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고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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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구분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1996-사회민속-1
연구과제명
  • 국문 : 가족 및 여성생활 관련 문헌자료 분석 III – 제례편
  • 영문 : -
연구책임자 문옥표
공동연구자
  • 정양완 / 전 본원 / 교수
  • 최재숙 / 전 성신여자대학교 / 교수
  • 이충구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연구원
연구기간 1996-01-01 ~ 1996-12-15 연구형태 공동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목적
   본 연구는 한국인의 가정 생활사를 계층별, 지역별로 복원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의 전통생활문화에 대한 연구는 주로 양반층의 남성을 중심으로, 그리고 일상생활의 측면보다 규범류를 중심으로 접근되어 왔다. 그러나 규범류에 나타난 내용과 실제생활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었으며 그러한 차이는 국가에 의한 문화전반의 유교화’(Confucianization) 노력에 대한 토착문화의 저항을 표현한다. 본 연구는 따라서 실제 기록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여 조선시대 가정생활문화의 구체적 내용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연구배경
   이 연구는 19941월 시작된 연속 연구의 3차년도에 해당한다. 1차년도인 1994년도에는 18C 저술인 이재(李縡, 1680-1746)四禮便覽, 19C정약용(丁若鏞, 1762-1836)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3집에 해당하는 가례작의(嘉禮酌儀) 19C저자미상의 저술로 당시의 儀禮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였다고 하는 광례람(廣禮覽)의 세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관례(冠禮)와 혼례(婚禮) 부분을 번역 · 주석하고, 80여년 정도의 時差를 보이는 세 시기의 기록에서 관혼례의 절차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분석했다.
   2차년도인 1995년도에는 17세기 신응순(辛應純, 1572-1639)성재집(省齋集)에 들어있는 아내 서산 류씨(瑞山 柳氏)의 상례(喪禮)기록과 18C의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의 아버지 윤염()의 상례기록(1717) 및 어머니 한양 조씨(漢陽 趙氏)의 상례기록(1798)읍혈록(泣血錄)1권과 2, 그리고 1차년도인 관 · 혼례의 분석에서 다루었던 광례람의 상례부분을 분석하였다. 특히 성재집 및 읍혈록의 두 문헌은 실제로 행해졌던 상례절차의 姶終記錄으로 관행과 禮書上에 기록된 규범에 나타나는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성재집, 읍혈록, 광례람이 각각 100~150년의 차이가 있는 기록인 까닭에 시대적 변화의 측면도 밝혀볼 수 있었다.
   이제 3차년도인 1996년에는 관례 · 혼례 · 상례에 이어 제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대개 관 · · · 제를 모두 기록하고 있는 문헌자료들이 관례 · 혼례 · 제례에 비해 상례의 부분이 가장 많은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까닭에 1995년도의 연구에서 상례에도 포함될 수 있고 제례에도 포함될 수 있는 내용에 해당하는 小祥 · 大祥 이전까지만을 포함하였다. 따라서 1996년도에는 이어서 소상부터 제례일반에 관한 내용까지를 포함코저 한다.
   분석하고자 하는 문헌은 우선 광례람과 성재집 이외에 하나의 실제 기록을 더 추가할 예정이다. (읍혈록의 기록은 大祥에서 끝이 남으로 1995년도 연구에 포함시켰음)
   추가될 문헌은 역시 상례때와 마찬가지로 문집 등에 나타난 실제 기록 중에서 선정할 것이며, 시기별로도 17C의 성재집 및 19C의 광례람의 내용과 비교될 수 있는 18C의 자료 중에서 고를 예정이다. 祭禮까지의 분석이 끝난 후에는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일단락지어 조선후기의 관혼상제(가칭)의 형태로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방법
   문헌자료를 선정하여 완벽한 번역과 주석을 마친 후 해제 및 내용 분석을 행하며 4명의 연구자가 공동작업으로 진행한다.

 

연구내용
   본 연구의 1차 및 2차년도 연구에서 분석된 자료들이 모두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자료인 바, 이 시기는 이미 유교적 가례규범이 어느 정도 일반의 생활에 뿌리내린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관혼상제의 가례전반에 걸친 절차 · 양식 · 사용되는 도구 및 물품, 복을 입는 범위(상례의 경우) 등의 구체적 내용이 동일한 양반 계층인 경우에도 경제적 여유나 벼슬의 높낮이 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기존의 규범서 중심의 분석에서는 제대로 밝혀질 수 없었던 내용이다. 따라서 이번의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 유교적 생활문화의 수용과정에 나타나는 계층에 따른 차이, 시대별 변화내용 나아가 규범서의 내용과 실제 관행에 나타나는 차이의 내용과 원인들이 부분적이나마 규명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세 문헌의 제례부분에 관한 기록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성재집의 경우 四時祭禰祭, 忌日祭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告事儀, 晨諹儀, 出入拜諹儀, 朔望參獻儀 등 사당에 대한 제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사례편람(1900년대에 발간된 增訂 懸吐註解 本)의 제례편은 祠堂, 四時祭, 禰祭, 忌日祭, 基劑5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말의 풍속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였다는 광례람에서는 忌祭基祭를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 문헌에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우리 민속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忌祭基祭로 조선시대 전반을 걸친 유학자들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가정제례는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실제 18세기에도 時祭는 널리 행해지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참고문헌

李 榟, 四禮便覽
丁若鏞, 與猶堂全書
작자미상, 廣禮覽
辛應純, 省齋集
작자미상, 泣血錄1,2,3
기타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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