회적 책임을 지니는 사대부가 ‘동물에게도 인의예지의 본성이 있는가?’를 따지고 있었다면 이 논쟁을 통해 전에 없던 이론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한들 우리가 이 논쟁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들이 다만 인성과 물성의 동이를 따지는 데에 몰두했다면 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현실과 유리된 채 공리공담의 학문세계로 도피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그 이론적 성취에도 냉소하게 되지 않을까?

당시 호락의 학자들 역시 과열된 논쟁이 오히려 자기 수양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논쟁을 멈추지 못했던 이유는 호락논쟁의 핵심 쟁점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자학의 강령을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타고난 성격이나 지능, 신분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인격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자학의 이념은 선한 본성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해낼 투명하고 선한 마음이 보장될 때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마음이 만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삶의 목적과 방향은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주자학자들의 삶은 온통 ‘성인되기’에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호락논쟁의 핵심 쟁점은 적어도 엄격한 주자학자들에게는 그렇게 한가한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의 삶에 밀착한,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였다. ‘유학에서 여성이 학문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필자에게 절실한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나라가 쇠망해가는데도 끝까지 주자학을 고수하며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그들의 태도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호락논쟁의 쟁점이 그들에게 절실하지 않은 문제였다고 하는 평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호락논쟁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재고하고 그 학술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호락논쟁의 핵심 쟁점이 다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1) 『梅山集』 卷13, 「與李龜巖」.
2) 문석윤, 『호락논쟁 형성과 전개』(동과서, 2006), pp. 20-21.
3) 남당 한원진(韓元震, 1687-1751)으로, 호론의 종장이다.
4)『梅山集』 권5, 「答老洲吳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