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 저자 전경목
  • 발행일 2021-04-05
  • 판형 46판
  • 쪽수 424쪽
  • ISBN 979-11-5866-631-6
  • 정가 20,000원
  • 분류 AKS총서  >  고전탐독
    역사  >  한국사
  • 구입처 e-book 교보문고  

도서 소개

전라도 지방 부안김씨 우반종가에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5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주고받은 수백여 편의 편지가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지방양반의 생활상과 일상 감정을 전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들 편지인 간찰을 읽으며 가장 자주 마주했던 주요 감정으로 욕망, 슬픔, 억울, 짜증, 공포, 불안, 뻔뻔함 등 일곱 가지를 꼽는다. 일곱 가지 감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본 옛사람들의 내면은 의외로 솔직하고 비통하며 때로는 집요하기도 하다. 여과 없이 분출되는 감정들이 삶의 현실과 버무려지며 생생한 일상을 눈앞에 풀어 놓는다. 이 책에서는 축첩(畜妾)의 명분과 욕망의 변화, 가족을 잃은 슬픔 감추기와 드러내기, 청탁 처리로 점철된 수령의 일상과 은폐된 짜증, 출신에 따른 차등과 편견, 드러내서는 안 되는 약자의 억울함과 사회관계망 유지를 위한 감정 통제, 아무도 피할 수 없었던 기근과 돌림병, 일상에 깊게 드리워진 굶주림의 공포, 서울 정가의 민감한 소식과 불안에 뿌리를 둔 유언비어, 비밀의 흔적을 지워야만 하는 불안함, 유배당한 관리들의 고달픈 생활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뻔뻔함 그리고 그들을 돕는 후원자의 속마음 등을 세세하게 살펴본다.

 

새전북신문 "부안 김씨 우반 종가의 편지를 통해 생생한 일상을 눈앞에 풀어놓다"

프레시안 "[신간]부안김씨 옛 편지에 드러난 조선시대 판 '전원일기'"

전북일보 "[신간] 조선시대 양반의 솔직한 감정을 엿보다"

오마이뉴스 "열일곱 아들 때문에... 조선 양반이 보낸 '욕망의 편지'"

한국일보 "아들의 첩을 동생에게 보낸 까닭은..  조선 편지에 담긴 은밀한 감정들'"

저자 소개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고문헌 전공 교수. 조선시대 고문서 연구를 통해 일상사를 규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고문서를 통해서 본 우반동과 우반동김씨의 역사』,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숨은그림찾기: 유희춘의 얼녀 방매명문」, 「조선후기 소 도살의 실상」, 「조선후기 탄원서 작성과 수사법 활용」, 「양반가에서의 노비 역할」 등이 있다.

목차

1. 첩 중매를 통해 본 욕망의 변주
2. 가족을 잃은 슬픔 숨기기와 드러내기
3. 밀려드는 청탁과 은폐된 짜증
4. 드러내서는 안 되는 약자의 억울함
5. 일상에 드리운 굶주림의 공포
6. 흔적을 지워야만 하는 불안함
7. 곤경 속에서 드러나는 뻔뻔함
부록 1_세계도
부록 2_수록 간찰 원문

서평 및 출판사 리뷰

* 이 서평은 제1회 AKS 우수도서 서평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작성자 이유진) *

 

요즘 아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의 학교에서는 편지가 자주 오갔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대로 교체되는 시기여서 그런지, 세이클럽과 형형색색의 편지지가 공존하는 모습은 독특한 광경이었으리라. 얼마나 사람들이 편지에 열성이었냐면,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청소년 잡지, ‘와와109’, ‘MRK(미스터 케이)’는 아예 매달 다양한 모양의 패러디 편지지를 본편 뒤에 실어놓았을 정도였다. 한번은 같은 반의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거실 유리장에 부록 편지지로 만든 종이 공예가 좌르륵 늘어져 있는 모습에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에 다른 소통 방법이 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MSN, 세이클럽, 버디버디 등 간편한 메신저와 핸드폰, 길거리에 널린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연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편지의 매력은 그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선 과자나 식용유에서부터 스포츠 신문,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인쇄만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편지지로 재탄생했다.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스쳐 가던 물건들이 귀엽고 깜찍한 모습으로 내 손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편지지 자체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문구점에는 아예 패러디 편지지만 인쇄되어있는 편지지 묶음을 팔았다. 두 번째 매력은 바로 즉각적이지 않고 편지를 쓰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편지를 써 내려가며 일상에서 툭툭 내뱉었을 단어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읽었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그에 대한 답장을 다시 한 자 한 자 눌러써야 했다. 단답형이 쉽게 오가고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자와는 달리, 편지는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며 사색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핸드폰이나 메신저로는 전할 수 없는 순수한 감정이 편지를 쓸 때만큼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과학기술이 너무나 발달해버린 지금은 그때처럼 편지가 인기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기에 편지는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과거로 떠나서, 조선 시대에서 편지란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직접 보고 겪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쉬이 속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타인의 말을 믿고 가졌던 편견이 상대와 만나게 되는 순간에야 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물며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소속된 사람들끼리도 이러한데, 다른 시대의 사람이라면 부분적으로 남은 기록에 의지해 알아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해 멀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특히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 그 자체보다는 과학·기술이 생계를 유지하기 유리한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역사는 어려운 존재가 아니고, 사람에게는 활자 너머의 면모가 있다. 역사라고 하면 교과서 속 걸출한 인물들만 보아왔기에 이렇게 말해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일반인에 가까운’ 조선 시대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소개하고자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을 출간했다.

