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는 기록유산

지류보존처리의 해외동향 소개

2004년 대화재 이후 독일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의 서적 복원

지주연 사진
지주연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전문위원

장서각 보존처리사업은 국내•외 유관기관 견학과 성과교류를 통해 기록유산 보존관리 분야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우리 기관에 적용하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일련의 예로 매년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지류보존처리 및 관리에 관한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하여 그들의 경험과 연구결과, 노하우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2016년 11월 개최된 장서각 국제학술회의‘동서양 기록문화의 과거와 현재’중 학술회의의 2Section인 ‘기록문화의 전승과 보존’에서는 기록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한 각국의 사례와 노력을 듣고자 하였다. 주제 가운데 2004년 대형화재를 겪고 새롭게 복원 된 독일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 ]의 前관장인 Michel Knoche의 발표는 우리 기관에게 경각심과 교훈을 안겨준 내용으로 학술회의 개최 후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바이마르(Weimar) 소재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은 독일 튀링겐주 바이마르에 위치해 있다. 정확한 설립일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약 17세기 말 바이마르의 대공이었던 빌헬름 에른스트에 의해 설립되었다. 안나 아말리아는 1765년 바이마르 대공인 에른스트아우구스트 2세와 결혼해 대공비에 앉은 인물로 남편의 죽음 후 아들을 대공자리에 앉히고 섭정을 시작하였으며 이 섭정기간에 그녀의 이름이 도서관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1797년 괴테가 도서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숨을 거두는 1832년까지 35년동안 관장으로 재임하였다. 재임 당시 도서 보유양이 12만권까지 늘어났으며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 원본 외에도 셰익스피어 작품과 16세기 루터의 성경 등 중세 희귀서적을 대량 보유한 유서 깊은 도서관이며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도서관이 겪은 역사적 사건 중 2004년 대화재는 소장 서적 6만 2000권을 소실시켰다. 약 3년의 복원 기간을 거쳐 2007년 다시 개관하였으며 손상된 서적의 복원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화재 진압과 응급조치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은 2004년 9월 2일 저녁 도서관 2층 바닥에 설치된 전기연결장치의 오작동에 의한 화재로 인해 극심한 재해를 입었다. 약 50,000권의 고서들이 훼손되었으며 주로 16~18세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미술품들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특히 도서관의 고전주의 대표적 역사공간인 로코코 홀의 손실이 가장 컸다. 로코코홀은 많은 미술품과 반신 조각상의 전시공간으로 쓰였으며 18세기 이후부터는 서적 수장고로 사용되어 왔다.

그림1) 화염에 휩싸인 안나아말리아도서관

그림1) 화염에 휩싸인 안나아말리아도서관

그림2) 붉은색: 불에탄 소장품의 수, 회색: 손상을 입은 서적의 수

그림2) 붉은색: 불에탄 소장품의 수, 회색: 손상을 입은 서적의 수

화재 당시 도서관 직원들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으로 돌계단을 통해 소장품을 운반하는 일이었기에 주변 소방관과 협력하여 신속하게 조치하였다. 지하에 마련된 소장 자료 목록 보관소와 열람실은 화재가 발생한 당시 오픈되어 있는 상태였다. 화재당일, 도서관 자료보존 담당자들은 화마 속에서 구해낸 대량 서적들의 응급보존을 위해 신속히 대응하였다. 화재진압을 위해 뿌린 물에 의해 젖은 대량의 서적들은 개별 포장하여 도서관 부근 라이프치히 도서보존센터로 이송했다.

보존센터에서는 물에 젖은 책들을 응급 클리닝 하여 영하 18℃ 조건인 진공상태에 보관하여 형태변형을 최소화하기 위한 냉각건조 작업을 진행하였다. 서적의 경우 젖은 상태로 24시간이 지날 경우 곰팡이 발생과 균의 손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담당자들은 신속하고 빠른 대처를 통해 시간과의 사투를 벌인 셈이었다.

한편에서는 관리 담당자들의 업무로 손상 입은 서적들을 빠르게 파악하여 상세정보를 정리하는 업무였다. 초기단계에서는 손상정도에 따른 서적의 분류가 불가능 하였으나 온라인상의 서적 목록을 통해 점차 분류하고 세분화 할 수 있었다.

차후에 라이프치히 도서보존센터에서 건조가 끝난 서적들은 바이마르로 운반되었다. 이 냉각 건조된 서적의 복원이 도서관의 큰 숙제로 남아있었다.


재난으로 손상된 서적의 복원

화재로 손상된 서적은 크게 3개의 범주로 구분하였다. 37,000권은 화재 또는 소화용 물에 의해 손상되었고, 25,000권은 화재의 잔재 속에서 발견된 서적들이었다. 또한 56,000권의 책과 그래픽작품들은 연기나 그을림을 비롯해 방염제와 같은 소화분말에 의해 손상 정도가 악화되었다.

손상된 서적들은 대부분 희귀본들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 형태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원재료의 정보, 제작시기에 따른 역사적 형태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손상된 서적의 고유한 특성의 재현, 다시 말해 원형보존이 최우선의 원칙이었다.

