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습재 일기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나의 진솔한 이야기

하울 사진
아타이데 데 소우자 맬로 하울 이아고 /하우리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석사과정 (국어학)

  나는 학부를 졸업할 때 졸업인터뷰에 응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질문이 졸업 후 앞으로의 계획과 가장 기대되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난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이 제일 많이 기대되며 가능하다면 학부에서처럼 빨리 졸업한 후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지나고보니 그때의 난 확신에 가득차있고 목표도 분명했으나 조금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대학원이라는 곳은 성과를 내는 곳이 아니라 학자로서 성장해나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습재 일기>를 통해 한국학대학원에 진학한 후 그동안 나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독자분들에게 진솔하게 나누고자 한다. 이는 석사 1학기에 갓 입학한 나, 그리고 지금 4학기를 거의 마쳐가는 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1학기 - 신입생


  나는 대학원 석사 1학기 때 대학원이라는 곳은 “시간과 싸움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첫 학기에 최대한 많은 과목을 수강하려고 했다. 그때 나의 목표는 학점으로 졸업 조건을 빨리 충족하고 조속히 논문 주제를 찾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대학원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 학부생의 '결과중심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내가 대학원 생활에서 보내는 데 있어 고통을 주기만 했다. 우선 내게 학업 부담이 너무 과중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책을 몇 권씩 읽고, 논문을 읽고 요약하고, 시험과 발표 등을 준비하느라 잠을 잘 시간조차 아까웠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활동들이 시간에 쫓겨서 기계적으로 하게 되면서 제대로 한 것이 별로 없었다.... 재미없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정말 좋았지만 공부는 재미없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공부인데 왜 재미없었을까?... 난 당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그 일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대학원 1학기 때의 나는 학업적인 측면에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겪기 시작했다. 그래도 스포일러를 하나 주자면, 대학원 생활 자체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 같다.


2학기 - 새로운 출발


  첫 학기를 어렵게 마치고 여름 방학이 왔다. 2학기를 시작하기 앞서서 첫 학기에서 공부한 것을 한번 복습할 시간을 가졌다. 복습하면서 살펴보니 내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깊게 반성할 시간이 있었다. 나는 '시간 관리'를 못하고 있었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리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매일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지를 일일이 생각하고 꼼꼼하게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재미있는 대학원 생활을 보내기 위해 학교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학술 행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대학원 2학기를 시작하면서 특별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 첫번째 추억은 국어·국문학 전공 수업 이전에 김병선교수의 '미디어와 국문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시작됐다. 그 수업에서 나는 국문학 관련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매주 국어·국문학 학우들과 함께 바깥에 나가서 영상을 촬영하는 실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학과의 학우들과 친해지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영상 촬영·편집에 대해서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 경험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특히 다른 사람과 협업해서 실제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내게는 너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이 수업에서 개인 과제로 한국 시에 관한 1분 영상 2편을 혼자 기획 및 제작을 했고, 조별 과제로 다른 수강생과 함께 손원평의 아몬드라는 소설 작품을 소개하는 7분 다큐멘터리식 영상 1편을 제작했다. 수업 마지막 날 김병선 교수께서는 현직 영상 전무가들을 초대하셔서 작은 영화제처럼 행사를 진행하였다. 조별로 제작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이에 대해서 설명할 시간도 가졌다. 그 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아직 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유튜브 수업 영상

<그림 1> 하울의 YouTube 채널과 국문학과 학우들과 실습한 영상들


  ❶ 시 소개 영상 1 - 문효치 ‘쓸쓸한 잠’ - https://www.youtube.com/watch?v=s0VSaP4HXbo
  ❷ 시 소개 영상 2 - 나태주 ‘한밤중에’ - https://www.youtube.com/watch?v=akEvZWLhcS4
  ❸ 소설 소개 영상3 -손원평 '아몬드' 소설- https://www.youtube.com/watch?v=guL7rjyRr2M


  대학원 2학기때 기억에 남는 또다른 큰 행사는 <제10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였다. 이영준 연구원의 한국어 학술 발표 수업을 들으면서 매년 11월에 한국학대학원에서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의 주제는 '차별금지법'이었다. 나는 브라질 사람으로서 차별금지법이란 주제에 익숙했지만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 주제를 가지고 최소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다른 팀과 토론하면서 경쟁해야 하는 것은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매우 떨리기도 했고, 또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이 내게는 매우 피곤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영준 연구원의 지도 하에 이번 대회는 단순히 실력을 경쟁하는 것이 아닌 다같이 한국어로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상대팀과 여러 번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양 팀이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기고 지는 결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 서로에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최종적으로 나는 단체상으로 금상, 개인상으로 은상을 받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내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당당히 밝혔지만, 솔직히 내가 상을 받지 못했어도 그 날 난 최선을 다한 것 같아서 스스로 매우 만족했다. 어차피 나에게 가장 큰 상은 말하기 대회를 통해 스스로 성장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소중한 상은 친구 몇 명을 새로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학대학원 답사 사진