 

무엇이든지 첫인상이 중요하지만, 특히 역사라는 분야는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에 따라 그 이미지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 같다. 대부분 자격증이나 수험 과목으로써 한국사를 만나게 되는데, 맞추기 위해서는 암기해야 한다는 일이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암기를 위한 지식말고, 있었던 일을 일상 속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소개한다면 어떨까? 이 책에서는 그동안 어렵고 장황하게 설명되었던 역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교를 마련해준다. 보통 옛 선비들, 양반들이라고 한다면 학창시절 달달 외워야 했던 ‘연군지정’이 담긴 시나 유배지에서 한 이야기만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7부에 걸쳐 관찰할 수 있는 편지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목격하지 못한 조선 사람들의 내밀한 욕망을 볼 수 있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모르게 사회화되어 서로의 본심을 숨기고 예의를 갖추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치부를 까발리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 말처럼 편지로 드러나는 각기 다른 옛사람의 욕망에는 다양한 얼굴이 존재한다. 첩을 들이고 싶다는 중매 요청 편지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미디어에서 자극적으로 각색해 파는 원색적인 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편지에서조차 “반드시 이 여자를 얻고자 하는 것은 안주공의 절개와 의리를 사모하여 그의 후손 낳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라고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장손을 얻기 어려워 보이는 아들 내외를 보며 대를 이어야 한다는 번식에 대한 집착, 명문가의 서녀를 첩으로라도 얻음으로써 집안의 격을 높이겠다는 정치적 욕망이 그 기저에 꿈틀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러한 유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누구라도 거침없이 드러내기 꺼리는 것이었기에 청탁 당사자, 원두표는 편지로밖에 이를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드물게 찾아온 상승의 기회를 붙잡기 위하여 아들을 심부름꾼으로 사용하고, 매화와 죽간 모양이 그려진 고급 인찰지를 사용하기까지 하며 당대 위인의 외손을 낳아 출세를 노리고자 했다. 심지어 원두표 그 자신도 유명한 정치가였음에도 “고개를 조아려-”,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표현까지 거듭 사용하고 편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다시 편지를 보내는 등 간절하기까지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 시대에 성행하던 축첩 제도가 단순히 색욕을 채우는 용도에 그치지 않고 정치극에서처럼 ‘높은 분들’ 나름의 노력과 ‘물밑 작업’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시사한다.


1부에서는 유명 정치가의 편지에서 드러난 감정을 통해 전략적인 상승 욕구를 엿보았다. 이제 여기서부터 7부인 마지막까지는 부안 김씨 종가에 남아있는 편지를 보며 그나마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여러 감정을 관찰할 수 있다. 편지의 대부분이 김명열 본인과 손자 김수종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내용 역시 이들에게 날아드는 청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원두표의 사례와 달리 이들 자체가 편지로 얻은 것은 그리 많지 않으며, 심지어는 편지에서 가볍게 사용한 표현으로 인하여 상관의 심기를 거슬러 고생이 심해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아내와 의붓형을 먼저 보내고 곧이어 딸과 사위마저 잃을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남들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고생만 하고, 정작 본인은 장례를 치르기 위한 휴가를 얻기조차 쉽지 않은 모습은 안타까움을 절로 자아낸다. 사실 평산부사라는 직위는 서민과는 거리가 멀고 그 본인도 양반이니 충분히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집안이 중앙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권력자의 거만한 자제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관용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트집쟁이 상관에게 찍혀 전전긍긍하기 바쁜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보지 않았는가? 오늘날 많은 하급 공무원들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접수대에서 험하게 다뤄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편지를 읽지 못했다면 필시 우리는 그의 기록을 보고 양반이니 전형적인 신분 상을 떠올리며 그가 호의호식했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가 이러한 엉터리 추측을 본다면 억울해 나자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의 속사정을 단편적으로나마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를 누군가가 살아온 이야기가 아니라 학문으로만 보았다면 가족을 돌보고자 하는 간절함과 좋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간절함이 같은 부류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역사만큼은 철저히 공정한 관점을 유지하길 바란다. 같은 양반이라도 권력의 핵과 지방에서 조용히 세월을 보낸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지역과 신분, 성별이나 성격 등 그들이 가진 다양한 면모가 활자에 인쇄되며 지극히 평면적으로 변했다. 이를 주체적인 관점 없이 받아들인다면 학문에는 편리하겠지만 결국 이들의 사후에조차 억울하고 서러운 일, 이중적인 행보는 풀리지 않고 그들만의 비밀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사료가 남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후대에조차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그의 신분이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만 한 사람, 억울하게 옥살이한 사람, 은혜를 쉽게 저버리는 사람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바라보고 판단하고 싶다. 그 때문에 그들의 기질, 감정, 표현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이 사람도 지금 시대의 우리처럼 평범한 고민을 하고 일상에 치여 살았구나, 공감하며 시간을 넘어 동정을 보내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배은망덕한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며 외롭고 분했을 당시의 약자 곁에 서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역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관점이다. 그 매개체로 감정을 진솔히 담게 되는 편지가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관련된 말 중에 ‘온고지신’이라는 것이 있다. 풀어 설명하자면 옛것을 복습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인용하며 역사적 사례를 본보기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본보기 삼는 사람들은 언제나 적을 물리치고 태평성세를 이끌었던 쟁쟁한 위인들이다. 한때는 나 또한 그들만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 정승이 실제로는 청렴함과는 거리가 먼 정승이었고, 탕평책을 펼쳤던 영조가 자식들은 지극히 편애한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이란 결국 입체적인 존재라는 현실을 실감하고 만다. 그렇다면 큰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한 사람을 본받거나 오늘날의 우리처럼 부당한 사회에서 적응하고자 노력한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몰개성적 강압보다 내가 믿는 신념을 따라 살고자 노력한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한 줄의 생이 다른 이에게는 근간이 되고 앞으로의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라면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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