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통합교육’과 ‘다문화교육’, 그 차별 문제의 접맥과 확장

    : ‘특별’한 배려에서 ‘당연’한 권리로

정미량연구원
정미량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었다. ‘장애학생이 차별 없이 또래와 더불어 개인적 요구에 적합한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2021년 현재, 우리나라 특수교육 대상자 중 72.2%(70,866명)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일반학교 통합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특수학교나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해 분리교육을 받는 장애학생은 27.8%(27,288명)에 불과하다.


   통합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의 차별 상황은 심각하다. 실례로 2014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장애학생 교육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합교육을 하는 일반학교에서 장애학생의 인권침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59.2%에 달하였다. 인권침해 유형은 통합지원 미제공(21.8%), 놀림(20.4%), 따돌림(16.1%), 비하(13.7%), 의사소통 미지원(13.2%), 사적공간 침해(12.1%), 체벌(11.5%), 상해·폭행(9.9%) 등이었다. 그 이후 2022년 교육부가 발표한 ‘국립특수교육원 인권지원단 현장 지원 결과’에서도 2013-2021년 동안 일반학교의 인권침해 피해학생 가운데 장애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59.4%에 달했다.


[그림 1]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 (출처:한국일보)

[그림 1] 서울 강서구 탑산초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 (출처:한국일보)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교육에 대한 차별의 역사는 깊다. <한국일보 자료사진(위)> 2017년 9월, 서울 강서구 탑산초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주민 찬성을 호소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입학자격 제한조항이 교육법에서 철폐된 것은 1994년의 일이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식에서 기인한다. 타자화(他者化)이다. 타자화는 특정 대상을 말 그대로 우리와 다른 분리된 존재로 만드는 말과 행동, 사상, 결정 등의 총집합이다. 대상의 이질적인 면을 부각시켜 공동체에서 소외되게끔 만들고, 대상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우리’에서 배제하는 행위이다.


[그림 2] ‘통합교육 중장기 발전계획’ 배너 (출처:서울시 교육청)

   작년 서울시 교육청은 통합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통합교육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였다. <서울시 교육청 자료> 서울시 교육청은 통합교육팀을 신설하고 ‘통합교육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였다.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협력하여 장애학생 뿐 아니라 교실 내 모든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며 배우는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보편적 학습설계’란 학습자들에게 존재하는 개인 간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교육이다. 학습목표, 학습방법, 학습자료, 학습평가 등을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포함한 모든 개별 학습자에게 적합하도록 기획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아우르려는 노력이다.


   ‘보편적 학습설계’는 장애학적 통합교육 학자의 관점을 반영한다. 이들은 ‘장애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과 문화를 인정하며 이들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교육’이 통합교육이라고 정의한다. 한편으로 통합교육을 다문화교육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는 문화적 다양성의 대상으로서 다문화 교육과정 내에 반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교육의 주체이다. 학생에게 적절한 교육적 지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장애를 지닌 학생이든 이주배경 가정의 학생이든 이들은 학생이다. 이들에 대한 교육적 지원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당연한 의무이다. ‘정상’과 ‘표준’이라는 잣대를 통해 이들을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다른 존재로 ‘우리’로부터 분리하고 배제하고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교육은 멈춰야 한다. 성숙한 통합교육과 다문화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