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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구분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AKSR2017-KS08
연구과제명
  • 국문 :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가 신명균 연구
  • 영문 : A study on Shin, Myeong-Gyun, A Cultural Activist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연구책임자 최시한(숙명여대 교수)
공동연구자
  • 최배은 / 숙명여대 부설 한국어문화연구소 / 책임연구원
  • 김선현 / 숙명여대 부설 한국어문화연구소 / 책임연구원
연구기간 2017-09-12 ~ 2018-09-11 연구형태 저서출판
연구목적 및 배경

   한국에서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의 중요성은,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전쟁과 분단 현실 탓에 역사가 묻히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책동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바로 이 묻혀 있는 소중한 인물과 사건을 발굴하고 정리하여 그 가치와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 연구는 항일 문화운동에 헌신하다 순절한 신명균의 생애와 업적을 조사하고 정리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를 치열하게 살아간 한 지식인 이야기(서사)를 생성함으로써 한국 정신문화를 풍부히 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그 구체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명균 본인의 저술은 물론 관련 논저, 잡지, 신문 등의 자료를 발굴하여 목록을 만들어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다.

   둘째, 자료를 바탕으로 당대의 주요 문화운동 즉 한글운동, 소년운동, 교육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의 맥락에서 신명균이 기여한 바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셋째, 이상의 연구를 토대로 신명균의 내면과 당대 현실의 인과관계를 추리하여 생애 스토리를 서술하고, 그의 사상과 활동이 독립운동과 한국 근대 정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바를 평가한다.

연구방법 및 내용

   이 연구는 인물 중심의 연구요, 그의 내면과 그가 씨름한 일제강점기 현실상황의 '인과적' 관계를 추리하고 상상하여 스토리텔링하는 작업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연관된 문화사적 · 정신사적 맥락을 드러내고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방법론적으로 '전기 서술 방법'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전() 서술과도 통한다.

   인물의 전기(傳記, Biography)는 특정한 인물의 생애에 대한 기록으로서, 객관적 기록물과 사료를 토대로 인물의 생애 전체 혹은 일부분을 살피는 것이다. 개인이 체험한 사건들을 사회 · 문화적 맥락과 엮어 읽으며 한 인간의 삶을 추적하는 작업은 그동안 감추어졌거나 정확히 알려지지 못했던 인물들을 발굴해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사건 중심으로 구성된 거시적 역사를 보완하는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먼저 신문 및 잡지 스크랩을 통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현장 조사 및 관련 인물 인터뷰, 자료의 검토 및 해석 등을 통해 신명균의 행적을 추리하고, 그것의 역사 · 문화적 의미를 추적하였다.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을 중시하는 전통적 ''이 추구한 바, 최종적이고 합리적인 '()'을 진술하려고 하였다.

 

   신명균은 한글학자이자 교육자, 소년운동가, 출판 및 저술가로서 주시경과 더불어 한글운동을 해온 것은 물론, 여러 출판물을 간행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애쓴 인물이다. 이 연구에서는 신명균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여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 보았다. 그 연구 내용(범위)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명균과 관련된 기초 자료 확립을 위해 그가 발행한 잡지 및 도서에서부터 집필한 저서, 신문 기고문, 수필 그리고 그의 활동을 말하고 평가한 자료 등을 선별하여 목록화하고, 자료 독해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이는 신명균의 삶을 재구성하고 파악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면서 동시에 그의 사상과 의식, 사회 · 문화적 여건을 확인하는 기초적인 작업이었다.

   그렇게 구축한 자료를 토대로 신명균의 삶을 추적하고, 그와 교유했던 인물들 혹은 그가 가담했던 단체 등을 조사하며 그의 활동에 대해 탐구하였다.

   신명균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현재 남한에 있는 유일한 혈족인 조카 신현경을 찾아 인터뷰하였다. 또 그의 한글운동을 조사하기 위해 한글 박물관을 방문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였다. 아울러 그의 교육운동을 조사하기 위해 그가 근무했던 보성고보 전신 고대 박물관에 방문하여 졸업앨범에서 그의 사진과 직책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동덕여고 총동문회 손인희 선생의 도움을 받아 동덕50년사에서 신명균의 근무 기록을 확인하였다. 그의 대종교 활동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 대종교 본원을 방문하여 총무 최윤수와 인터뷰하고 대종교 중광 60년사대종교보등 관련 자료를 조사하였다.

