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 저자 정헌목·박세진·이경묵·양영균·염찬희·오창현
  • 발행일 2022-12-30
  • 판형 신국판
  • 쪽수 408쪽
  • ISBN 979-11-5866-691-0, 94300
  • 정가 22,000원
  • 분류 AKS총서  >  사회총서
    문화  >  인류•민속학 
  • 구입처 e-book 교보문고 예스24  

도서 소개

□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호혜와 협동에 주목
2000년대 후반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동안 시장의 전능을 주창하던 신자유주의와 주류 경제학의 한계와 맹점이 드러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과 인류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면서, 경제행위를 개인의 이기심과 합리적인 선택에 주목하는 경제학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과 사회 속에서 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관점이 필요해졌다. 이 책은 과거 전통사회의 조직 원리로 간주해온 문화적 요소이자,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배경으로 작동하는 ‘호혜성’과 ‘협동’에 주목한다. 관련 개념과 이론의 학사적(學史的) 계보를 추적하고 다양한 시대와 사례 속 호혜성과 협동,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살핀다. 또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기반을 둔 호혜, 협동, 신뢰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 책은 사회 불신, 사회적 갈등, 양극화 등으로 각자도생에 경도되어 있는 오늘날, 사회문제를 해소하고 공동체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호혜와 협동의 개념부터 실제 사례까지 총망라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제1부 ‘이론 및 개념 편’에서는 ‘호혜성’ 개념을 둘러싼 모스, 말리노프스키, 레비스트로스, 폴라니 등 여러 학자의 논의를 살핀다. 이러한 개념이 국내에 들어와 ‘호혜’로 번역하면서 불거진 오해를 지적하고 앞으로 호혜성 관련 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신뢰’로 대표되는 사회적 자본 개념이 무엇이고, 실제 연구 가운데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문제점은 무엇인지 검토한다. ‘한국 사회적경제’의 특성을 살피고, 마을공동체 연구방법론으로서 김택규의 기층문화영역론을 분석한다. 제2부 ‘사례분석 편’은 논의 대상을 확장하여 실제 사례에 관한 이론적 비교 분석을 심화하고 전통 한국사회와 현대 한국사회에서 발현되는 호혜성과 공동체성의 양상을 고찰한다. 조선 중기 일기 자료를 통해 선물 연구를 진행하고, 21세기 한국사회를 통해 공유재의 명멸과 공동체 출현 사이의 관계를 조망한다. 공동체와 면역체에 관한 논의를 검토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난민과 이주민 문제, 주거공동체 등의 사례를 분석한다. 협동조합의 특성을 살피고 각 문화에서 선택한 영국 로치데일소비자협동조합, 스페인 몬드라곤노동자협동조합, 한국 홍동풀무협동조합을 알아본다. 

 

위클리오늘 "한국학중앙연구원,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발간"

전북일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신간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경기북부탑뉴스 "한국학중앙연구원,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발간"

교수신문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공유재 둘러싼 갈등…‘경제인류학’에서 실마리를 찾다

 

 

The financial crisis the world experienced in the late 2000s revealed the limitations and blind spots of neoliberalism and of the mainstream economics theory which the market claimed to be omnipotent. With a rising demand for solutions, the world needed liberal arts to understand the complexity of human beings and their society, beyond the study of economics which focuses on the self-interest and rational choices of individuals in their financial activities. This book focuses on the reciprocity and cooperation which were considered the guiding principles of the social economy and culture of traditional society, and it traces the history of studies on related concepts and theories. The book introduces examples of reciprocity and cooperation from different time periods, and examines communities founded on those ideas. By examining the ideas of reciprocity, cooperation, and trust in Korean history and culture, the book suggests a sustainable model of society based on those ideas.
The first part of the book, which deals with concept and theory, introduces different concepts of reciprocity from scholars such as Marcel Mauss, Bronisław Malinowski, Claude Lévi-Strauss, and Polányi Károly. The book points out how their concepts of reciprocity were translated into Korean and how those translations caused misunderstanding, and the book explores how this concept of reciprocity should be expounded and made applicable in the future. The book also examines the concept of “trust” in social capitalism and its problems, and how it has been utilized in actual research. The book goes over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social economy, including Kim Taekgyu’s substratum cultural area theory, to understand village communities. 
The second part of the book introduces example cases, compares theories of reciprocity and cooperation to actual cases, and examines the nature of reciprocity and community in traditional Korean society compared to modern Korean society. By studying people’s journals from the mid Joseon dynasty, the book looks into the study of gifts and inspects the connection between the disappearance of shared property and the appearance of community. The book surveys the issues of migrants and refugees, communal living,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ommunity and immunity in relation to Covid-19 and the pandemic. The book also introduces a variety of community forms from different countries: the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 in England, the Mondragon Corporation in Spain, and the Pulmu Cooperative in Hongdong, Korea. 

