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환
장서각 고문서연구실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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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수한 관원에게는 일생 동안 60주년을 기념하는 회갑(回甲)·회근(回巹)·회방(回榜)의 3대 경사(慶事)가 있었다. 여기에서 회갑은 만 60세를 이르는 말이고, 회근은 부부가 혼인하여 60주년이 된 것으로 회혼(回婚)이라고 불리었으며, 회방은 과거 시험에 합격한 지 60주년이 된 것을 의미하였다. 일생 동안에 회갑은 61세이고, 회근은 대부분 70~80대에 맞이하지만, 회방은 20대 전후의 나이에 소과(小科)나 대과(大科)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80대 이상의 장수한 관원만이 맞이할 수 있었다. 또한 회갑·회근·회방은 모두 개인적이며 가족적인 경사이지만, 그 중에서도 회방만은 제도화 되어서 국가적으로 기념해 주었기 때문에 회방을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조선시대 회방과 관련해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1579년(선조 12)에 송순(宋純)의 회방연을 확인할 수 있다. 송순은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60년이 지난 1579년(선조 12)에 회방을 맞이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송순의 집안 사람들은 면앙정에서 송순의 회방연을 베풀었다. 당시 송순의 제자인 정철·고경명·기대승·임제와 전라감사 및 각 읍의 수령 등이 회방연에 참석하여 송순의 회방을 축하해 주었다. 또한 선조는 송순의 회방연 소식을 듣고 호조에 명하여 처음 과거에 합격할 때의 규례와 같이 어사화를 하사하고 술을 내려주었다. 송순의 회방을 기념하기 위하여 선조가 어사화를 하사한 것은 조선 후기에 조정에서 회방의 기념을 요청할 때에 자주 고사(故事)로 인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회방은 1669년(현종 10)에 이민구(李敏求)‧윤정지(尹挺之)‧홍헌(洪憲)이 사마시(司馬試) 회방을 기념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거행된 증광시에서 생원·진사로 입격한 세 사람은 이후 60년이 지난 1669년에 장원한 이민구의 집에 모여 회방을 기념하고 회방연을 거행하였다. 세 사람의 회방을 축하하기 위하여 허목·이경석·박장원·이정·심유·권해 등이 회방연에 참석하였다. 당시 회방연의 모습은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圖)>라는 그림과 회방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회방을 기념하는 시를 엮은 첩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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