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캠퍼스

한국어로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날개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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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박사과정(국어학)

  올해, 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동 대학원의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현재 나는 한국어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들을 수행하는 박사과정 연구자이자, 서강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이다. 이렇게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연구실에 돌아와서 연구를 수행하는, 바쁘면서도 보람찬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때로 나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신은 과연 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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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좌)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 졸업식 (우)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식


낭만 가득한 국문학도를 꿈꾸던 ‘우리 반 독서광’


  10대 학창 시절, 나는 운동이나 음악에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저 매점과 점심시간만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광기(?)를 보였다. 그것은 바로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었다. 컴퓨터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잔소리보다, 책 볼 시간에 참고서 한 자라도 더 보라는 학교 선생님의 잔소리를 더욱 싫어할 정도였다. (어쩌면 평범한 학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친구들은 내게 ‘우리 반 독서광’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고,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특히 우리의 언어로 쓰인 소설과 시를 참 좋아하였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이 지닌 고유한 결을 음미하는 것이 좋았다. 그 당시에 대학 진학 및 전공 선택과 관련하여 현실적인 고민을 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문학의 숲을 거니는 낭만 가득한 국문학도가 되겠어!’


예상치 못한 방황과 예상치 못한 인연


  설렘과 기대 속에서 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입학했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의 좋은 작품을 발견하고, 끝내 완독하고, 생각하는 모든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만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3학년이 되었지만, 나는 멈춰있었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타지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불안과 걱정만 쌓여갈 뿐이었다.


  그때,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수업 시간에 한 외국인 유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 학생은 비록 정형화된 표현이긴 하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한국어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부자연스럽고 어눌했지만, 그 모습에서 나는 열정 가득했던 내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이 유학생이 한국어를 배우는 길에서, 나처럼 방황하지 않도록 작은 등불이 되어 주겠다고. 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점차 체계적이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게 되었다. 가벼운 선택은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본래 전공인 ‘국어국문학’에서 ‘한국어교육학’으로 전공을 변경하였다. 누군가를 위한 작은 등불이 되겠다던 나였지만, 그 등불은 결국 안개 속에서 방황하는 나 자신을 위한 빛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목표도 세울 수 있었다.
  ‘한국어로 각자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비상할 수 있도록, 그들의 날개가 되어 주자.’


큰 성장과 도약의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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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국학대학원 수업 전공 답사(정동) 및 춘계 학술 답사(강원도)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하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연구하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였다. 석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박사 과정에 진학한 이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우리 대학원의 장점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1. 한국학대학원은 학문에 정진하기에 최적의 환경(24시간 열람실, 기숙사, 다양한 장학 제도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봄에는 대학원 전체 춘계 학술 답사, 가을에는 전공별 추계 학술 답사를 감으로써 한국학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 대학원생에게는 스스로 연구를 수행하는 능력과 더불어, 교수님들과의 학문적 교류가 얼마나 원활한가도 매우 중요하다. 이에 한국학대학원은 소수 정예로 운영되기에 교수님과의 긴밀한 학술적 교류가 가능하다.

  3. 아무리 좋은 한국어 교육 연구자이더라도 외국인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학대학원에는 다양한 국적의 동료 연구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많은 조언들을 구함으로써 이러한 한계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4. 학문 간 경계를 아우르는 통·융합적 교육과 연구가 실현된다. 석사 과정 시절, 나는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와 민속 등에 대한 지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함을 느껴 문화예술학부 민속학 전공에 개설된 수업을 수강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국학대학원 내의 학생들은 특정 학문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한국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증진할 수 있다.


  석사 시절 한국학대학원에서의 학문적 여정은, 추후 또 다른 여정을 떠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으며, 한국학 분야의 전문적인 연구자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세계인과의 교류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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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한국학대학원은 학업 외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국제교류처 해외한국학지원실에서 주관하는 “한국문화강좌”였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학이나 한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초청하여 약 3주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4회에 걸쳐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담당하며 전 세계에서 온 7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알려주었다. 이 특별하고도 귀중한 경험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으로서,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학문적·문화적 교류는 내 연구의 중요한 영감이 되기도 하였기에 연구자로서 큰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특징을 탐구하다


  외국인 학습자들은 종종 한국어 수업에서 배우지 않은 표현들을 일상생활,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등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한국어 수업에서 저런 말들 못 배웠는데?’하며 당황하곤 한다. 혹은, ‘나는 잘 이야기한 것 같은데, 다들 표정이 왜 이래. 나 무슨 실수했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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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부생 시절에 TOPIK 6급(한국어 능력 최고 등급)을 취득한 유학생과 함께 조별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나에게 무해한 표정과 말투로 “종민 씨는 혹시 조장하실 생각이 없으세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유학생은 문법적, 어휘적 오류를 생산하지도 않았고, 고의가 아니라 순수한 의도로 조장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의도치 않게 무례한 감정을 남겼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나에겐 예전부터 꽤 친한 중국인 친구가 있다. 친구는 예전에 나에게 ‘종민, 내가 돈이 필요해. 돈 좀 빌려줘.’라고 한 적이 있다. 친구는 한국어를 5년 정도 공부해서 아주 유창하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친구였고, 위 문장도 사실 어휘적으로,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은 완전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친한 관계이더라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통사적으로 완화된 표현으로 ‘빌려줄 수 있어?’라고 말하거나, ‘미안한데’를 문장 앞에 덧붙일 수도 있고, ‘내가 나중에 맛있는 밥 살게.’처럼 친근하게 보상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언어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말 한마디에도 그 사회의 사고방식과 감정, 관계의 결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언어를 외국인에게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자로 살고 싶다.


한국어로 세상을 연결하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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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도 교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연구실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외국인 학습자들이 언어를 넘어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어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이다.
  누군가는 책에서 길을 찾고, 누군가는 대화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리고 나는 한국어라는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는 기억한다.
  처음 우리의 문학을 공부하며 문장의 결을 음미하던 순간을,
  처음 외국인 학습자의 눈에서 반짝이던 열정을 마주했던 순간을.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배움과 가르침이 맞닿는 곳에서,
  한국어로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누군가가 한국어로 꿈을 꾸고, 한국어로 세상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