저자 소개

정헌목. 인류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부 교수.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마르크 오제, 비장소』, 『나이 없는 시간』(역저) 등
박세진. 사회인류학 전공, 전북대학교 쌀·삶·문명연구원 전임연구원. 「어버이수령의 이름과 북조선 사회의 원자(原子)」, 「증여와 사회/공동체」, 「선물과 이름」 등
이경묵. 문화인류학 전공,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개발프로젝트의 ‘실험실-마을’과 부분적 해결책의 실험」, 「선물, 뇌물, 기식의 절합: 「청탁금지법」과 선물의 역-발명」, 「주민참여와 역량강화의 역설을 망각하기」 등
양영균. 인류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부 교수. 『두 가지 스타일의 한국 결혼식: 전통과 현대의 이중주』(공저), 『한국의 도시 지역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공저), Re-Orienting Cuisine(공저) 등
염찬희. 언론정보학 전공,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 연구교수. 「한국 생협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 홈페이지 담론 분석을 통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표류 이유」, 『한국 협동조합운동 100년사』(공저) 등
오창현. 문화인류학(민속학) 전공, 목포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왕손 사대부 집안의 충남 당진 어살터 지배와 분쟁 배경에 대한 연구」, 「한국 멸치 소비 문화에 관한 일상의 민속학」, 『장돌뱅이의 조직과 기록: 저산팔읍 상무좌사 편』(공역) 등

목차

제1부 이론 및 개념 편

1장 학사적 맥락에서 본 호혜성 개념의 계보: 서구 이론의 검토를 중심으로_정헌목 
1. 들어가며
2. 호혜성 개념의 초기 계보
3. 모스의 『증여론』과 호혜성 원리
4. 호혜성의 유형론과 규범으로서의 호혜성
5. 호혜성 개념의 현대적 함의: 그레이버와 에나프를 중심으로
6. 나가며: ‘호혜성’과 한국사회


2장 호혜성과 사물이전의 유형학: 실패의 역사_박세진 
1. 들어가며
2. 호혜성과 함께 교환을 보편화하기
3. 호혜성의 개념
4. 호혜성과 함께 돌고 돌기
5. 테스타의 유형학


3장 공유재, 호혜와 협동의 한계/문턱_이경묵
1. 호혜성과 공유재를 떼어놓기(uncoupling)
2. 공동체 그리고 공유재
3. 위드록의 ‘나눔의 인류학’
4. 한계와 문턱으로서의 공유재: 기숙사 신축에 대한 반대운동과 에나웨네-나웨족 사례
5. 나가며


4장 현대 한국사회에서 호혜성과 공동체성의 발현: 사회적 자본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_양영균 
1. 들어가며
2. 사회적 자본 개념 검토
3. 사회적 자본 개념을 적용한 국내 연구 검토
4. 나가며


5장 ‘한국 사회적경제’의 탄생: 서구 사회적 경제 이론의 이식 과정_염찬희 
1. 들어가며: ‘사회적 경제’의 수입
2. 연대경제, 공공경제 아닌 사회적경제
3. 담론구성체 ‘한국 사회적경제’: 흔들리던 사회적 경제, 사회적경제로 닻 내리다


6장 기층문화론 연구방법론에 관한 한일 비교 연구: 김택규의 기층문화영역론을 중심으로_오창현 
1. 들어가며
2. ‘공동체 이론’으로서 문화하강론 혹은 침강문화재이론
3. 전후 일본 민속학계의 기층문화론
4. 김택규의 기층문화영역론: 기층문화의 토대로서 ‘생산공동체’
5. 나가며

 

제2부 사례분석 편
7장 조선시대 선물 관행에 관한 경제인류학적 시론: 의례적 선물과 사회의 재생산_오창현 
1. 들어가며
2. 선물을 둘러싼 이론적 쟁점: 의례적 선물과 사적인 선물
3. 조선 중기 선물 연구를 위한 이론적 기초 작업
4. 나가며


8장 조선 중기 양반사족층의 선물수수_양영균
1. 들어가며
2. 조선시대 일기 연구
3. 일기에 나타난 선물수수
4. 증여인가, 교환인가
5. 나가며


9장 공동체 만들기와 공유재의 명멸: ‘공유재이자 공동체’들의 중첩_이경묵 
1. 들어가며
2. 공유재의 변모와 공동체의 출현
3. 사회적경제라는 무대 위의 유령: ‘공유재이자 공동체’들의 중첩
4. 나가며


