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보존처리 전문가의 관점에서 본 《이십공신회맹축》

김나형 사진
김나형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정전문위원

조선왕실의 기록물들은 정말 무겁다. 길이가 60cm에 육박하는 어람용 의궤를 손으로 들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감히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두 손으로 들더라도 허리가 저절로 굽혀진다. 왕조시대도 아닌 지금 우리는 장서각 수장고에서 기록물의 무게에 허리를 굽혀 가며, 그때의 권위를 몸소 느끼며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를 제일 압도하는 자료는 단연코 《이십공신회맹축》1)이다. 《이십공신회맹축》은 조선시대에 공이 있는 신하를 공신으로 녹훈하고, 왕이 공신연을 베풀어 역대 공신들이 회맹하며 만든 자료이다. 길이가 24m에 달하는 두루마리 자료로, 길이뿐만 아니라 하축 양쪽의 멜론만한 옥으로 만든 축수 2개가 달려있다. 조선왕실의 격을 높이고 회맹연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겠지만 이 자료를 한번 펼쳤다가 다시 돌돌 말아야 할 때는 중간 중간 의식이 사라지면서 귀에서 삐소리가 날 지경이다.


책이나 두루마리, 병풍을 직접 만드는 보존처리 전문가의 입장에서 《이십공신회맹축》을 보면 폭 90cm에 길이 24m의 두루마리는 정말 어마 무시한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두루마리는 횡으로 길게 이은 비단의 양 끝에 축수가 달린 형태인데, 이런 형태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각 부분의 비단을 배접하여 그것을 두루마리 모양대로 이어서, 또 몇 차례의 배접을 해야 한다. 어림잡아도 200번 이상의 배접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 지금보다 재료나 도구 면에서 부족한 그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두루마리를 제작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다행히 공신 녹훈 당시의 과정을 기록한 의궤에서 제작의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의궤에서 회맹축에 사용된 재료에 대한 기록을 찾아 실제 유물을 현미경을 통해 좀 더 확대하여 분석하면서 제작에 사용한 재료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이 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두루마리 형태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십공신회맹축》의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화본(畫本)의 바탕재료인 비단(생초)을 아교포수하고, 배접한다.

② 상회장, 하회장, 좌·우변아회장 비단을 배접하고 건조한 후 모양대로 자른다.


사용 재료들 표

③ 화본과 상․하회장, 좌·우변아회장을 두루마리 모양으로 붙인다.

④ 전체 배접을 하고 상축과 하축을 양 끝에 연결한다.

⑤ 마지막으로 다회영자를 연결하면 두루마리가 완성된다.

사용 재료들 표

《이십공신회맹축》 전개도


이렇게 두루마리가 되기까지 사용된 재료는 크게 장황용 비단, 배접용 종이, 상·하축에 사용된 나무와 옥, 그리고 아교포수에 사용된 아교와 백반, 글을 쓰기 위한 붓과 먹, 주홍안료 등이다. 그리고 황밀이나 청밀은 마지막 배접을 완성한 후 두루마리 뒷면을 책의 능화표지처럼 재질적으로 튼튼하게 해주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리고 다회영자의 끝부분에 상아조각을 다회영자로 두루마리에 감아서 고정하기 위해서 연결한다.


《이십공신회맹축》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는 배접지와 화본의 비단이다. 화본에 사용된 비단은 의궤에 백초(白綃)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는 평직(平織)의 비단이지만 정련을 거치지 않은 실을 사용해서 모시처럼 딱딱하다.

사용 재료들 표

상·하회장에 사용된 비단은 조선시대 단(段)이라고 하는 비단이다. 단은 주자직(朱子織)으로 짜여진 직물로 공신화상의 장황비단이나 책의 표지에 많이 사용되는 비단이다.

사용 재료들 표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유일본인 《이십공신회맹축》의 복제본 제작 가능성을 알아 보기 위해 “백초”와 “남대단” 비단의 복원 방법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백초의 경우 광폭(廣幅)이지만 평직의 단순한 조직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복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양이 있는 남대단의 경우에는 문양 한 종류에만 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 문단(紋緞)을 복원하는 일은 직기 제작에서부터 문양별 문지(紋紙)를 만드는 일까지 조직적으로 업무분장을 해서 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요즘은 수직비단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어 이 일을 진행하려면 전문가가 몇 년 동안 생업을 접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십공신회맹축》 복제본 제작 사업이 가능하다면 조선왕실 장황문화의 진면목을 재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기록문화를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이러한 사업 발주를 통해 전통기술 재현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장서각 연구 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 장서각에 전해지는 2점의 《이십공신회맹축》은 제작시기가 다르다. 보물 제1512호 영국공신의 회맹축은 인조대에, 보물 제1513호 보사공신의 회맹축은 숙종대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두 자료 모두 이름이 《이십공신회맹축》인 것은 조선시대 공신 녹훈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삭훈, 복훈을 반복하면서 그 당시 20번째 공신으로 녹훈이 되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