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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권이혁 이사장님,
내외 귀빈 여러분,
동료 교수 여러분,
직원 여러분,
그리고 대학원생 여러분.
오늘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창립된지 21주년이 되는 날 입니다. 제가 원장의 직무를 수행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에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합니다. 대망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연구원이 개원 21주년을 맞이하고 보니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동안 저는 원장으로서 미력이나마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연구원의 설립 취지에서부터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일, 또 앞으로 해야 할 일 등 연구원의 정체성과 현주소 및 미래의 좌표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삼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우리 연구원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물질문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정신문화를 새롭게 창조하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얼과 혼을 이루는 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민족문화를 창달하고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며,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균형적 발전, 주체적 역사관의 확립, 민족정체성의 정립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와 더불어 대화하는 개방적이고 자신감있는 한국학을 건설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설립취지의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겪어 온 근현대사의 시련과 역경이 녹아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우리 민족에게 격동의 20세기는 참담한 정신문화의 수난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국권의 상실과 일제의 식민통치, 해방과 분단, 전쟁과 냉전, 급속한 근대화와 IMF위기 등 우리 민족에 불어닥쳤던 온갖 시련과 역경들은 우리의 정신문화의 뿌리를 뒤흔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이 성행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집단적 이기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것은 곧 우리 정신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도덕성의 파괴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의 전진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물이 있고,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고 믿습니다. 국민의 흩어진 마음을 모아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은 바로 정신문화의 재건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기에, 우리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고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교직원 여러분,
회고해보면, 지난 21년간 우리 연구원은 설립취지에 충실하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정신문화의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방향을 설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또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우리 연구원이 국내의 학문과 정신문화의 발전에 미친 공헌은 사뭇 컸다고 자부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발간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여 우리 민족의 문화적 역량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으로 명실공히 20세기 최고의 업적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지난 21년간 1,500여 건의 연구과제에 4,100여 명의 국내외 학자가 참여하여 1,000여 책에 가까운 연구보고서가 간행되었습니다.
1980년에 문을 연 한국학대학원은 학부가 없는 국내유일의 개방형 대학원대학으로서 지금까지 362명의 석사와 94명의 박사를 배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를 향하여 새롭게 변화해가야 할 중대한 시점에 직면했습니다. 수동적으로 앉아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선도하며 경쟁에 앞서가는 체질과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것은 연구원의 환경이 변했고 연구원을 바라보는 사회의 기대가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21세기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응전의 과제를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지식정보화 시대와 지구촌 시대에 즈음하여 우리 연구원은 한국학의 세계적 중심이자 인문사회과학의 요람으로, 연구중심 대학원의 한국적 모델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각고의 노력과 협력이 없이는 이루기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여러분께서는 6개월전 제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우리 연구원을 21세기형 집현전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던 것을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종시대의 집현전에서는 전국의 유능한 최고급 인재들이 모여 당시로서는 선진국의 모델이었던 중국의 고제(古制)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우리의 관습과 결합시키는 주체적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선진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되 우리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것을 발전시켰으며, 수많은 편찬사업으로 나라의 문화능력과 지식기반을 확충하였고, 그 결과 우리나라를 동아시아의 문화국가로 우뚝 서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이런 연구기관이 필요하고, 우리의 의지
가 강하다면 우리 연구원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
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나 사회의
큰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자
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훌륭
한 연구과제를 개발하여 학제간 연구와 토론으로 사회가 기대
하는 양질의 연구업적을 내놓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말하
자면 감동을 주는 지식인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많이 나와야
합니다.
존경하는 동료교수 여러분,
직원 여러분,
그리고 대학원생 여러분,
이제 우리는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은 구조조정, 직제개편 등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발전의 성과를 내기 위해 원내외의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 보직 교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본원의 3개년 발전계획안에 우리의 구상은 녹아 있습니다. 현재 저를 포함하여 보직 교수 여러분들은 한몸이 되어 본원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게스트하우스와 기숙사 등 <한국학 생활관> 신설과 연구여건의 향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정신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선도하기 위해 경쟁력이 있는 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하여 능력이 탁월한 신진 교수를 영입하고자 합니다. 또한 한국학 전공의 유능한 포스탁 연구원을 뽑아 연구에 합류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협력이 요구되는 국내외의 유명 대학이나 연구소 등과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공동연구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런 자기개혁과 창조의 노력을 통해 우리 연구원이 한국정신문화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세계와 대화하는 학문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뜻있는 많은 지식인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한가지 보기를 들자면, 한국학 분야, BK 21 사업에 참여하기 위하여 현재 많은 교수님들이 불철주야 지혜를 짜고 있습니다. 이런 작금의 협력 분위기는 새로운 것으로서 매우 고무적이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도록 교직원 여러분의 각별한 관심과 협력을 당부하고자 합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또한 "신뢰사회와 21세기 한국"이라는 주제로 개원 21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사회도처에 불신과 대결이 갈수록 심해지는 각박한 현실을 보면서, 우리에게 오늘날 신뢰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아마도 없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남북문제를 포함하여 정부와 시민, 경영자와 노동자, 남자와 여자, 지역과 지역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긴요한 선결조건은 바로 신뢰회복입니다.
이런 과제를 우리 연구원이 이번에 체계적으로 다루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주제발표나 토론, 또는 사회의 역할로 심포지엄에 참여하실 본원의 교수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아울러 오늘의 학술대회에 참여하시는 여러 대학의 석학들, 그리고 시민단체 지도자 여러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학술행사는 김종필 국무총리께서 바쁘신 국사중에 시간을 내시어 귀중한 말씀을 해주심에 따라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 연구원의 교직원과 대학원생 모두가 기꺼이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의 협력과 발전을 다짐하면서 개원 21주년 기념사에 대하고자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1999년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한 상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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