   그렇게 조사한 자료를 검토하고 해석하며 신명균의 생애를 재구성하였다. 개인의 삶은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조명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한글운동과 교육운동, 출판 및 저술운동, 종교운동 등 항일 문화운동의 관점에서 그를 조명하였다. 그리하여 신명균이 독립운동에 기여한 업적 및 민족정신사에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I. 서론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2. 선행 연구와의 차별성
   3. 연구 방법

II. 신명균의 생애
   1. 출생과 가족 사항
   2. 활동과 교유 관계
   3. 죽음에 관한 해석
   4. 후세의 평가

III. 신명균의 문화운동
   1. 한글
   2. 저술
   3. 출판
   4. 교육
   5. 종교―대종교

IV. 결론

 

§. 참고자료

§. 부록
   ■ 신명균 연보
   ■ 신명균 저술 목록
   ■ 신명균 사진 자료

연구결과

   먼저 출생과 가족사항을 살핀 결과, 그의 집안에는 사회주의자가 많아 한국전쟁 때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직계 가족들이 월북했고, 아들은 북에서 처형당했다. 막내 동생 신덕균은 월북했다 남파된 후 체포되어 오래 수형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일들과 연관된 어떤 국가적 조치가 냉전과 독재 체제 아래에서 그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조선어학회 사건 이전에 사망하여 33인에 들지 않은데다 국어학계의 무관심이 겹치어 1988년의 해금 이후에도 연구에 소홀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강직했기에 그의 자결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므로 그 행동에 대한 해석이 창씨개명에 대항 저항, 대종교 창시자를 본받은 종교적 행동 등으로 다소 단편적이고 분분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당시의 사회 현실, 신명균이 처한 상황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음독 이전에 자결 시도가 한 차례 더 있었음을 밝혀내면서, 그의 자결을 보다 거시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는 강직하고 일관되게 민족주의적 계몽과 투쟁을 실천했으나 일제의 파시즘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이 막히자 민족주의와 거리가 있는 사회주의 세력과도 손잡고자 하였지만,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피폐해진 심신을 가누지 못하고 최후의 항거 수단으로 자결을 택하였다.

   한글운동 및 저술 분야를 살핀 결과, 신명균은 '주시경 학파의 맏형'으로서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한글 연구와 보급 활동에 앞장선 선구자였다.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창립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완수하여 조선어사전 편찬의 초석을 놓았으며, 기관지 한글을 발행하고 가갸날(한글날)을 제정하여 한글 연구와 선양을 앞에서 이끌었다. 주시경 선생 유고, 한글 역대선등을 간행하여 한글 연구 자료의 출판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고, 한글 강습회를 조직하고 강사로 활약함으로써 맞춤법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근대적 어문생활의 방법을 교육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며 그는 적지 않은 글을 남겼는데, 거기서 그의 근대적 사상과 소통 능력이 드러난다. 신명균은 과학적 사고와 실질을 중시한 민중주의자였다. 그의 글은 개인적 동기에 의한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계몽 사업을 위한 현실적 목적 아래 씌어졌다. 자신이 관여한 잡지나 서적에 주로 글을 발표했던 그는 문예보다 한글 연구와 보급을 위한 논문,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사담, 근대 과학 지식을 설명하는 글 등을 많이 썼다. 대상 독자의 연령 및 계층을 가리지 않고 썼으나 어린이와 노동자 대상의 글이 많다. 이때 독자의 이해 수준과 현실 상황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신명균은 새로 제정된 맞춤법을 사용하여 지식 전달과 의사표현 방법을 민중 위주로 모색하고 실천하였다. 따라서 그의 글쓰기와 글은, 근대 한국어 형성 과정에서 국어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동이자 자료이다.

