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자료 산책

횡보 염상섭의 초판본들

문은희 사진
문은희
한국학도서관 문헌정보팀 책임사서원

'근대자료 산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에 소장된 근대 자료를 소개하고 생생한 이야기로 전달해드리는 2020년 기획된 신규 코너입니다. '한중연사람들' 코너와 함께 격월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 도서관에는 횡보 염상섭(1897~1963)의 해방 전 초기 단편 소설들을 포함하여 『삼대』와 『삼팔선』 등 그의 대표적인 문학작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가운데 초기 소설 『해바라기』(1924.7.31), 『만세전』(1924.8.10), 『견우화』(1924.8.25)는 그가 1924년 7~8월에 걸쳐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출간한 작품들이다. 이들 자료는 모두 초판본으로 문학적·서지적 측면에서 근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청 보고서에 의하면 근대문학분야 자료의 가치평가는 초기 문학 작품 중 문학사적 가치가 크고, 작가의 지명도, 유일하거나 희귀한 문학 작품으로 보존상태가 양호 한 것을 기준으로 한다.

특히, 『만세전』과 『견우화』는 문화재청 근대문학분야에서 희소성과 가치를 평가받아 추후 문화재 등록의 귀추가 주목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도서관에 소장된 염상섭의 초판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학사적 가치


염상섭의 초기 작품들의 문학사적 내지 문화재적 가치는 어떻게 평가될까?

그의 작품에 대해 박종화는 “『제야』를 力이 솟는 듯한 혈이 띄는 듯한 변적 이단화의 울음소리 가튼 강하고 뜨거운 작풍” 1)이라고 평가하였고, 김동인은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새로운 햄릿의 출현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조선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학대와 냉시 아래 고통을 겪어온 탓에 생활이나 생에 대한 번민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으며, 그러한 측면에서 햄릿식의 고민, 다민다한(多閔多恨)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다민다한(多閔多恨)이 염상섭의 특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2)

염상섭은 무수한 중·단편소설들을 남긴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 작가이다. 그의 생애와 작품 연구는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총체적으로 파악하긴 어렵다. 다만, 염상섭의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식민지 조선의 열악한 상황과 현실을 고심했는지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첫 단편 소설인 『해바라기』는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을 소설화한 것이다. 동아일보(1923.7)에 연재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된 『해바라기』는 심리묘사의 실험 소설로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되지만,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하지만 인물 나혜석을 해석하고 연구하는데 단서를 제공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도서관에 소장된 박문서관판(1924)을 구하기 어려워 이를 저본으로 민음사에서 발행한 『염상섭전집1』에 수록된 『해바라기』를 기존 연구에 활용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3) 이는 원본자료의 보존 및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온라인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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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발간된 『만세전』은 『묘지』라는 제목으로 『신생활』에 연재되다가 3회분이 압수되어 연재가 중단된다. 이는 당시 검열이라는 긴박함을 보여주는데, 이후 『시대일보』에 총 59회가 연재되어 192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은 표지에도 드러난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행상의 모습이 그려진 『만세전』 표지 삽화는 조선 청년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을 사막과 외로운 낙타로 형상화 한 것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작품은 우리 도서관을 비롯하여 한국현대문학관과 서강대 도서관 이렇게 세 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무덤으로 묘사하여 한국 근대 소설사에 리얼리즘 시대를 연 수작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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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화』는 당대 여류화가 나혜석이 그린 표제화로 유명하다. 염상섭은 『견우화』는 나팔꽃을 의미하는데, 그는 자서에서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넓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나팔꽃에서 문학과 인생의 의미를 읽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은 1921년에서 1922년 사이 『개벽』에 연달아 기고된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 「제야」가 실려 있는 국한문 혼용 단편소설집이다. 그의 자서에서 『견우화』의 의미를 ‘고뇌하는 인생의 상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 『만세전』과 『삼대』 등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성장 과도기적 발판이 되는 소설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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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적 가치’는 작가와 독자, 시대상황 및 문화전통과 어우러져 ‘古典’으로서의 지속적이고 심층적이며 발전적인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저작물이라 한다.4)

이들 작품은 모두 초기 문단에서 일제시기 사회상이나 당대 사람들의 내면을 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적 가치


이 세 작품은 모두 초판본이라는 점과 당시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다.

근대문학분야의 자료들은 육필원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근대 출판제도에 의해 발간된 저작물들이라 희소성 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하지만 근대 인쇄 출판 초기에 발간된 자료들이나 식민지 시기 혹독한 검열 제도의 탄압을 받은 자료들은 대부분 혼란기를 거치며 소실되어 그 희소성을 더해준다.

이를테면 근대 문학 분야에서 초판본은 해방 후에 개작된 재판본과는 내용상 차이를 보인다. 도서관에는 『만세전』의 고려공사본(1924)과 해방 후에 재판된 수선사본(1948)을 소장하고 있는데, 염상섭이 추후 초판본을 수정하고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는 선행 연구는 초판본이 저본으로써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1910년 경술국치를 겪으며 일제는 신문지법, 출판법 공포로 애국 계몽적 서적들을 모두 압수하거나 발매금지시켰다. 검열과 압수로 인해 『만세전』의 판본이 4개나 된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 속에서 출판된 문학 자료들은 시대적 그늘에 가려 좀처럼 보기 힘든 문학 유물이 되거나 자료 상태가 좋지 못한 채 남아있다.


새로운 가치는 그 가치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근대문학 자료는 개항이후 100여 년간의 한국 근현대사의 삶을 비춰주는 역사의 기록이자 실체이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염상섭의 초판본들 역시 살아있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1)박종화, 「문단의 일년을 추억하야 현장과 작품을 개평하노라」, 『개벽』 제31호, 1923년 1월.
2)김동인, 『春園硏究』, 신구문화사, 1956, p.191
3)이정임, 『염상섭 소설의 판본 비교 연구』, 연세대학교, 1998. p.2 ; 그 밖에 Keris 조사결과 타대학도서관 조사에서도 박문서관판(1924)의 소장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4)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문학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보고서』, 문화재청, 2009.

heyaff@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