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내년에는 뭐 좀 좋은 일이라도 있으려나?
   이 달에는 동지(冬至)가 들었다. 동지는 한 해 중 낮이 제일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인간세상의 행운과 불행은 전적으로 하늘의 움직임 즉 천도(天道)에 달린 것이라고 믿었던 역가(易家)들에게 이 날은 특별한 날이다.
   천도는 한 곳에 중심을 두고 큰 원을 그리며 돌고 있으나, 이를 한 줄 선으로 대신해 길게 늘어뜨리면,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두 곳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곡선이 만들어진다. 동지는 이 곡선의 높낮이에서 보면 가장 낮은 저점에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저점을 지나자마자 곡선은 최고점을 향해 다시 상승하는 길로 접어든다.
   무시이래 천도는 단 한 번도 그 움직임을 멈춘 적이 없으니, 동지를 지나면 물러서지 않는 기세를 가진 필연의 상승은 정해진 것이다. 역가들은 이 기세를 양기(陽氣)라 하였고, 동지는 양기의 새로운 반전이 생겨나는 매우 소중한 날로 해석되었다. 이 날은 저점에서 다 사라져서 마치 꺼진 불씨처럼 보였던 양기가 새롭게 소생하는 탄생과 부활의 날이었다. 그래서 역가들에게 동지는 원단(元旦)의 날 즉 설날이다. 하지만 양기가 소생한다고 해서 양춘(陽春)의 생기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대지는 갈수록 더 꽁꽁 얼어붙고 추위에 하늘은 더 높아만 가니, 꽃피고 새우는 봄날은 아직 멀고 먼 것이 실정이었다. 저 역가들은 실질에 어둡고 실정을 속이는 자들이란 말인가?
   본래 도(道)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만지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도를 아는 역가들이 어찌 실정을 돌아보지 못하는 어두운 자들이겠는가? 세상은 추위의 한복판에 있지만, 천도는 이미 새 판을 짜고 있다. 다만 무성무취(無聲無臭)하여 도를 아는 자들만이 겨우 헤아릴 수 있을 뿐이라서, 평범한 이들이 이러쿵저러쿵할 바가 아니다.
   역가들은 동지에 즈음하여 새로운 양기의 상승하는 힘을 타고 다가오는 새해의 운수를 점치곤 했다. 동짓날에 치는 점은 영험하기가 한 해 최고라서, 엄동설한에도 찬물로 깨끗이 몸을 씻고 비린 것이나 맵고 짠 음식을 피하면서, 우스갯소리를 일삼는 잡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언설을 삼간 채로, 말 없는 저 천도를 주관하는 천지신명께 한 해의 길흉 여부를 여쭈었다.
   역가들이 치는 점 가운데 『주역(周易)』으로 보는 점이 단연 최상승이지만, 점을 쳐서 나온 주역의 글귀들은 예나 지금이나 뜻을 알기에 참으로 어려웠다. 배운 선비들이라면 그 뜻을 익히 알고 음미하겠지만, 작은 희비애환도 몸을 떠는 범용한 자들이 무슨 수로 그 오의를 엿볼 수나 있겠는가? 하늘의 기연이라도 있으면 그럴 수나 있을까,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하늘은 범용한 자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대신 어진 이를 내셔서 주역을 방불케 하는 점치는 책을 만드셨다. 그것이 유서 깊은 장서각의 서장고 깊숙히 숨겨져 있는 『절초점』이라는 일서(一書)이다.
  『절초점』은 본래 『절초점지당시길흉(折草占知當時吉凶)』이란 책을 줄여 말한 것이고, 이는 “풀을 꺾어 치는 점으로 묻는 일이 생긴 그 때의 길흉을 알아내는 책”이란 뜻이다. 이 책을 지은 어진 이는 범려(范蠡)다. 범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나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고사들에 등장하는 월(越)나라의 왕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전략가였다. 그런데 왜 점을 치는 책의 지은이가 범려일까? 아마도 이는 범려가 때를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범려는 나라가 부강해지자 “목적을 달성한 군주 곁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자리를 물리치고 이웃 제(齊)나라의 저자거리로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은자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상업을 일으켜서 거부(巨富)가 되었다. 주로 때에 필요한 물산의 매매 시점을 잘 아는 방식으로 축재하였다. 지금의 의미라면 투자의 귀재였던 것 같다. 이런 범려의 재주를 알고 제나라에서 재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역시 때를 아는 인물은 달랐다. “재물과 명예가 계속되는 것이 화근”이라면서, 다시 자리를 바꾸어서 도(陶)나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거부가 된다. 그는 돈을 버는 때를 아는 귀신같은 재주를 가진 이였기 때문이다.『사기(史記)』에서도 이러한 범려의 재주를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논의하고 있다. 기어이 후인들은 범려를 상성(商聖)으로 추앙하고야 만다.
   때를 잘 아는 이가 앞날의 길흉에 어두울 수 있겠는가? 범려는 주역을 모방하여 절초점을 만든다. 주역은 대나무 가지로 점을 치는데, 절초점은 들판에 널린 풀더미를 가지고 한다. 주역은 왼손과 오른손에 무작위로 나눈 대나무 가지를 숫자로 세고 덜어가며 괘를 만드는데, 모두 64괘이다. 점을 치면 이 가운데 하나가 나오고 그것이 묻는 일에 대한 답이다.
   절초점은 풀을 양손으로 무심코 뽑아서, 왼손의 풀 무더기는 가로로 아래에 두고 오른손의 풀 더미는 세로로 위에 두어 마치 주역의 괘처럼 만든다. 그리고는 아래 더미를 셋씩 세어나가서 나머지를 구하고, 위쪽 더미도 셋씩 세면서 나머지를 구한다. 위의 나머지는 1~3 중에 하나일 것이고, 아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3×3이 되어 총 9가지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것이 9개의 괘가 되었다. 그리고 이 9개의 괘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가오는 한 해는 어떤 행운이 있을까? 아니면 불운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특히나 흉한 일이 있다면 대비할 수 있을 텐데. 하늘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고 점을 허락하신 것이니, 내년이 궁금하다. 우리 연구원을 의인화해서 내년 신수를 물어보자. 무심하게 풀을 뽑으니 왼손에는 5개의 풀이 오른손에는 3개의 풀이 잡혔다. 3씩 덜어가니, 아래는 2이고 위는 3이다. “이위삼횡(二位三橫)”이 나왔다!
전학(轉鶴, 학을 타고 신선으로 변함)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하고, 병이 든 사람은 곧 낫는다.
모든 일이 크게 길하며, 길 떠난 이가 멀리서 돌아온다.
복록이 이르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며, 관사가 해결된다.
(轉鶴. 天地相合, 病人卽差, 百事大吉, 行人遠還, 福祿來至, 凡事如意, 官事得決.)
   백사(百事)가 대길(大吉)하다니, 연구원은 내년에 좋겠구나!
   위와 같은 점사(占辭)가 모두 9개 등장한다. 내년이 궁금하신 분들은 「디지털장서각」(https://jsg.aks.ac.kr)에 오셔서 검색에 ‘절초점’을 치시라. 그러면 절초점의 원문을 이미지로 볼 수 있다. 혹여 이 글을 읽고 내년 신수(身數)가 못내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정갈하게 옮긴 한글 번역문을 흔쾌히 알려드릴 수도 있다. 비록 천기누설의 아픔이 있더라도 연구원의 내년은 복록(福祿)이 깃든 한 해라 하니, 인화(人和)가 곧 복록이 아니겠는가?
[그림 1] 절초점지당시길흉(折草占知當時吉凶) 표지 및 내용 (장서각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