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인간의 경제’를 위한 호혜와 협동의 가치 탐구

정헌목 사진
정헌목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부 부교수

   2000년대 후반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대안 모색과 실천이 여러 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이론적 측면에서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바로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와 경제사가 칼 폴라니(Karl Polanyi) 등을 중심으로 한 인류학의 학문적 유산이다. 바야흐로 ‘경제’에 관한 인류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경제행위를 사회의 다른 영역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인류학의 총체적 관점은 경제를 인간의 삶과 사회 속에서 복합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행위 동기를 합리적 선택과 개인의 이기심으로 전제하는 경제학의 차가운 시장 논리를 넘어 인간을 위한 경제, 즉 ‘인간의 경제(the human economy)' 1)가 강조되는 것이다.


  (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우)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class=

(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우)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호혜성(reciprocity)이나 공동체, 공유재 등은 이 같은 대안적 논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념이다. 2010년대 이후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 운동은 위에서 언급한 개념들을 실제 현실에서 실천에 옮긴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과 실천에 관한 연구는 특정 분야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학문적으로 다방면의 접근이 요구된다. 이에 발맞춰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18년부터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이라는 이름의 공동연구단을 출범시켜 지금(2022년)까지 5년째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인류학과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원내·외 연구자들이 모여 진행 중인 이 연구사업은 과거와 현대 한국의 사회조직 원리를 호혜적 관계의 측면에서 재조명하는 한편, 한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이론적 정교화를 모색하여 한국학의 외연 확장에도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국제학술회의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연구단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 (2018.11.13)


   현재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연구단은 전통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조선시대의 계와 향촌사회 연구팀”과 현대사회를 대상으로 한 “21세기 한국사회의 호혜와 협동 연구팀”, 그리고 개념 및 이론을 매개 삼아 한국을 연구하는 “호혜와 협동의 이론적 기반 연구팀”이라는 3개 팀으로 이뤄져 있다. 필자는 이 가운데 “이론적 기반 연구팀”의 일원으로 호혜성과 증여교환(선물교환), 나눔, 공동체 등 기본 개념에 관한 연구와 함께, 전통적인 촌락 공동체에서부터 최근의 협동조합에 이르는 과거와 현대 각각의 구체적 사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수행해 왔다. 특히 단기간의 성과 도출 압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장기 연구과제의 이점을 살려 실험적인 분석 시도 또한 진행해 오고 있다.


   계나 두레 등 과거 한국사회의 호혜와 협동의 사례를 다룬 역사학 분야의 연구나, 사회과학 일반에서 진행되어 온 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 관련 연구가 드물지는 않다. 호혜성 개념이 학문의 기본 축 중 하나를 이루는 인류학 분야에서도 증여교환과 호혜성에 주목한 연구가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론 및 개념의 측면에 집중하여 과거와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호혜와 협동이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졌는지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쉽게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반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 아래 본 연구팀은 기존에 진행되어 온 접근과 방법론적 측면에서 차이를 두고 추상적 개념과 현실의 사례에 관한 이론적 분석에 과감하게 천착해 왔다. 호혜성과 공동체, 증여, 나눔, 교환, 협동조합 등을 다룬 선행연구가 적지 않은 학문적 현실에서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연구팀이 앞으로 내놓을 성과가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인간의 경제’는 인류학자 키스 하트(Keith Hart)가 제안한 용어로, 시장 거래를 통해 충족되는 욕구만이 아니라 교육과 안전, 건강, 환경 등 공공재에 대한 욕구, 나아가 1인당 소득 같은 객관적 지표로 환원될 수 없는 존엄과 같은 무형의 욕구까지 포함한 인간의 모든 욕구의 충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