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 저런 얘기

장서각 고문헌 목록 리뉴얼(renewal) 문제에 관하여

이재준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책임사서원

문화재관리국에서는 1971년 1월부터 1972년 5월까지 17개월 간 연인원 3,300여명을 투입하여 󰡔藏書閣圖書韓國板總目錄󰡕의 초판을 편간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그 무렵까지 수집된 적상산사고본, 군영본, 낙선재본, 칠궁본, 봉모당본, 종묘본 등의 분류체계 및 기술방식을 통합하는 대규모 정리 사업을 수행한 것이다. 문화재관리국의 장서각 도서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된 후 1984년에 󰡔藏書閣圖書韓國板總目錄󰡕이 한 차례 중간되었으나 이때의 중간은 증보된 2판이 아니라 1972년의 초판을 다시 찍은 2쇄에 불과했다. 사실상 초판 편간 이후 어떠한 수정ㆍ증보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금까지 45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학계의 연구 성과는 상당히 축적되었다. 원전이 번역되어 문헌의 편찬 및 간행에 관련된 다량의 정보가 새롭게 밝혀졌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적 인출에 소용된 재료의 종류와 성분을 밝혀내었는가 하면 세계화에 따른 ‘국외소재한국문화재’의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져 일본, 북미, 유럽, 중국, 대만 등에서 과거 존재조차 몰랐던 고문헌이 새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이 모든 정보가 간편하게 공유되며 정보의 축적과 첨삭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목록의 리뉴얼을 통해 축적된 학술 정보를 사장시키지 않고 적극 활용해야하는데 다양한 저해 요인이 상존하는 현장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고문헌 분류 및 목록의 수정ㆍ보완을 통한 󰡔藏書閣圖書韓國板總目錄󰡕 증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한 무수한 담론이 오갔지만 사실상 진행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인력과 시간의 한계에 부딪혀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의 통일성, 정확성, 최신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광묘어제훈사 검색 장면

장서각의 도서 분류는 고문헌 분류의 근간이 되는 사분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제가 세분되지 않았던 전통시대의 분류법인 만큼 모호하거나 유사한 주제의 존재 때문에 오류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禮類(經部)와 政書類(史部)’, ‘四書類(經部)와 儒家類(子部)’, ‘金石類(史部)와 藝術類(子部)’를 비롯하여 史部의 正史類, 別史類, 抄史類, 雜史類가 모호하게 분류되어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위의 그림과 같이 동일본 󰡔光廟御製訓辭󰡕가 詔令奏議類(史部)에 분류되어 있고, 別集類(集部)에도 분류되어 있다면 이용자 입장에서 정보를 신뢰하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문헌 내용의 사실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목록의 기술이 상세하다면 분류의 오류는 어느 정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목록은 분류와 달리 사실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이다. 문헌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정보원이며 실사를 제외하면 텍스트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식별하고 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따라서 분류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밀함을 요구하는 분야이며 기록된 정보가 모호하거나 오류가 확인되면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정하여 바로잡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목록은 기본적인 통일성과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 채 제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래의 그림을 통해 목록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시전대전의 검색결과 화면

󰡔시전대전󰡕의 검색 결과를 보면 저자가 주희(송, 1130-1200), 호광(명, 1370-1418), 채침(송, 1167-1230)으로 다양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일부는 ‘편자미상’으로 입력되어 있다. ‘발행년’ 표기가 ‘간년미상’, ‘사년미상’, ‘연기미상’, ‘기년미상’처럼 중구난방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이마저 없이 빈 각괄호만 존재하거나 표기 방식이 정확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오류 문구인 ‘null’까지 검색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기본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본 위 사례로만 보아도 보완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잘 알 수 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연구 정보를 구득할 상세 검색 결과의 내용은 더 심각한데 아래의 그림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정조라는 편자가 존재하고, 판종은 정유자본이 아닌 임진자본이며 발행지, 발행처, 발행년이 명확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45년 전 밝혀지지 않았던 정보이거나 당시 입력자의 미비함 때문에 누락되었던 정보가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정증보 전과 후의 모습

수정ㆍ증보 전과 후의 모습이다. 붉은색 박스는 핵심 내용이 수정된 것이며 그밖에 주기사항의 보강도 이루어졌다. 이용자는 전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문헌 목록이 처한 이와 같은 현실은 비단 장서각뿐만 아니라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대학도서관, 박물관 등 우리나라 고문헌 소장 기관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다. 이 같은 현실에 경각심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최근에는 기관별 목록 기술 수준을 비교ㆍ분석한 논문도 발표되었다. 여러 항목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세밀하게 조사ㆍ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였다. 기관의 정책 방향과 구성원의 역량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므로 가볍게 여기고 간과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고문헌 목록 증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층 더 깊이 고민하여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담당자 그룹은 한국학 진흥의 선봉에 있음을 인지하고 임무를 완수하는데 열성을 다해야 하며 이용자 그룹은 잘 드러나지 않는 업무의 특성을 이해하고 다각도의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장서각 고문헌 목록의 증보는 다양한 계층의 이용자에게 성과 창출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한국학 대중화 및 전문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만큼 차분히 기다리며 점진적으로 보완되어 가는 모습을 즐겨보자.

ljj7523@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