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신간 소개: 박현희 저,  Soju, A Global History

조원희 사진
조원희
한국학대학원 글로벌한국학부 조교수

2020년 가을에 새로이 글로벌한국학부로 부임하였다. 글로벌한국학부에 소속되어 수업을 하다 보니 “한국”적인 것에 대해 수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글로벌”한 것에 대한 소재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정 소재에 관한 연구가 “한국적”인 것만 강조하다 보면 글로벌한 맥락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보이며, 거꾸로 “글로벌”한 측면에 중점을 둔 연구는 많은 경우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2021년 1월에 나온 박현희 교수(뉴욕시립대)의 저서 Soju: A Global History는 소주라고 하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글로벌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저서였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Soju: A Global History는 증류주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한국에서 소주가 가지는 의미를 분석하였다. 1장에서 증류주의 기원을 살펴본 다음, 2장과 3장에서는 몽골 제국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의 소주가 어떤 식으로 유행 및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살폈다. 이어 4장과 5장에서는 한국에서의 소주의 역사를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분석했고, 마지막 6장에서는 일종의 사례 연구로 앞서 분석 방법론을 일본과 멕시코의 증류주에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위에 구성에서 볼 수 있듯이 박현희 교수는 소주를 통해 한국의 특징과 그것이 세계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구체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소주가 고려 말 몽골 제국을 통해 한국에 정착되고, 조선시대를 거쳐 주변 일본의 사케와 중국의 바이주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고, 20세기를 지나 다시 일종의 “한국화”를 거쳐 다시 세계적인 상품으로 발전ㆍ 변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주가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세계사적인 흐름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동시에 그 발전 과정에서 한국적인 특징이 어떻게 녹아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가령, 저자가 분석하듯이, 20세기에 들어 소주가 대량 생산되고 증류주가 아닌 에탄올 혼합 음료로 변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주류사업의 공업화 및 대량화라는 국제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국가 주도 주류정책도 이해해야 하고, 노동집약적 산업 발전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가격이 저렴한 술을 선호하게 된 과정도 참고해야 한다. 그런데 소주의 역사를 국내ㆍ외적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 것은 20세기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13~14세기 이른바 원간섭기에도 보인다. 즉 이 시기 고려는 몽골 지배의 어려움 속에서도 “팍스 몽골리카” 시기 동ㆍ서 문명 교류의 과정을 통해 증류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현지화시킨 과정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저자 박현희 교수의 학력을 생각해보면, 소주를 국제적인 안목에서 분석한 이러한 연구 성과를 낸 것이 놀랍지만은 않다. 박현희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사/서양사 복수전공으로 학사를,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석사를, 그리고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중국과 이슬람의 지리 지식 교류를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받았다. 박현희 교수의 강점을 보여주는 예로, 증류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용례를 유라시아의 다양한 지역의 자료에서 찾아내고, 그 연관성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서남 아시아 쪽의 사료에서는 증류주를 뜻하는 아랍어“아락/아라키”와 같은 용례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증류를 통해서 높은 도수의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땀과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땀”을 뜻하는 아랍어의 “아락(’araq)”에서 파생된 용어다. 마찬가지로, 증류주를 뜻하는 것으로 14세기 중국의 화가 양유정(楊維楨)의 글에서는 “땀처럼 보이는 술,” 즉 “한주(汗酒)”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증류주를 “아락/아라키”로 표현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한국어의 기록에서도 비슷한 예시가 보이는데, 17세기 한국의 사료 『심양일기(瀋陽日記)』에서는 소주가 “아랑주(阿郎酒)”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락/아라키”의 음가가 계속 전달되어 한국의 기록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얼핏 보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아락” “한주” 그리고 “아랑주” 사이의 관계를 읽어낸 박현희 교수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한국적인 술이라고 알려진 소주 뒤에 있는 이 깊은 국제적인 배경을 알게 되고 나서는 소주를 마실 때마다 뭔가 할 말이 많아질 것 같다. 저자가 한글본을 직접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시간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Hyunhee Park, Soju: A Global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DOI: 10.1017/9781108895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