10장 코로나19와 공동체의 자가면역_박세진
1. 들어가며: 코로나19와 선물
2. 코로나19-앞의-자기
3. 주지 않을 수 없는 선물과 공동체
4. 공동체의 자가면역과 증여의 명령
5. 나가며


11장 공동체를 보는 다른 관점: 에스포지토의 공동체/면역체로 본 한국사회_ 정헌목 
1. 들어가며
2. 공동체와 면역체: 촌락공동체에서 현대사회까지
3. 국민국가 공동체의 이질적 타자: 이주민과 난민
4. 주거 공동체와 면역의 문제: 한 아파트 단지의 사례
5. 나가며: ‘긍정의 생명정치’를 향하여


12장 문화로 협동조합을 설명하기: 베네딕트의 ‘문화 패턴’ 개념을 통해서_염찬희 
1. 들어가며
2. 협동조합을 위한 문화, 협동조합의 문화
3. 로치데일과 로치데일소비자협동조합의 문화
4. 몬드라곤과 몬드라곤노동자협동조합의 문화
5. 그리고, 한국의 홍동풀무협동조합의 문화
6. 나가며

서평 및 출판사 리뷰

* 이 서평은 제2회 AKS 우수도서 서평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작성자 박경찬) *

 

나는 개인주의자다. 내겐 집단보다 개인이, 국가보다 시민이, 공동체보다 구성원이 더 중요하다. 오해는 마시라.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 쓸데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인간 역사에서 국가나 사회가 집단의 이름으로 개성과 창의성을 말살하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봤다. 지금껏 인간은 ‘우리 편’과 힘을 합쳐 역사의 격랑을 넘어왔다. 그러는 동안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주의로, 가족을 아끼는 태도가 가부장제로,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이 국가주의로 변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교류와 협력을 종용하는 목소리가 별로 달갑지 않다.  
요즘 우리 사회를 ‘고립의 시대’라고들 한다. 같은 이름의 책도 있다(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0). 사람들이 서로 곁을 내어주지 않아 사회적 연대가 끊어졌다는 논조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인과의 접촉을 늘리는 것만이 답인지는 의심스럽다. 우리가 남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장장 19만 년을 작은 규모의 가족 또는 씨족 단위로 살았다. 대화를 주고받고 마음을 나누는 지인은 많아야 150명 정도였다. 수천수만 명이 모여 도시를 만들고 나라를 세우며 산 지는 1만 2천 년밖에 안 됐다. 우리 뇌는 여전히 수렵채집 시대에 머물러 있다. 거리의 수많은 사람, 그들이 만드는 소음, 부산스러운 발걸음... 수렵채집인의 뇌에 너무 버겁다. 공동체를 더 많이 만들고, 사람을 더 자주 만나고, 사회와 더 왕성하게 교류하는 것을 모두가 반기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활개치면서 사람들이 각자도생하기 시작하자 한국 사회는 서로 거리를 좁히고 더 자주 만나며 많이 교류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호혜성’이다. 학계는 물론이고 정치인과 시민단체도 호혜성을 낭만의 언어로 소환했다. 상호부조와 공동체가 살아 숨 쉬던 원시 사회의 호혜성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며 그것이 살얼음판 같은 자본주의를 녹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장에서 정헌목이 에나프의 논의를 활용해 분석했듯 우리가 ‘호혜성’이라 여겨온 reciprocity 개념은 도덕의 논리가 아니다. reciprocity는 단순히 선물교환을 통해 재화를 나누고 우애를 다지는 행위를 넘어, 사회를 견인하고 서로 존재를 인정하는 역할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급부체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의례적 선물교환 체계를 따르던 원시사회와 다르다. 재화를 나누는 일은 시장이, 우애를 다지는 일은 사적 선물교환이, 존재를 인정하는 일은 법이 대신한다. 구조적으로, 원시사회와 같은 reciprocity가 더는 작동할 수 없다.“결국 기존의 reciprocity 개념에 관한 논의를 낳은 의례적 선물교환이 이미 사라진 지금, 한국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법과 시장 영역에서의 공공성과 독립이 보장된 개인들 간에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대를 향한 고민과 성찰이어야 한다.”(정헌목 외,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2, 47쪽)
못되게 말하면, 무턱대고 마을공동체나 만들겠다 나서는 것은 부작용만 낼 공산이 크다. 나같은 개인주의자에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은 법이야!”하는 반발을, 여성들에게“컵 하나도 안 씻으면서 공동체는 무슨!”하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이 책은 세상을 두껍게 읽고 있다. 단순히 호혜와 협동이 중요하다고 외치거나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역동이 빚어내는 뒤얽힘을 총체적 관점에서 중층 기술했다. 우선 1장, 2장, 8장을 통해 우리가 ‘호혜’ ‘선물’ ‘교류’ ‘연대’같은 개념을 오용하고 거기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는 점을 논증했다. ‘호혜성’이라고 으레 번역하는 reciprocity는 총체적 체계이지 윤리적 경제 체계가 아니다. 호혜성에만 집중하면 엄밀한 개념 설명을 하지 못하고 그저 뱅뱅 돌게 된다. 보상 의무를 동반하는지 여부만으로 교환과 선물을 무 자르듯 나누면 이면의 복잡한 역학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슬프게도 언어는 쉽게 비틀린다. 그 언어가 만드는 세상도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4장, 5장, 10장, 11장이 자세히 설명한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평가하고 시민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자주 쓰는 사회적 자본 개념은 모호한 여러 영역을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으며 설명 방식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퍼트넘이 사회적 자본의 주요 구성 요소로 꼽은 신뢰, 규범, 네트워크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 개념들이 실제로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한 실증적 설명도 부족하다. 사회적 경제라는 말도 이리저리 휘어버렸다. 자본주의 체제의 대항마로 등장한 사회적 경제는 한국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한국식 사회적경제가 되었다. 지자체와 정부가 주도하여 사람들을 시민으로 재구성(empowerment)하고 ‘사회’를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데 사회적경제는 일조했다(조문영, 이승철(2017). ‘사회’의 위기와 ‘사회적인 것’의 범람. 경제와사회 113(), 100-146).
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겨 쓰는 공동체 개념 역시 다종다양한 주름을 만든다. 박세진이 데리다의 논의를 거쳐 짚어내고 정헌목이 에스포지토의 개념을 활용해 설명한 것처럼, 공동체는 마냥 포용적이고 균질하지 않다. 공동체는 구성원이 사적 동기로 이탈하고자 할 때 자가면역 과정을 통해 구성원을 특정한 이름으로 불러내서 붙잡아 둔다. 또 외부의 위협이나 내부의 무질서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생명정치를 가동해 외부자를 찍어내기도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두껍고 복잡하다.   

