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효도(孝道)가 바로 서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중국에서는 전한(前漢) 시대부터 전체 18장으로 이루어진 금문(今文) 『효경』이 널리 읽혔다. 그리고 전한의 노공왕(魯恭王)이 공씨(孔氏)의 고가에서 발견한 22장 본 고문(古文) 『효경』도 꾸준히 전승되었다.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에 널리 유포된 『효경』은 금문 『효경』도 아니고 고문 『효경』도 아니라, 주희(朱熹)가 『효경간오(孝經刊誤)』에서 경 1장 전(傳) 14장으로 정리한 것을 저본(底本)으로 삼아 만든 『효경대의(孝經大義)』이다. 1590년(선조 23)에 『효경대의』의 대문인 경 1장과 전 16장을 한글로 풀이한 책이 『효경언해(孝經諺解)』이다.

[그림 1] (좌) 장서각 문헌,『효경언해』, (우) 당나라 하지장(賀知章)의 초서 『효경』 1장 일부 (출처: 장서각)
   본래 조선의 국가이념인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볼 때,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와 이것이 확장되어 이루는 “국가”라는 세계가 있다. 가족은 하나의 작은 국가이며, 국가는 하나의 큰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정과 국가는 근본적으로 같은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다. 가정의 윤리인 효도는 국가사회의 공동체로 확장되고, 국가사회의 윤리인 충신(忠信)은 가정 내에서부터 길러지는 것이다. 예컨대, 가장(家長)이 실천하는 효도는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하고, 국왕이나 천자가 실천하는 효도는 국가와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데 기여한다.
   『효경대의』 전(傳) 4장의 제목은 「효치(孝治)」이다. 즉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인간의 보편적 본질인 도심(道心)이 실현되는 가정에서의 인간적 도리를 범주화한 것이 효도이고, 그것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사회윤리적 도리를 범주화한 것이 충신이다. 효도는 구체적으로 부모에게 순종하고 어진 마음으로 섬기는 행위를 말한다. 충신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진심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효도와 충신은 근본적으로 선한 본성이 밖으로 드러나 표현되는 마음의 실천 형태이다. 즉 효도의 마음과 충신의 마음이 유교적 실천윤리의 두 축이 된다.
   사대부 선비는 스스로 효도와 충신을 실천하면서, 또한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효제·충신의 행실과 농사를 힘쓰고 무예를 연마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효도와 충신은 인간의 본질인 인(仁) 또는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윤리규범이다. 효도와 충신은 가정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국가로 점진적 확장을 이루며 “대동(大同)” 사회의 구현 원리가 된다. 조선시대 사대부 선비의 표상으로 존경받았던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은 한 고을이 잘 다스려지거나 또는 어지러워지는 것은 실제로 고을의 국립 학교인 향교(鄕校)와 관계가 깊다고 보았다. 한 고을뿐만이 아니라 비록 천하(天下)라도 다 학교의 바른 교육에서 올바른 교화가 시작되는 것이니,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의 크고 작은 것은 다르지만 그 법칙은 한가지로 같다고 하였다.
   “시골의 풍속이 경박해지고 조정의 정치 교화가 막히는 것은 그 병의 근원이 오로지 학교의 강학(講學)이 밝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다. 강학이 참으로 밝아진다면 효제충신(孝悌忠信)의 가르침을 사람마다 익힘으로써 학교에서부터 온 마을의 저잣거리에 이르기까지 감화되고 발전되는 것이 저절로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륜(五倫)이 각각 그 차례를 얻고 사민(四民) 즉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이 각각 자기의 업(業)에 충실하면서 평안하게 살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벼슬을 내려 줄 만큼 풍속이 점차로 성숙될 수가 있을 것이다.(「점필재집」 제1권 「서」)”
   사회 풍속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학교 교육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여 어린 시절부터 효제와 충신의 윤리규범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을의 풍속도 바르게 변화하고 나라의 정치도 안정을 찾게 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친(親)·의(義)·별(別)·서(序)·신(信)이라는 오륜의 질서가 정착되고, 온 나라의 백성들이 자기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조선시대 사대부 선비들이 삶의 규범으로 삼는 효제 또는 효도와 충신은 풍속교화의 핵심 윤리가 된다.
   벼슬에 나아간 사대부 선비들은 군왕을 충(忠)과 신(信)을 다해 섬긴다. 그리고 군왕을 대신하여 위임받은 권한으로 백성을 성심껏 돌보아야 한다. 이것은 유학의 본래 정신인 위민(爲民) 의식의 발로이다. 사대부 관료들은 지배계층으로서 백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국정을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군왕은 관료로 임명된 사대부 선비들에게 군왕으로서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 군왕과 신하 관료인 사대부 선비 사이에는 상호간에 지켜야 할 의리가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君臣有義)는 오륜의 덕목이 바로 이것이다. 관료의 길로 나아간 사대부 선비들은 군왕과 의리로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군왕이 의리를 저버리거나 인정(仁政)을 베풀지 못하고 폭정(暴政)을 일삼는다면, 미련 없이 벼슬자리를 버리고 떠난다. 관직을 버리고 시골 마을로 낙향(落鄕)한 사대부 선비들은 마을의 풍속을 교화하며, 후학을 기르는 강학에 힘쓴다. 세속의 명예와 권력 또는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선비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사대부 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