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습재 일기

먹고 공부하고 사랑하라!

황선영 사진
황선영
한국학대학원 국어학 전공 박사과정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아 성공을 거두기도 한 이 영화는, 주인공 리즈가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삶과 행복을 찾기 위해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맛있는 것을 먹고, 영성적으로 충만하게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찾으라’는 인생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코너 <시습재 일기>에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볼 기회가 생겼다. 고민하다가 영화의 제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내용을 꾸리게 되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영화명과 달리 내 경우는 ‘공부하고’로 차이를 두어 대학원 생활에서 있었던 몇 가지 추억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먹고 (EAT)


나의 룸메이트는 중국 남방 사람으로 2년 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우리는 생일도 가깝고 전공도 비슷한데(국어학, 국문학), 둘 다 가리는 음식이 없고 요리를 즐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룸메이트가 기숙사에 처음 입사한 뒤 했던 일은 나에게 요리를 대접한 것이었다. 기숙사 주방에서 룸메이트는 새우가 듬뿍 들어간 아라비아따 파스타와 브로콜리 및 베이컨이 넉넉히 들어간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었다. 투박하게 후라이팬을 두고 나눠 먹었지만,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룸메이트의 다정한 마음에 매우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르게 성장해 온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살면서 맞춰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점도 있었지만, 우리는 음식을 매개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각자 일정 상 매일 함께 식사할 수는 없었지만 가끔 날을 잡아 음식을 통한 한중문화교류를 시행했다. 룸메이트는 한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내가 중국 문화 체험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❶ 룸메이트가 만든 비빔면 ❷ 내가 개발한 김치 파스타 ❸ 각자 먹고 싶은 걸 만들어 조합은 이상하지만 맛은 있었던 요리들

❶ 룸메이트가 만든 비빔면 ❷ 내가 개발한 김치 파스타 ❸ 각자 먹고 싶은 걸 만들어 조합은 이상하지만 맛은 있었던 요리들


특히 룸메이트가 만들어준 우유푸딩 슈앙피나이(双皮奶), 여름 비빔면 량피(凉皮)와 우렁이 국수 뤄쓰펀( 螺蛳粉), 쫀드기 라티아오(辣条)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 음식이 되었고, 나는 마자오(麻椒), 화자오(花椒) 등 중국 산초와 향신료에 매료되었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는 중국식 돼지고기 요리인 수자육편(水煮肉片)과 오이무침인 마라황과(麻辣黄瓜)를 직접 만들어서 부모님께 대접했다. 이를 룸메이트에게 말했더니 그도 사실 수주육편은 먹어본 적만 있지 만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여 나의 요리 실력을 인정해주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중국 본토에 가서 사천요리들을 함께 정복하자고 약속했는데 빨리 그날이 오기만을 바란다.


 ❶ 룸메이트가 만든 중국식 라면 ❷ 블루베리 잼을 곁들인 우유 푸딩(원래는 단팥을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❸ 어버이 날 직접 만든 수자육편과 마라황과s

❶ 룸메이트가 만든 중국식 라면 ❷ 블루베리 잼을 곁들인 우유 푸딩(원래는 단팥을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❸ 어버이 날 직접 만든 수자육편과 마라황과


2. 공부하고 (STUDY)


한국학대학원 석사에 합격한 뒤 전공 교수님께 대학원 진학을 우연히 말씀 드릴 기회가 생겼다. 현대문학 교수님이셨는데 취업 관련해서 교수님께 연락을 받았다가 국어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매우 놀라시며 “네가 국어학 전공으로? 학자의 길에 뜻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다른 교수님께도 한 번 더 들었던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나는 대학교 내내 국어학 보다 국문학을 열심히 공부했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먼 훗날 시인이 되리라 결심했었던 자칭 문학소녀였고, 국어국문학과 진학 후 시에 재능이 없음을 깨달아 대신 근·현대 소설에 심취했다. 또 공부보다 노는 것에 더 성실해서 여행을 많이 다녔고, 동아리 친구들과 항상 놀러 다녔으며, 별 수확은 없었지만 미팅도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그때의 친구들 중 벌써 3명이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 지금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는 내 모습은 과거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생애 처음 써 본 논문. 둘째, 셋째가 생기는 그날까지.

생애 처음 써 본 논문. 둘째, 셋째가 생기는 그날까지.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한국학대학원 출신의 지도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대학교 고학년 때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국어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전공분야의 전문성을 습득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 후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좌절감도 많이 느꼈다. 그래도 공부가 지겹지 않았고, 어려워도 그 안에 있는 즐거움과 재미를 알게 되었으며, 또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왕 공부하는 것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석사논문은 주제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쓰는 것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고, 요 몇 년 사이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한 선배는 나에게 “논문은 배 아파 낳는 자식이 아니라 머리 아파 낳는 자식”이라고 말해주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쭈글쭈글한 외계인처럼 생겼지만 점차 귀여워지는 것처럼, 처음 내 결과물도 부족한 점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들고 있다. 여전히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학문적 역량이 앞으로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전문가가 될 때까지, 다산의 여왕(?)이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한다.


3. 사랑하라 (LOVE)


우리 대학원은 절간처럼 조용하고, 수도원처럼 엄숙한 분위기라서 공부하기 최적화된 공간이다. 우스갯소리로 선배들은 이곳을 나와야지만 연애를 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남자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우선 우리 전공의 많은 선후배·동기들이다. 국어학 전공은 유학생 비율이 높은 편인데 입학 경쟁률이 치열하여 성실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이는 정말 사실이다. 우리 전공 선후배·동기들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재미있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술도 대부분 다 잘 마셔서 나는 대학원 생활을 매우 즐겁게 보내고 있다.


  선후배·동기들과 함께

선후배·동기들과 함께


❶ 수업시간에 동기언니가 열어준 깜짝 생일 파티 ❷ 친했던 선배가 유학을 끝내고 귀국할 때 송별 파티에서 ❸ 선배가 직접 그려준 엽서. 부적처럼 잘 가지고 다녔다.

❶ 수업시간에 동기언니가 열어준 깜짝 생일 파티 ❷ 친했던 선배가 유학을 끝내고 귀국할 때 송별 파티에서 ❸ 선배가 직접 그려준 엽서. 부적처럼 잘 가지고 다녔다.


대학원에서 만나 뵌 교수님들도 정말 다 좋으신 분들이었다. 이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국어학 전공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국문학 교수님들, 지금까지 수업 안팎으로 뵈었던 타 전공 교수님과 선생님들 모두 존경스러운 학식과 인품을 가지신 분들이었다. 나의 사주에서 말하기를 남쪽으로 가면 귀인이 많다던데 한국학대학원에 진학하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또한 나는 석사 2차 학기부터 대학원 내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했는데 오며 가며 뵈었던 교직원 선생님들 모두 정말 친절하시고 좋으신 분들이었다. 학생들을 많이 이해해주시고 성심성의껏 도와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편하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긴 글을 줄이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 리즈는 인생의 변화가 필요한 순간 세계여행을 떠났지만,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시절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