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는 기록유산

전통회화에 배채기법(背彩技法)으로 사용된 백색안료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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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점복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보존처리 부전문위원

전통회화의 특징적인 기법 중 하나인 ‘배채기법(背彩技法)’은 명주실로 무늬없이 반투명하게 짠 바탕재인 화견(畵絹) 뒷면에 채색을 올려 앞면에 은은하게 비치는 색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주로 인물화에 많이 그려진다. 이 표현은 뒷면에 채색층을 올려 줌으로써 앞면에 두껍게 올라지는 부분을 방지하고 물감의 박락과 붓질 얼룩을 막아주는 큰 역할을 보여준다.


서양 미술에서는 두꺼운 실로 직조된 직포 캔버스와 오일 안료를 이용하면서 정교하게 그린 초상화를 그렸기에 쓰이지 않았으며, 동양에서 배채법은 수묵화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주로 청록산이나 화조·영모화·인물초상화 등 채색화에서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불화의 불·보살상과 조선시대 초상화 기법은 아직까지 밝은 피부색을 내기 위해 배채의 방식이 병행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불화·조선시대 초상화의 인물부분 채색이 지금까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선명함을 유지하게 하는 전통적인 회화기법이다.


특히 배채기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전면적으로 보존처리했을 시, 화면 뒷면에 배접지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고려불화를 살펴보면, 일본 반나지(鍐阿寺)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는 주(朱)와 같은 붉은색의 안료와 연백을 섞은 것으로 생각되며, 〈태조 어진 청포본〉의 용안 부분 배채를 보면, 눈이 구분되진 않고 전체가 백색으로 덮여 있다. 안료층이 꽤 두꺼운 편이며 앞에서 그린 것들이 비치지 않고 있다. 다음 도판은 전채(前彩)와 배채(背彩)를 비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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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보살도(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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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보살도(배채)

〈아미타팔대보살도〉부분, 14C, 견본채색, 153.0×84.3cm, 일본 鍐阿寺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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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어진 용안(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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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어진 용안(배채)

〈태조 어진 청포본〉부분, 조중묵 외, 1872, 견본채색, 220×151cm, 전주 경기전

배채기법은 인물의 피부색(肉身部), 착용한 복장으로 나눌 수 있으나 대부분 육신부에 백색안료가 채색되어 진다. 고려시대 불화에서부터 주로 얼굴 표현에 사용된 백색안료 중 천연안료로는 자연에서 얻어진 백색의 점토질로 토양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백토(白土, 高嶺土), 조개, 굴껍질 등의 패각(貝殼)을 태워 정제해 사용되는 합분(蛤紛)이 있으며 인공적으로 만든 안료인 연백(鉛白)은 은폐력이 우수하고 건조능력이 탁월하나 납의 화합물이기에 습도가 높으면 흑변하기 쉽고, 황산을 함유한 다른 안료와 혼합 시 검게 퇴색하는 단점이 있으나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인 안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통회화에서 쓰이진 않았지만 근·현대에 가장 대표적인 화학안료 티타늄 화이트(Titanium white)는 높은 밀도와 굴절률을 갖기 때문에 은폐력과 착색력이 뛰어나며, 비활성 물질로서 매우 안정적이다.

전통회화에서 주로 사용되어 왔던 백토, 합분, 연백과 근·현대에 이르러 많이 사용하고 있는 티타늄 화이트와 같이 4종의 백색안료를 선정하여 일반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자현미경(SEM)을 이용하여 시료의 표면을 관찰한 결과이다.

[표 1]채색안료 선정

안료명

주요성분

제조국

백토/Kaolin, China Clay

Al2O2SiO2H2O

한국

합분/Shell White

CaCo3

일본

연백/ Lead White

2PbCO3·Pb(OH)2

일본

타타늄 화이트/Titanium white

TiO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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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 안료 파우더, 3. 4. 화견 채색층



백색안료 4종의 입자형태를 각각 살펴보면, 합분과 백토 모두 탄산칼슘의 결정형 중 하나의 침상(針狀) 형태로 바늘처럼 가늘고 끝이 뾰족한 모양이고, 그 중 합분은 거친 입자들로 구성되어 불균일한 형태이다. 연백의 경우는 얇은 비늘 모양의 입자 형태로 크기의 입자들로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티타늄 화이트는 연백보다 더 균일한 입자 크기로 4종의 안료 중 가장 미세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교포수 된 화견에 백색안료를 채색 했을 시, 합분과 백토는 입자의 크기나 형태가 불균일해서 채색층의 표면 평활도가 연백 또는 티탄늄 보다 낮다. 그리고 채색층의 평활도가 낮을수록 투과하는 빛의 양이 증가하면 투명도가 증가하며, 이는 은페력과 상관성이 있다.

전통회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온 연백은 독성으로 인해 생산과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20세기에 대표적인 티타늄 화이트는 불투명하여 우수한 도포력을 지니고 있고, 빛의 반사력으로 발색력이 뛰어나며, 연백보다 부드럽고 미세하여 질감의 측면에서는 다양한 효과로 낼 수 있다. 그리고 안정된 성질이기에 황변, 흑변 등의 변색을 막을 수 있어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연백을 대신 할 수 있는 백색이라 평가된다.


참고 서적·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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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 『高麗時代의 佛畫』, 시공사, 1997, p.48~49, 도판.
정두희, 「조선후기 어진의 제작기법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P.122.
조선미, 『왕의 얼굴-한·중·일 군주 초상화를 말하다』, (주)사회평론, p.66, 도판.
장은지, 「회화에 사용된 백색안료에 관한 연구」,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2006, p.15.
김정흠 외 3명, 「근·현대 시대 오지호와 구본웅 유화작품에 사용된 백색계 안료의 특성 연구」, 보존과학회지 Vol.33, No5, 2017, 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