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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1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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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시선 돌리기

-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야기의 힘’을 간과(看過)하며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김 신
연구정책실 선임연구원


한류는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낯선 문화현상이다. 근대이전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땅과 우리만의 것이라는 테두리, 다시 말해 스스로 경계를 설정하고, 자의반 타의반 다소 배타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의 문화가 조금씩 ‘담’을 넘어 외부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세계인의 문화담론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적 빈곤과 무수한 시행착오, 그리고 쓰라린 내부의 상흔(傷痕)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우리 것에 대한 외부의 관심이 추동(推動)하고 있는 예상치 못한 현상에 처음 어리둥절해하곤 했지만, 이 같은 ‘낯선 사태’가 차츰 익숙해짐에 따라 이제는 한류현상을 일정부분 당연시 하거나, 나아가 자부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해 있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제3세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행과정에 있는 소위 후발국가가 자생적 문화콘텐츠를 가지고 선진국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동시에 전 세계에 문화적 역동성을 확산시켰다는 점은 유사사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필자가 20대 이던 어느 주말 저녁 평소 친하게 지내던 외국인 친구가 갑자기 우리나라 방송드라마 최종회를 봐야한다며, 거의 떠밀다시피 강권해 주말드라마를 함께 시청한 적이 있다. 감동적인(?) 드라마가 끝난 후 그 친구는 왜 한국이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수출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추억의 편린(片鱗)과 더불어 가끔 떠오르곤 한다.

한류는 지극히 우연한 문화접변현상의 시발점이다. 우리가 모여 앉아 함께 나누었던 우리의 ‘이야기’, ‘노래’ ‘놀이’ 그리고 ‘먹거리’ 등이 서서히 타자의 정서를 자극하기 시작한 후, 경쟁력을 가진 문화콘텐츠로 세계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치밀한 기획의 결과는 아니지만, 한류는 한국이 가진 소프트 파워의 재현(The Representation of Korean Soft Power)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른바 타자의 선호(preference)를 바꾸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소프트 파워는 군사적, 경제적 패권과 같은 외부의 물리적 압력에 의해 결코 실현되지 않으며, 순수하게 정서적 요인에 의해 타자의 선호도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설명되곤 한다.¹ 덧붙여 기능적으로 단순히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소프트 파워가 발휘된다고 볼 수도 없다. 특히 문화의 보편화와 세계화, 달리 말해 한 개별국가의 문화가 다른 국가 혹은 외부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타자의 자발적 동의를 획득하는 과정은 문화가 가진 내재적 힘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한류의 가능성은 바로 한류가 가진 내재적 힘, 다시 말해 세계의 동의를 얻고 있는 콘텐츠가 갖고 있는 이야기의 ‘공감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겨울소나타’, 중국의 ‘대장금’, 중동지역의 ‘주몽’ 그리고 근래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에 이르기까지 한국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와 더불어 꾸준히 유행 중인 우리가요의 노래와 춤을 모방하는 ‘cover dance’의 확산 등은 우리의 이야기가 곧 지리적, 종교적, 인종적 차이를 초월해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을 실증하는 사례들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도 깨닫지 못한 채, 우리가 가진 이야기의 잠재력을 간과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해 세계가 감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들으며 눈물짓는 외국인의 이야기는 거의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실제 대한민국은 특별히 경제와 문화영역에서 매력적인 국가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한국을 연상하면 으레 떠올렸던 빈곤, 정치적 긴장, 그리고 남북대치상황이 야기한 전쟁의 위협 등 이른바 부정적 ‘재료’들이 만들어 내곤했던 우리의 어두운 이미지는 한류에 의해 이제 전혀 다른 국가이미지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라 할 수 있는 한국학의 의제(agenda) 설정과 관련, 향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역은 다름 아닌 세계가 공감하는 우리의 콘텐츠,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

1. Coined by Joseph S. Nye, Jr. in the late 1980s, the term "soft power" ; the ability of a country to persuade others to do what it wants without force or coercion, soft power is the ability to coerce others as well as the ability to shape their long-term attitudes and preferences.

Foreign Affairs Review May/June 2004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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