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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2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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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감정과 한국학의 새로운 과제 정수남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최근 들어 한국인의 마음, 감정, 심리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한 때 유행 정도로 끝날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인의 감정에 대한 학계의 연구들은 이전부터 줄곧 있어 왔다. 주로 정체성, 습성, 습관, 심성, 의식구조 등의 개념으로 포착되어 온 감정연구는 한국학의 메인 테마 중 하나였다. 매우 불편한 얘기지만 상식처럼 굳어져버린 한국인에 대한 내·외적 평가, 예를 들어 권위(주의)적 , 체면중시, 부끄러움, 과시, ‘빨리빨리’, ‘냄비근성’, 정(情)이 많은, 이타적인, 흥이 많은, 음주가무에 능한, 속내감추기, 한(恨), 질시, 최근 이슈가 되는 불안과 혐오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감정적 특성을 나타내는 수사들은 시대성을 반영하면서 출현해왔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이러한 특성들을 스스로 표출하거나 타인의 행태들을 평가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들을 쓰곤 한다. 실제로 감정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특성들이 마치 한국인의 본원적 특성이자 기질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면 여러 곤란에 부딪히게 된다. 그 이유는 앞서 나열한 감정적 특성들은 모두 역사사회적 구성물이자 근대적 인식패러다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인간의 감정은 생물학적 보편성을 띠고 있다. 누구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에 반응하고 처신하기 위한 보편적 감정을 표출한다.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숲 속에 갑자기 만난 붉은 곰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두려움에 떨지 않을 일반인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인간의 감정은 상호작용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특수성을 띤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 문화적 관습, 공유된 경험, 상황성 등에 따라 감정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심지어 한국이 처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 동아시아와 세계체제적 차원에서 겪은 복잡한 역사적 경험은 한·중·일 또는 남북관계에서 나타나는 감정적 반응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한국인이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혹은 미국인이든 타자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감정적 평가이자 도덕적·윤리적 가치가 개입된 규범적 평가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본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이중적, 양가적 혹은 다층적 성격을 띤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왜 ‘감정’이냐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감정적’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라’라는 문구는 일종의 정언명령처럼 우리의 행동거지를 다잡는 데 활용된다. ‘한국인은 매우 감정적이야’라는 흔히 듣는 말에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강하다. 그러나 감정과 이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인간의 행동을 파악하는 관점은 논리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과 이성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도로 합리적일 것처럼 보이는 국제관계도 지극히 감정적으로 얽혀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감정 혹은 감정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곤란에 빠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무시하고 이해의 영역에서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유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해명하기 어려운 인간 행위의 영역만 더 늘어갈 뿐이고 이를 이해 불가능한 영역으로 치부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학은 한국인의 감정적 특성들-이것이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든-을 보다 과학적으로 자리매김할 이론과 방법론을 탐색해야할 과제를 안게 된다. 이러한 이론과 방법론은 한국사회 혹은 한국인의 역사적 특수성, 지정학적 위치, 문화적 관습, 사회구조 등을 포괄해가면서 감정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해석해야하며, 어떤 감정적 기반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행복과 안녕을 가져다주는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술적 차원에서는 역사적 방법, 계보학, 비교사회학적 방법, 인류학적 방법 등이 다양하게 결합되어야 하고, 현실적 차원에서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민주적이고 자유롭게 유도할 수 있는 감정적 하비투스를 형성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상호 간의 적대, 증오, 울분이 아닌 사랑, 신뢰, 기대, 존중으로 엮인 사회적 관계가 한국사회 내부는 물론 다른 국가들과의 교류나 협력에 있어서도 오늘날과 같은 지구화시대에 더욱 요청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