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클럽

나의 배움터 한국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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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정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부 석사과정(교육학)

정조께서 무어라 잔소리를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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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정조 어필: 시국제입장제생, 장서각 소장


  위의 사진은 몇 해 전 장서각 기획전에서 전시되었던 조선 정조대왕의 글이다. 전시 작품 밑에 붙어 있던 설명 판넬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정조가 성균관 유생들의 형편없는 작문 실력을 꾸짖고 좀 더 학업에 충실하기를 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정조는 과연 어떤 내용으로 공부가 부족해 보이는 유생들을 꾸짖고 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을까 너무 궁금해져,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글에 적힌 까만 글자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검은 글자를 뚫어져라 유심히 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언젠가 한문을 공부해 이 글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고 사진을 찍어 왔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에서 배움을 계획했던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장서각 전시회에 다녀온 후로 일반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장서각의 고문서학교, 열린수장고 강의와 함께 청계서당의 한문 기초과정도 신청해서 들었다.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보존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기록 사료들은 거의 한문으로 쓰여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왕실 문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이나 문중에서 보관돼 내려오고 있는 문헌들도 그러하다. 250여 년 전 당대의 천재로 여겨지는 두 공부 귀신 정조와 정약용의 수많은 글들과 100여 년 전 나의 증조부께서 쓰신 글들도 모두 한문이다. 몇 세대 지나지 않은 그들의 가까운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초·중·고 공교육 과정을 건실하게 마쳤다 해도 이 글들을 줄줄 읽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보통의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사는 이 나라의 국민 대다수는 겨우 100여 년 전만 해도 주요한 기록과 소통의 수단이었던 문자에 대해 문맹인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문자 언어의 단절이 안타깝고 씁쓸하게 느껴지면서, 이렇게 몇 세대를 넘어가다 보면 곧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슬금슬금 사라져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학 연구와 자료 보존 노력이 너무 귀하게 여겨졌고 이곳에서 일하고 계신 많은 선생님들의 수고 또한 값지게 여겨졌다.


재미있는 역사 수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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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부모님의 권유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육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던 나는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교사가 되기 위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학업에 임해야 할지 길을 찾지 못했다. 친구들과는 즐거웠지만, 꿈을 찾지 못했기에 학업을 갈고 닦진 못했다. 선생님이 되고 난 후에는 재미있는 수업 설계가 매일 매일의 가장 큰 목표였다. 특히 역사 수업에는 더욱 욕심이 생겼는데, 나 스스로도 역사를 좋아했지만, 주위에 수업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들이 많았고 놀러갈 박물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마음대로 조정하며 과학 탐구의 세계로 여행하는 신기한 노란색 스쿨버스를 우리 반에 가져다가 마음껏 박물관을 드나들며 역사 여행을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신날까를 상상하기도 했다.


  잘 꾸며진 주위의 박물관들은 훌륭한 역사 교실이 된다. 값비싼 자본을 들여 최고의 건축 기술로 지어진 박물관은 온 국민이 공공연히 지식과 문화의 사치를 누릴 수 있도록 제공된 공간이다. 럭셔리한 건축자재,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공간 설계, 학습 활동에 최적화된 온도와 습도 시스템을 갖춘 환경에서 귀한 역사 유물을 직접 대면하며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을 아껴두지 말고 학교 교육과 연계해 역사 교실로 늘 활용할 수 있다면 비싸게 지어진 박물관은 사회적 소임을 다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원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매우 지루하고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공간이 되어 버릴 수 있으며, 반대로 힘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역사 시험 100점을 맞게 해 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청소년들이 박물관 등을 활용해 재미있게 역사와 한문을 공부할 수 있는 청소년 고문서학교 프로그램 개발을 꿈꾸어보게 되었다.


메타버스 k-서원


  대학원 학업의 첫 주제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서원이었다. 교육사 과목의 ‘서원교육제도 국제비교’ 수업에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서원에 대해 공부했다. 중국 송나라 때 주희가 세운 백록동서원 이래 서원은 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탁월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기지가 되어주었다. 후에 조선으로 이어져 들어오게 된 서원도 조선 성리학이 종주국인 중국보다도 더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터전이 되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서원은 지금도 배움과 전통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그리고 문화유적으로서 명백히 지속 유지되고 있다. 또한 현재 유지되고 있는 서원의 수가 서원이 가장 많았던 조선시대보다 더 많다고 하니, 현대 우리 문화에 있어 서원은 단지 옛 문화재로서만 기능하고 있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선현을 기리고 그의 궤적을 탐구하는 서원의 정신에 따라 현대에도 서원은 계속 세워지고 있다.


  같은 학기에 들었던 김현 교수님의 ‘시각적 인문학’ 수업에서는 광주 월봉서원을 대상으로 온톨로지 설계를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메타버스 공간에 서원을 건립해 보았다. 한국의 서원을 K-서원이라 칭하고 메타버스의 세계에 K-서원 플랫폼을 구축해 보는 것이었다. K-서원은 선현을 기리며 그 모범적인 삶을 따르려는 우리 서원의 기본 정신을 글로벌 환경에 맞게 구상해 본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시대의 서원에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제향 의례 형식으로 성리학의 선현들을 기리고 추모했다면, 디지털 가상 세계의 공간에 세워지는 글로벌 K-서원에서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글로벌 K-서원에 들어와 자기 지역의 문화에 맞게 그들의 선현을 기리고 추억하며 그 삶을 나눌 수 있음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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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23년 봄학기 ‘시각적 인문학’ 수업 과제. ‘k-서원’ 메타버스


  김현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인문정보학에 대한 모색도 대학원에서의 배움에 큰 동기가 되었다. 역사 수업에 활용할 이야기 콘텐츠 개발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디지털 인문학에서 연구하는 고문헌의 온톨로지 설계와 역사 스토리텔링, 시각적 콘텐츠 개발 등에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 의해 이끌어질 다음 세대의 인문학은 당연히 컴퓨터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데이터로 읽고 쓰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신명나는 청소년 고문서학교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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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한국학대학원 전통교육사 수업사진, 한국학대학원 교정 사진(2024. 9.)


  나는 한국학대학원의 대학원생으로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한국학을 배울 수 있는 배움의 공간인 청소년 고문서학교 프로그램 개발을 연구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여기는 고문서 1장에 엮여 있는 여러 스토리를 줄줄이 끌어내며 한문과 역사를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디지털 언어가 학습 도구가 되는 통섭적 배움의 공간이다. 재미와 즐거움을 기본으로 장착한 청소년 고문서학교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나의 배움의 공간인 우리 한국학대학원을 한껏 누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