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마저고리'와 '조선'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대한민국
- 고유명사와 문화적 정체성에 관하여 -
홋카이도에서 국제교류원으로 근무한지도 어언 3년차에 접어들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어 강좌는 물론, 우호지역을 소개하는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들을 실시하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설에는 명절 음식들을 손수 만들며 조리과정을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보기도 했다. 텍스트로는 접할 수 없는 한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양국의 간극을 좁혀가는 일이 즐겁고도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세계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국가간의 장벽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여전히 뜨거울뿐더러, 여행을 가지 못해 억눌린 소비심리의 반작용으로 '한국'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삿포로 시내에도 지난 몇 개월 사이에 한식당과 한국제품들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부쩍 늘어났고, 지역방송에 서도 이를 소개할 정도로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센세이션' 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조명아래 빛나는 아이돌, 군침을 돌게 하는 간식거리들을 비롯해 한국은 특히 일본의 젊은층에게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선사하는 중이며, 적어도 그들 에게 '한국'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흥미로운 나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인인 동시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세태를 지켜보자면, 일본에서 대한민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선'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다. 한가롭게 채널을 돌려가며 뉴스나 일기예보만 보더라도 '조선반도'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기 때문이다.
한번은 문화이해 강좌를 진행하며 '한반도'와 '한국전쟁'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한 수강생으로부터 수업 내용이 신선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한반도'며 '한국전쟁'이며 일본 내에서는 '조선반도'와 '조선전쟁'으로 통용이 되고, 본인들 또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한국인 선생님은 자신들의 상식과는 다른 명칭들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이름은 조선이 아닌데, 왜 일본에서는 아직도 조선이라고 하는 걸까요.
비유하자면 '일본'열도가 '에도'열도라고 불리는 느낌일걸요."
위와 같은 답변을 보냈더니, 일본에서 사용되는 '조선'이라는 명칭에 한국인들이 괴리감을 느낄 법하다는 것을 이해하신 모양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조선인 삼', '조선오미자', '조선사마귀' 등과 같이 동식물 종명에 '조선'이 접두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며 내게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궁금해진 김에 검색해보니, '조선' 이 붙는 것은, 조선반도가 과거 일본의 영토였음을 나타내는 잔재라고 한다)
'조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조선이라…' 세월이 멈춘듯한 그 이름에는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단어에 유독 신경이 쓰이는 것이리라. 이뿐만 아니라, 필자는 한복과 관련해서도 종종 시대착오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학교 파견강좌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의 사전회의를 할 때면, 일본인 담당자들로부터 '치마쵸고리'를 입고 행사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어김없이 들어온 다.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중국인 혹은 미국인 교류원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옵션이지만, 단지 대장금 같은 드라마에서 봤던 한복이 그들에게 친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은 행사 자리에서 '치마쵸고리'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는게 담당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한국인이라면 으레 '치마저고리' 하나씩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며, 한국인들은 사극에서 본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것을 사시사철 입을 거라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종종 만나다 보니,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럴 만도 하지… 그게 바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조선'에 걸맞은 복장이니까!'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은 차치하더라도, '치마쵸고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동요된다. '아니, 요청을 할거면 명칭이라도 제대로 알고 계셔야 하는게 아닌가?'싶어서다. 그럴 때면, 한국의 전통의상은 '한국의 복식'이라는 뜻에서 '한복'이 정확한 이름임을 굳이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티끌 같은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복이 ' 치마쵸고리'로 통용되고 있다. 방송이든, 인터넷 뉴스든 매체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무언 가가 오래 전부터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알려졌던 것'이라 추측할 수 있겠다.
복식(의)과 터전(주)을 언급한 김에 먹거리(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이곳 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음식 이름들은 이따금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 이다. '부침개'와 '전'은 별다른 구분 없이 '치지미'라고 불리며, 한국의 식품 기업들 또한 '치지미'라는 상표로 냉동 부침개를 수출하여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이름들은 사라진 채, 반쪽짜리 한국문화에 열광 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종주국에서는 정작 들어보기 힘든 명칭들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다 한들 과연 의미가 있긴 한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한편,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쵸레기(겉절이)', '챤쟈(창란젓)', '카쿠테키(깍두기)', '킨파(김밥)'에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이 정도로 변형이 된 이름이라면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메뉴 맞추기 퀴즈처럼 느껴질 법하겠지만, 명칭의 왜곡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은 오히려 외국에서 현지화가 잘 진행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상기에 언급한 음식들은 일본에서 구입하기도 쉽고, 인지도도 높은 경향이 있다. '치지미'는 물론이며, 한식당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쵸레기(겉절이)'가 특히 그러하다. (※ '쵸레기'는 경상도 방언인 '재래기'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 겉절이를 즐겨먹는다고?' 꽤나 뿌듯할 수도 있는 사실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일본의 '쵸레기'는 한국인들이 떠올릴 법한 음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듣기에 이름조차 생소한 그 메뉴를, 일본인들이 한국음식이라 굳게 믿으며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오늘날 한국문화는 랜선을 타고 전세계로 스며드는 중이다. 하지만 수많은 호기심들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아이돌, 혹은 그러한 콘텐츠 속에서 접한 한국음식 같은 범주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에 대한 흥미가 한국어 학습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을 바로 알리기 위해선 정확한 내용이 담긴 콘텐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유명사에는 문화적 정체성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가 '파오차이' 혹은 '배추 절임'이라고 불려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요새는 더구나 한복 왜곡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지금까지는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힘써왔다면, 앞으로는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일에 한층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즉, '한복은 한국의 전통의상'이 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면, 세계 어디서든 반드시 우리가 사용하는 '고유의 명칭'도 함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은 외국인들이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보들부터 개선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예를 들면,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여행 사이트 에서 주로 보이는 '치마저고리(한복) 체험'이라는 문구를 '한복(전통의상) 체험'과 같은 방향으로 수정하도록 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교과서의 개선도 필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외국인들에게 배포하는 한국관광 가이드북, 한국문화 소개 책자 등 자칫 간과할 수도 있는 분야부터 꼼꼼하게 바꿔나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이렇게 부르던데, 왜 일본에서는 명칭이 다른 거지?'라는 의문을 일본인들이 스스로 품게 될 정도가 된다면,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우리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소한 호기심을 해결해가는 과정 속에서, 좋든 싫든 한국의 역사나 문화 등에 대한 지식을 넓혀가게 될 테니 말이다.
[우수상]
김소현
(Country of Activity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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