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한국학과 북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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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환
고문서연구실 책임연구원

2013년 8월에 몽골의 수도인 울란 바아타르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답사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몽골의 유적지에 갈 때마다 놀라운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유적지 어디에도 문자에 한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개 산스끄리뜨어 장식 문자의 일종인 란쟈 문자, 티벳 문자, 팍바 문자, 위구르 문자, 만주 문자 등이 등장하였다. 한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공부하여 왔던 필자에게는 경이로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이었다.


한국학은 지금까지 이러한 북방어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연구는 어느 정도인가. 많은 질문을 품은 채 귀국하여 곧바로 조선후기 사역원(司譯院)에서 편찬한 몽학삼서(蒙學三書), 청학사서(淸學四書)를 시작으로 14세기에 편찬된 『원조비사』(元朝秘史) 등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서에 많은 북방어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거의 해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북방어에 대해서 예를 하나 들어 본다. 고려가 몽골의 부마국이 된 이후 북방인으로 ‘石抹’이라는 성씨가 『고려사』에 자주 보인다. ‘石抹-天衢’[世家(권28), 충렬왕 원년(1275) 12월], ‘石抹-也先-帖木兒’[世家(권33), 충선왕 즉위년(1298) 8월], ‘石抹-時用’[世家(권38), 공민왕 2년(1353) 2월], ‘石抹-天英’[世家(권40) 공민왕 12년(1363) 윤3월] 등이다. 한자로도 특이하게 표기된 이 북방의 성씨를 필자는 오랫동안 궁금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遼史』(권116) 「國語解」에서 다음의 기록을 발견하였다.


또 漢字로 쓰는 것을 ‘耶律’과 ‘蕭’라 하고, 契丹字로 쓰는 것을 ‘移剌’과 ‘石抹’이라고 말하는데, 또한 상고할 수가 없다. [又有言以漢字書者曰耶律、蕭, 以契丹字書者曰移剌、石抹, 則亦無可考矣.]

위의 인용은 ‘耶律’과 ‘移剌’, ‘蕭’와 ‘石抹’은 같은 말이지만 한자로 쓰느냐 거란자로 쓰느냐에 따른 차이라는 설명이다. 이 ‘石抹’은 요(遼) 황후의 일족이 사용하는 ‘蕭’의 다른 표기이다.

청(淸)나라 건륭 47년(1782)에 편찬된 『欽定遼·金·元三史國語解』는 말 그대로 북방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북방어를 만주어로 표기하여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石抹’과 관련된 표기 중 하나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šumuru/ [舒烏][穆烏][嚕烏]

舒穆嚕【卷六作石抹, 今從八旗姓氏通譜, 改正】[金7-3b]

위의 기록으로 ‘石抹’은 만주어로 /šumuru/(한글로는 ‘슈무루’)라 표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石抹’은 조선시대의 문헌에도 나타난다.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는 개국을 한 이래 공이 있는 신하들을 개국공신으로 포상하였다. 이 가운데 태조 4년(1395) 윤9월에 포상한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錄券)에 ‘石抹-成彦’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로써 당시 이성계의 역성혁명 진영에는 북방민족의 하나인 거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향후에 자세한 연구를 기대해 본다.

syh@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