그림3)화재 후 소화용 물에 젖은 서적들을 살펴보는 크노헤 관장

그림3)화재 후 소화용 물에 젖은 서적들을 살펴보는 크노헤 관장

그림4)불에 그을린 책의 복원

그림4) 불에 그을린 책의 복원

다행히 화재당시 진행된 응급조치와 냉각 건조는 서적의 변형이나 기타 유해물질로 인한 손상의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복합적이고 손상 정도가 매우 구분되는 이번 화재의 경우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복원 계획이 필요했다. 도서관의 주 목표는 조급하고 근시안적 보존처리를 피하는 대신 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손상 정도에 따라 각 범주에서 가용자원이나 시간적 제약에 맞는 논리적 보존처리 우선순위를 따르고자 하였다. 따라서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은 대량서적 보존에 대한 ‘단계적 보존’원칙을 수용하여 전체 자료의 완전한 복원이 아니라 각 분류에 따라 보존처리를 집중하여 추진하고자 하였다.

손상서적의 보존처리는 공간적, 인적 한계에 따라 협력보존처리기관과 함께 이루어졌으나 도서관의 보존팀은 복원방법, 사용재료, 서적의 형태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여 복원 초기의 계획부터 복원 완료 후 관련 기록을 보관하는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비록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장 자료의 특성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보존이념을 간직한 채 꾸준한 복원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림5) 4개의 손상범위와 7개 구성방식에 따라 분류되어 보관된 서적들

그림5) 4개의 손상범위와 7개 구성방식에 따라 분류되어 보관된 서적들

또한 화재 손상 서적의 복원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출범하여 지속적인 보존처리 재료 개발과 전문기술을 연구하고 주변 국가의 책 복원 전문가들의 협력을 통해 장기 보존처리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도 도서관은 손상 도서의 복원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곳에서 보존처리 기술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다 소개할 수 없지만 다음 표를 통해 현재까지 복원 상황을 파악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도 서적의 복원은 진행되어지고 있다.

손상범위 표
손상범위 단위(권) 2016 프로젝트 상황
물 피해와 열 손상 37000

소화용 물에의해 제본이 손상된 책들: 2007년 냉각건조와 손상도서의 문서화 완료. 복원된 도서의 최종 반입은 2017년 완료 예정.
10200권 종이 제본
8100권 가죽 제본<
2000권 양피지 제본
2200권 천 제본
14500권 클리닝작업 및 추가 보호 조치.

화재 손상: “재가 된 도서” 25000

화재 잔재로부터 구조된 것들: 예를 들어 제본 없이 겉표지만 그을린 책 및 부분적으로 온전하지만 펼쳐볼수 없는 서적: 냉각건조 및 곰팡이 번식으로 인한 오염 여부 검사 그리고 후속 살균은 2008년2월 완료. 전체 1200만 종이 가운에 63500장만 복원됨(3160 권 분량)

급속 냉동 및 냉각건조를 거친 도서 62000

그을리고 연기로 인한 손상,

DDT(살충제), 린데인(살충제) 오염, 부분적 미생물 감염

56000

화재 관련 그을림, 연기 및 기타 오염물질로 인한 손상의 인근 도서관으로의 확산방지. 2005년 쿠드레이 증축 건물에서 나온 46000권의 책, 2013년 괴테 별관에서 나온 10000권이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클리닝하여 충해오염을 막음.

손상 도서 통계 118000

향후 과제

최근 국내에 잇따라 발생하는 지진 또는 2008년 일어난 국보 1호 숭례문의 화재와 같은 재난은 문화유산의 가장 큰 멸실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왕실 및 민간 기록물을 대량으로 소장한 장서각에서는 이러한 재난대비 계획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독일의 화재 사례는 우리에게 간과할 수 없는 교훈적 사례이다.

실제로 학술회의 당시 크노헤 전 관장이 발표 시 보여준 화재 당시의 영상은 보존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큰 충격과 경각심을 주었다. 무엇보다 화재 당시 서적을 구해내고 분류하여 응급 보존에 빠르게 대응한 도서관의 담당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화재 이전부터 최근까지 오랜시간 관장으로 부임한 마이클크노헤 前관장(2016년 퇴임)의 노고를 보며 누군가의 잘못을 따져 묻기 보다는 도서관의 역사와 모든 과정을 함께 한 실무자들에게 복원 업무를 신뢰로 일임한 독일 정부 또한 놀라웠다. 화재 당시 도서관의 900여명에 후원단체, 지역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화마로부터 서적을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인간띠를 만들어 책들을 운반하고 구출해냈다는 유명한 일화는 기록유산의 보호는 더 이상 소장기관 뿐만 아니라 지역시민과 국민 모두의 책임감으로 이루어 져야 함을 의미한다.

재난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고 화재와 같은 재해의 피해는 그 규모가 커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장서각의 노력 또한 더욱 체계적이고 견고해져야 할 것이다. 특히 담당자들의 소장 자료에 대한 파악과 이해가 이러한 재난 당시에 빛을 발할 것이다. 자료의 위치를 확인하고 재질적 특성과 자료의 상태조사를 통해 손상등급을 부여해 응급상황에서 자료의 분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담당자들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써야 할 것이다. 서적을 보관하는 보관장이나 보관상자 등은 화재를 견딜 수 있는 방염처리와 같이 재료에 대한 연구와 점검도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또한 기록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장소인 만큼 장서각 시설의 점검 및 직원 개별적인 점검이 필수적일 것이다.

독일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의 화재는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유관기관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재난의 사례일 것이며 이번 발표를 통해 기록물을 보존 ·관리하는 담당자로서 책임의식 및 안전관리의 교훈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은 2016년도 장서각 자료 국제공동연구 학술회의 ‘동서양 기록문화의 과거와 현재’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