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지역학을 위한 학제 간 공동연구와 콘텐츠 개발

밀양의 사례를 중심으로

정은주 사진
정은주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선임연구원

조선시대 밀양은 밀양도호부로서 영남좌도의 안동, 경주, 상주와 함께 영남에서 핵심 축을 담당하는 웅부(雄府)였다. 또한 진주와 산청을 포괄하는 영남우도와는 색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 행정적 분리 과정에서 조선시대 이전에 형성되어 있던 정체성과 괴리되고, 현대 밀양의 대외적 이미지는 정책적인 갈등 요소가 부각되는 안타까운 현실과 마주하기도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2000년 이후부터 밀양지역 사회상을 규명하기 위해 이 지역의 문헌 소장실태를 조사하여 10여년에 걸쳐 밀양의 의령남씨, 밀성박씨 외에 지역 서원의 고문서와 고서 자료를 발굴한 바 있으며, 『한국구비문학대계』를 통해 삶의 현장 목소리를 채록하기도 하였다. 이에 집적된 자료를 연구 성과로 확산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20년도 연구 과제로 시작된 “문화적 다양성의 층위로 본 조선시대 밀양”의 공동연구에는 역사학, 한문학, 국어학, 민속학, 미술사학, 음악사 등 총 7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밀양이 지닌 역사적 궤적을 분석하여 현대 밀양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통해 밀양 지역의 전통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려 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문헌과 현장이 결합된 연구를 지향하기 위해 2차례의 현장답사와 학술회의를 거쳐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역사문화적 접근을 통해 학제 간 융합 연구를 실현하여 다음 7편의 논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첫 번째 주제인 「손기양 도맥의 상징과 현창, 《칠탄정십육경도》」는 밀양손씨 문중에 소장된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시화를 창작한 인물들이 18세기 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점에서 손기양의 도맥을 이익(李瀷)을 비롯한 안산의 문인들과 근기(近畿) 지역까지 확대시키려는 의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두 번째 연구는 「조선후기 경상좌도 밀양 엘리트 집단의 혼인망과 분재(分財)」를 주제로 조선후기 분재와 혼인을 통한 지역사회 사족들의 존재양상을 추적하였다. 밀양도호부의 의령남씨, 창녕조씨 그리고 밀성박씨를 대상으로 지역사회와 인연을 맺은 엘리트 집단의 성격과 이들이 실시한 분재의 특징과 토착 성씨의 가족 경영, 혼인관계와 분재를 통한 존재 양상을 분석하였다. 세 번째 연구는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의 역사적 의미」를 주제로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 등의 과정을 통해 손기양의 학문적 권위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분석하였다. 손기양의 사후 후손들은 손기양의 퇴계학파 내 위상을 정립하고 학문적 권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퇴계학파 중에서도 한강 정구 문인이자 밀양을 대표하는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음을 규명하였다.

네 번째 연구는 「조선시대 밀양지역 성황신앙의 위상과 문화적 영향력」을 주제로 밀양지역 성황신(城隍神)인 손긍훈을 지역 수호신으로서 수호한 배경과 그의 위상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그가 지역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을 논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성황당을 산 정상에 건립함으로써 산신과 성황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민간신앙에서 동일시되어 수용되는 양상도 고찰하였다. 다섯 번째 연구는 「조선시대 밀양지역 명승에 대한 인식과 그 형성 양상」을 주제로 조선시대 밀양의 명승에 대한 인식과 그 전개 양상을 살피기 위해 15세기 서거정의 「밀양십경」, 16세기부터 형성된 「금시당십이경」, 그리고 1808년 밀양에서 경주까지 여행한 영남 문인들이 남긴 『동남창수록』에 보이는 밀양의 명승과 명승시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여섯 번째 연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밀양 방언 자료와 밀양 언어의 특징」을 주제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밀양의 방언을 반영하는 자료들을 소개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이 시기 밀양 지역에서 작성된 『수겡낭자전』, 『동몽수독천자문(童蒙須讀千字文)』과 기타 언간 자료를 통해 밀양 방언의 모음 음운론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일곱 번째 연구는 「밀양지역 민요의 분포양상과 음악적 특징」을 주제로 밀양의 향토민요를 대상으로 분포양상을 파악하고, 이들의 음계나 박자구조 등을 통하여 밀양 향토민요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상의 공동연구는 밀양의 역사, 문화, 민속, 예술, 언어 등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조명하고, 지역사 연구 성과를 축적하여 새로운 연구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현대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수 있는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밀양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학제 간 공동연구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역학 및 한국학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