   교육, 출판 분야의 연구 결과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신명균은 신소년사와 중앙인서관을 운영하며 다수의 잡지, 총서, 전집 등을 발간한 탁월한 출판 기획자요 발행인이었다. 그는 1920년대 중반에 출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1930년대 후반에는 출판문화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쌓았다. 그는 신소년한글을 비롯한 수십 종의 잡지를 발행하며 당대 문화운동의 큰 줄기를 이루었던 한글운동, 소년운동, 교육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을 두루 주도하거나 적극 후원해 나갔다. 그리고 한국 최초로 조선문학전집을 편찬 · 발간함으로써 고전문학 자료를 정리하고 그것의 연구 및 전파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출판 활동에 매진하며 민족 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힘을 쏟았던 것이다. 아울러 그는 소년총서, 노동야학총서, 청년상식총서, 사회주의 서적 등을 발간하여 근대적 지식의 보급과 확산에 기여하였다. 그가 기획하고 출판한 여러 저작들은 각종 학교의 교재가 되고, 민족 문화 전파의 밑거름이 되었다.

   출판 활동과 더불어 신명균 활동 이력 가운데 주목할 것은 교육 활동이다. 그는 조선어강습원, 독도공립보통학교, 동덕여고보 등에서 13년 간 교직에 몸담았다. 보성전문학교에서 '서기'로 근무한 것까지 합치면 근 20년을 교직에서 일했다. 또한 조선교육협회와 조선어학회에 소속된 조선어 강습회 강사로 활동하며 한글 보급에 진력하였다. 학교에서는 주로 한국어(조선어)를 맡아 가르치며 학생들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주체적으로 자각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동덕여고보에서 동료 교사 이관술과 함께 했던 학생들의 맹휴투쟁과 독서회 지도는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학교 밖에서는 조선교육협회의 상임이사로서 언론집회압박탄핵회와 민립대학기성회의 운동을 이끌며 표현의 자유와 조선인 교육의 여건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다양한 학생과 학교를 위한 학습 교재들을 출판한 것은 이러한 교육 활동 과정에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종교 분야에서의 신명균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그는 191511월에 여러 한글운동 동지들과 함께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그것은 전해에 타계한 스승 주시경이 대종교인이었으므로 스승에 따름으로써 합심하여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점이 '조선어연구회'가 창립되기 6년 전이라는 사실은, 한글운동과 대종교의 관계가 매우 깊음을 말해준다.

   대종교 내에서 '지교'였던 신명균은 중앙청년회 활동을 하였으며, 1923년과 1924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에서 열린 총회에 대표의 하나로 참석하는가 하면, 국내 비밀요원으로 '북로군정서 연락'을 맡았다. 그는 대종교인으로서도 민족 문화의 보전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쳤고 실제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교주를 본받아, 그의 사진을 품에 안고 자결하였다. 그는 평생 대종교인의 삶에 투철했는데, 그가 조선어학회, 조선교육협회 등의 핵심 인물이었으므로, 그의 종교적 삶은 동지들과 그 방면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평가를 종합하면서 이 연구에서 내린 신명균에 대한 평가는, '한글의 연구와 보급, 나아가 그것을 통한 근대적 민족 문화의 확립과 전파에 앞장섰던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에 관한 평가는, 그동안 연구가 빈약했으므로 더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가 깊이 관여했던 여러 문화운동들의 외면적 측면에서 나아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성취의 내적 본질에 이르면, 학계의 관심이 아직 못 미친 지점이기에 개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신명균이 가장 힘을 쏟은 한글맞춤법의 제정과 보급 분야만 하더라도, 그가 짓고, 편찬하며, 출판한 많은 글과 책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그 공적을 밝히기 어렵다. 그는 분명히 이른바 국한문혼용체를 극복하여 '근대적 한글 문장 혹은 문체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이는 바, 이는 이제까지 국어학과 국문학 분야 전공자들이 서로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떠넘기며 깊이 연구하지 않아온 분야이다.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 자체가 연구 목표의 일부였던 형편이므로, 사실들을 심층적으로 종합하고 상상할 시간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이 연구 역시 그와 같은 문제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물리적 저항의 측면에서 나아가 문화적 저항과 창조의 측면에서 연구하고 또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신명균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만은 이 연구를 통해 분명해졌으리라고 본다.

참고문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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