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트랜스-오리엔탈리즘의 상상력과 한국종교, 그리고 한국종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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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 전공 부교수

   트랜스-오리엔탈리즘(trans-orientalism)은 학술 서적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낱말 두 개를 조합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막상 붙여 놓고 보니 의외로 쓰임새가 있다. 몇 세기 전부터 유럽에서는 오리엔트 지역에 연원을 둔 미적 취향의 유행 풍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오리엔트의 문명(혹은 문화), 역사 등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일 등을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후반기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온갖 지식을 담론의 차원에서 분석하여 그 논리적 구조를 파헤쳤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서구인들이 비서구 지역을 표상하는 방식과 그 표상물 전체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발음하게 되면 거의 자동으로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이름이 따라온다. 여기에 왜곡이나 폄하 등의 수식어도 클리셰가 되어 늘 붙어 다닌다.


   하지만 오리엔트를 묘사하고 해석하며 분석하고 기술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서구인들의 글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을 조자룡이 헌 창 쓰듯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일단 오리엔트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대상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레반트 지역, 인도, 중국 등의 순서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에드워드 사이드가 논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문제가 복잡한 상황도 있다. 오리엔트라는 표상물을 가운데에 두고 한쪽에는 순수 관찰자 서구인, 다른 한쪽에는 순수 관찰 대상 비서구로 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서구인은 오리엔트에 타자의 이미지만 담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아득한 과거의 모습을 투사하기도 한다. 한편 비서구는 서구인이 만든 오리엔트를 거울로 삼아서 시대에 뒤처진 자신을 반성하고 서구를 추종하는 듯하다가, 느닷없이 폭주하면서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근원적인 자아로 여기면서 서구를 넘어설 수 있는 미래의 비전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오리엔탈리즘은 단순 명쾌한 개념이 아니며, 관심 대상에 맞추어 그 외연과 내포를 변경할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트랜스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표상의 바다를 두고 이쪽 땅에서 저쪽 땅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오가는 말, 관념, 지식, 태도, 취향을 트랜스-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을 빼고, 그 자리에 한국학 또는 한국종교를 집어넣으면 어떤가? 트랜스-한국학 혹은 트랜스-한국종교 말이다. 서구인들이 만들어낸 한국(종교)에 대한 표상들로 이루어진 바다를 상상해보자. 그들은 표상들에 어떤 의미를 담았던 것일까? 종교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저급한 악마 숭배가 횡행하는 야만의 나라로 보았을 수도 있고, 인류의 시원에 이미 유일신 관념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고귀한 땅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한편 표상에 의해 규정당하는 입장에 놓인 조선인은 그 표상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한시바삐 문명 개화하여 반문명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표상을 뒤집어서 황금시대의 영광이 담긴 흔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나라 잃은 설움을 이겨내자는 사람도 있었다.


   트랜스-오리엔탈리즘의 상상력을 가지고 개항 무렵부터 해방 전까지 서구인들이 한국종교에 관해서 만들어냈던 표상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자료부터 정리해야 한다. 포경선을 몰고 표상의 바다를 누비면서 익히 잘 알려진 것부터 아직 한 번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들을 수집하고, 여기에 상세한 해제를 붙여서 자료집을 만든다면 한국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연구자들이 모여서 2020년 한 해 동안 본원 연구처의 공동연구과제를 수행했다. 개항 무렵부터 해방 이전까지 나온 영어와 불어로 된 서양인의 한국종교 관련 문헌들을 단행본과 잡지 기사를 망라하여 수집했다. 그런 다음에 학술적 의의가 큰 문헌들을 선별하여 상세한 해제를 붙였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표상은 대상 자체가 아니다. 대상의 일부 특성을 추출해 이미지 혹은 개념으로 가공한 것이 표상이다. 그러므로 표상을 다루는 것은 그 표상을 연구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학문의 역사를 성찰하는 작업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즉 서구인이 지은 서양 문헌에서 한국종교 관련 표상들을 추출하는 것은 한국에서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걸어온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렇다. 단군의 탄생과 옛 조선의 건국은 문헌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기록이다. 여기에 단군신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곰과 호랑이 이야기를 토테미즘으로 설명하면 표상이 된다. 신화와 토테미즘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문헌 기록을 다시 가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이 만들어낸 한국종교 관련 표상들은 한국 종교학의 역사를 쓰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모쪼록 코로나 확산 속에서 어렵사리 마무리 지은 2020년도 공동연구과제 <한국종교 관련 서양 문헌 연구: 해방 이전을 중심으로>의 연구 결과물을 학계의 동료 연구자들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