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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습재(時習齋)’란 무엇인가?

나상훈 사진
나상훈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박사과정(한국사학)

시습재 일기를 쓰려니 갑자기 ‘시습재’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졌다. 시습재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아야 비로소 일기를 쓸 자격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내가 시습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적어보았다.


1. 나의 이해

하나, 시습재는 한국학대학원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이름이다.

둘, 이 이름은 공자의 말을 기록한 유학의 경전 『논어(論語)』의 첫 구절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에서 유래했다.

셋, 이 첫 구절의 뜻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이다. 그러므로 ‘시습’은 ‘때때로 익히다’ 또는 ‘때때로 복습하다’라는 뜻이다.

넷, 주희(朱熹, 1130~1200)의 해석을 모은 『논어집주(論語集註)』의 해석에 따르면, ‘때때로’란 말은 ‘시시(時時)’의 번역으로서 ‘가끔’이란 뜻이 아니라 ‘자주[數, often]’라는 뜻이다.

다섯, ‘재(齋)’는 공부하는 집 또는 서재(書齋)를 뜻한다.

여섯, 결국 시습재란 ‘대학원에서 배운 것을 자주 복습하는 공부방’이란 뜻이다.


이런 내용에 모두가 동의하는 줄 알았다. 왓슨(Burton Watson, 1925~2017)의 영문 번역도 나의 이해와 일치한다. “Studying, and from time to time going over what you’ve learned—that’s enjoyable, isn’t it?” 그런데 『강의』라는 책을 읽어보니, 신영복(申榮福, 1941~2016) 선생님은 그렇게 해석하지 말라고 한다.


2. 신영복의 해석

첫째, ‘시(時)’는 ‘때때로(often)’가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성숙한 ‘적절한 시기(timely)’를 말한다. 즉 그 실천의 시점이 적절한 때임을 의미한다(144~145쪽). 이런 풀이는 『논어주소(論語注疏)』에 나오는 황간(皇侃, 488-545)의 ‘중시(中時: 가장 알맞은 때)와 관련 있어 보인다.

둘째, ‘습(習)’은 ‘복습(復習)’이 아니라 ‘실천(實踐)’을 의미한다. ‘습(習)’이라는 글자의 생김새를 보면 부리가 하얀(白) 어린 새가 날개짓(羽)을 하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즉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쁘다는 것이다(143~144쪽).

그러므로 “주・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실천하는 게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단순히 배우기만 한다고 기쁜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개인적, 사회적 실천과 연결이 되어야 진정한 공부이다. 라우(D. C. Lau; 劉殿爵)의 영문 번역은 신영복의 설명과 흡사하다. “Is it not a pleasure, having learned something, to try it out at due intervals?”


시습재전경

신영복의 해석이 근사하다. 그런데 이 근사한 해석이 과연 문자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자학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자였던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1910~2006)의 『상용자해(常用字解)』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문자 해석은 사뭇 달랐다. 그의 해석은 지금 우리가 보는 한자의 모양이 아니라 옛 한자의 모양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글자의 원래 모습을 먼저 제시하고 그 모습에 따라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3.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 해석

전문(篆文)

전문(篆文)

첫째, ‘시(時)’를 고대의 전문(篆文)으로 쓰면 이렇게 생겼다.

글자의 아래 부분에 삼지창처럼 생긴 것이 손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寺)’는 물건을 보유하고 또 그 상태를 지속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손에 계속 갖고 있는 것을 ‘지(持)’라고 하고, 시간적으로 지속하는 것을 ‘시(時)’라고 한다(281쪽). 놀랍게도 제임스 레그(James Legge, 1815~1897)의 영문 번역은 이런 미묘한 의미를 담고 있다.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


목간(木簡) 전문(篆文)

목간(木簡) 전문(篆文)

둘째, ‘습(習)’을 목간(木簡: 문자를 쓴 가느다란 대나무나 나무쪽)의 글자나 전문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습(習)’은 ‘우(羽)’와 ‘왈(曰)’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한자이다. 목간의 옛 자형을 보면 아래 부분이 ‘하얀 어린 새’를 뜻하는 ‘백(白)’이 아니라 ‘왈(曰)’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왈(曰)’은 축문(祝文: 신에게 드리는 기도문)이 축문 그릇(ꇴ) 속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위를 깃으로 문지르는 것을 ‘습(習)’이라고 한다. 축문 넣은 그릇을 깃으로 문지르는 이유는 그 기도의 효력을 자극하기 위함인데, 그 문지르는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이 바로 ‘습(習)’인 것이다(309쪽).


각 문자에 대한 설명을 종합해보면, ‘시습(時習)’이란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4. 결론

이렇게 ‘시습(時習)’에 대해 여러 해석을 소개한 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도 우리가 사는 시습재의 ‘시습(時習)’에는 이렇게 다양하고도 풍성한 의미가 담겨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의미는 우리가 학생으로서, 나아가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적절한지 바람직한 삶의 태도까지도 제시해준다. 곧 시습재에 산다는 것은 우리가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기숙사에 와서도 익숙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익히는 성실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이요, 그리고 선생과 학우에게 배운 고귀한 가치를 내가 속해있는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 살아가라는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마도 그러한 생활 방식 또는 삶의 태도가 이 기숙사 건물의 이름을 지은 사람이 학생들이게 바라는 염원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