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해외 한국학자를 만나다

민원정(칠레가톨릭대학교 교수)

민원정(칠레가톨릭대학교)

Q. 온라인 소식지 독자를 위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칠레가톨릭대학교 역사학과 및 아시아학센터 소속으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민원정입니다. 현재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 중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제한국학센터에 규장각펠로우로 와 있습니다. 기간 중 칠레가톨릭대학교와 dual-appointment입니다.


Q. 보르헤스 작품과 유대의 카발라적 요소에 대해 연구를 하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연구하겠다는 결심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또 교수님께 카발라, 즉 ‘전통’이란 어떤 의미 인가요?


저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시절 중남미문학수업을 들으며 스페인의 사실주의적 문학과는 다른 중남미문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남미문학에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석사과정을 시작할 무렵 지도교수님께서 우루과이의 작가 호세 엔리케 로도 (Jose Enrique Rodó)의 [아리엘 (Ariel)]을 분석해서 발표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The Tempest]의 아리엘과 칼리반을 모티브로 중남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에세이였습니다. 중남미의 정체성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르헤스의 짧은 에세이는 얼핏 보면 난해하지만 핵심을 파악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서구의 이분법적 로고센트리즘의 한계에 대한 비판과 고민이 담겨 있는 에세이를 좀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어 석/박사 논문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박사 논문의 제목을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카발라신비주의]로 잡은 것은 카발라 신비주의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닌, 텍스트 해석의 매개로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과 배경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읽고, 나름의 해석을 합니다. 작가의 작품도 작가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창작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의 오독도 새로운 글쓰기라는 것이 논문의 주제였습니다. 칠레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중남미 비교 문화 수업을 하며 전공과 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스페인어권 화자들의 케이팝을 비롯한 아시아대중문화 수용에 대해 연구합니다. 대중문화도 텍스트의 하나이고, 팬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권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기억과 경험, 정체성을 바탕으로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해석하죠. 결국 저는 전공과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 <한국에서 버틸 용기>라는 교수님의 저서가 출간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각종 매체가 전해주는 중남미의 한류 소식과 현지에서 한국인이 실제로 느끼는 중남미의 한국에 대한 시각차가 느껴졌습니다. 칠레 혹은 중남미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어떤가요?


한국이 이전보다 많이 알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은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칠레에 도착한 2004년에는 중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를 묻고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북한이냐 남한이냐를 많이 물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 일본도 아니면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칠레는 전세계 40개국 이상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입니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과 경제적 위상은 인정하지만, 아시아와의 무역 관련 회의에 가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규모가 작아보일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일본은 오래 전부터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에 경제적 투자만이 아닌 문화적 투자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칠레 여러 도시에서 일본 정원을 볼 수 있어요. 중국의 경우 최근 들어 대중남미투자가 늘고 있습니다. 단순한 경제적 투자에서부터 칠레 북쪽 사막지역 천문학 연구소에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중국의 손길이 미치고 있습니다. 케이팝을 아는 사람들도 많고 케이팝팬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안다”와 “좋아한다”는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 아직도 한국에서 중남미는 그저 ‘하나의 중남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칠레에서 Music Bank 녹화를 했지요. 그러면 한국 언론에는 ‘중남미의 케이팝 열풍’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옵니다. 중남미에는 약 33개국의 국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때 우리의 문화도 더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Q. 중남미에서 한국에 대한 연구경향은 어떤가요?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현지에서의 한국학 연구경향에도 영향을 주고 있나요?


2004년부터 17년 동안 칠레에서 일하며, 질문하신 ‘연구 경향’을 발견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한국의 지원 여부에 따라 반짝했다 사라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중남미의 아시아연구는 아직까지 아시아를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국학, 일본학과 ‘따로 또 같이’를 잘 하는 한국학이 되어야 하지요. 한국의 지원기관에서는 한국학만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학과나 센터를 만들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에서는 기업 공채는 거의 없고 학과 전공에 따라 취업을 하기 때문에 학과를 만드는 일은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 현지의 한국학 연구도 더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인지도가 단순히 케이팝의 인지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멕시코에 오래 거주하신 어느 분께서 제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수년 전부터 늘 최초를 외치면서도 좀처럼 발전되지는 않는 것 같고, 10대 학생들이 연락해서 케이팝 스타들의 근황을 물으며 한국어는 늘 초급 아래에서 맴돌아 안타깝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위상이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고마워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화권에 따른 전략을 잘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Q. 비록 서면을 통한 인터뷰지만, 성실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칠레의 한국학 연구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코로나 이후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뀔 테고, 이는 해외 한국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남미 여러 나라가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중남미의 모범생이라 불리던 칠레도 2019년 10월에 시작된 시위와 코로나로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동안 중남미를 오가는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Post Covid-19을 대비하는 한국학 전략을 마련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어 화자를 위한 특화된 온라인프로그램을 구성해 보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17년 동안 칠레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살려 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