<그림 2> 제10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하울과 사만싸 / 2021년 11월 24일


3학기 - 유익한 시간을 위하여


  2학기가 끝나고 또다시 방학이 왔다. 대학원에서의 두번째 방학인데도 정말 고민이 많았다. 논문 주제를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전공 교수와 면담을 하면서 내가 아직 더 많은 수업을 듣고 직접 무엇을 연구하는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분명한 것은 국어학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배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학기에 우리 학과에서는 국어학보다 한국어교육 관련 과목이 더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헤맸다.

  그때 우연히 나는 학과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점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대학교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선배님의 유사한 경험담이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하였다. 전공 교수에게 허락을 받고 난 학점 교류 학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외대)에서 3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외대에서 내가 수강한 과목은 임형제 교수의 대조언어학과 허은혜 교수의 한국어형태문법개론이었다. 그리고 우리 대학원에서도 한국문화학당 정다운 연구원의 한국어 글쓰기(심화)를 수강하였다.

  개인적으로 외대에서 수강한 '한국어형태문법개론' 수업이 내게는 제일 유익하고 인상 깊었다. 허은헤 교수께서는 수업 내용 외에도 젊은 국어학자로서 본인의 다양한 경험담을 많이 알려 주셨다. 박사 논문 주제를 찾는 것부터 졸업할 때까지 대학원생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논문을 쓸 때 생각하거나 조심해야 할 점, 대학원 생활을 수월하게 보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 내가 그동안 고민해 왔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한국학대학원에서 제공해준 학점 교류 프로그램은 내게 많이 유익했고 개인적으로 대학원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학기에 내게 또 다른 특별한 활동이 있었다. 바로 한국문화학당에서 준비한 떡박물관 체험 학습이었다. 이 기회를 통해 한국에서 떡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접 떡을 만들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떡박물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은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박물관을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떡박물관을 관람하고 전문 강의도 들어보니 떡은 단순히 한국 음식 중 하나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에 아주 오랫동안 공존해온 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지역, 시기, 행사 등에 따라 떡의 요리법도 매우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일반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국학과 한국문화와 연관해서 생각한다면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우리 주변에 많은 한국적인 요소들을 쉽게 무시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난 미래의 한국학자로서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떡박물관 답사 사진

<그림 3> 한국 떡박물관 체험 사진 / 2022년 5월


4학기 -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게속 쌓여간다


  3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이 돌아왔는데 한국의 여름 날씨는 무척 더웠다. 브라질 사람이 한국의 여름 날씨를 이렇게 덥게 느끼다니... ㅜㅜ 그 와중에 7월 중순 학교에서 통영 및 장사도 체험 학습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통영과 장사도를 직접 방문해서 한국 전통시장, 한국의 섬 문화를 경험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는 한국에 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고, 섬에 가볼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프로그램에 재빨리 신청했다. 그런데 나는 한국 남동쪽에 있는 통영과 장사도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많이 걱정했다. (나는 브라질 사람이지만... 바다를 극히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다양한 체험과 현장 답사로 한국의 섬을 방문하는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아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장사도 답사 사진

<그림 4> 한국학대학원 답사 사진(장사도) / 2022년 7월 중순


  그리고 이번 학기 난 우연히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매년 추진하는 '2022년 한국학대중화 영상'에 한국학대학원 외국인 대학원생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지명도 있는 김현욱 아나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연구원의 교수, 연구원들과 함께 방송 전문 스튜디오에서 조선시대 왕, 숙종과 관련한 한국학 영상을 촬영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장사도 답사 사진

<그림 5>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중화 영상 스튜디오 촬영 사진 / 2022년 11월 중순


  실제 방송국 촬영을 진행하는 전문 스튜디오에서 많은 카메라와 스텝들, 실제 대본 연습을 진행하면서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주변에서의 응원에 힘입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나는 한국학대학원에 온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대학원 생활의 처음 시작은 내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그 이유는 대학원이란 곳을 잘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이 대학원에 적응케 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면서 조금씩 대학원에 익숙해졌고 점점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경험은 실제 학업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많이 성장하고 있다. 4학기를 마치면 앞으로 논문을 쓸 준비를 해야 하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이 크지만, 그 동안 한국학대학원에서 열심히 배워 온 것들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논문을 쓰는 일은 두려워 할 목표가 아니라 도전해보고 싶은, 해내고 싶은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한국학자가 되기 위해 머나먼 브라질에서 꿈꾸며 달려온 나를 위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