 

책을 읽고 나는 물리학 법칙이 떠올랐다.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 말이다. 어떤 힘이 작용할 때 같은 크기의 힘이 반대 방향으로 반작용한다. 물리학에서 다루는 힘의 근본 속성이다. 이 법칙은 물리계뿐 아니라 인간사회를 분석할 때도 요긴하다. 어떤 개념, 그 개념에 기초한 운동, 그 운동이 만드는 법과 정책이 작용하면, 당연히 반작용이 따른다. 예를 들어 9장을 보자. 어떤 공유재의 가치를 강조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당연히 거기에 반대하는 공동체도 있다. 둘 사이의 갈등이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제주의 바람이 풍력발전 기술로서 자원이 될 때, 해안선을 뒤덮어 지자체의 사업이 될 때, 생태계에 영향을 끼쳐 환경주의자의 걱정을 유발할 때, 공동체가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움직인다. 공통적인 것의 유령은 작용-반작용의 고리를 무한히 구성한다. 셀 수 없이 많은 고리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그 속에서 개인의 목소리, 집단의 외침은 끊임없이 굴절한다. 따라서 세상에 개입할 때는 이 고리들의 얽힘을 두껍게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장에서 이경묵이 ‘나눔의 인류학’을 가지고 설명했던 것처럼 말이다. 위드록의 설명에서 나눔이란 “고립된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행위자가 그를 둘러싼 이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복합적인 과정”(정헌목 외, 앞의 책, 83쪽.)이다. 나눔 행위는 그 작동 자체가 사회적 규칙과 의무를 재구성하는 수행적 실천이다. 우리가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매달렸던 호혜와 협동은 우리 모두의 말과 행동, 생각과 감정, 욕구와 소망이 서로 부딪히고 결합하고 교차하면서 꾸준히 구성되는 것이다.  
나는 문화인류학도다. 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있다. 인류학을 공부하면 늘 긴장하게 된다. 내가 학교 과제를 위해 적어 내는 비평문 한 편, 현장연구를 위해 인포먼트와 나누는 대화 한 꼭지의 무게와 수행성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설레기도 한다. 내가 세상에 돌을 던지면 분명히 파문이 일어난다. 아무것도 안 변하는 것 같지만 세상은 시끄럽게 움직인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같은 거대 구조 아래 짓눌리고, 국가와 사회의 권력 앞에 무력해지지 않아도 된다. 구조와 조건, 사회와 국가는 분명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나와 별개인 대적자가 아니라 나와 교차하는 구성체다. 염찬희가 12장 끝에 적었듯 변곡점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문화 패턴이 나올 수 있다. 중국 사상가 루쉰의 말처럼 희망은 길과 같다.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류학의 매력을 다시 한 번 함뿍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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