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모노그래프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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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2001-18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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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김형효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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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1-01-01 ~ 2001-12-15 | 연구형태 | 단독저술 |
연구목적 및 배경 |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새 천년의 시작에 즈음하고 있다. 20세기와 더불어 인류는 근대와 현대를 400년간 지배해 오던 모더니즘적 사유의 해체를 말하면서 동시에 재래의 철학적 사유의 종언을 아울러 고하는 그런 문명의 변혁기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더니즘의 본질이 과학기술주의와 경제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궁극적 정답의 존재가능성을 믿는 그런 사유를 본질로 하고 있다. 그런 사유의 본질은 동시에 권력의지의 생리에 입각한 그런 정치문화를 잉태한 것과 같이 간다. 말하자면 모더니즘의 생리는 바로 의지를 그 생명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주의나 경제주의나 권력의지의 정치문화나 다 의지의 형이상학이고 일선적인 발전의 신화를 굳게 간직한 그런 문명의 체계다. 그런 발전의 의지를 망각한 문명은 마치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지듯이 정체되거나 후퇴되어 도태되고 탈락되고 마는 그런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모더니즘의 문명은 소유를 가장 큰 문제의식으로 삼아 온 그런 지배체제다. 한국도 이런 문명의 지배방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래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갈림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지난 400여 년간의 모더니즘의 시대에 선진국이 되기 위한 경쟁의 시대였고, 그 경쟁에서 이긴 나라가 세계의 지배를 정당화한 그런 권력의지의 시대였다. 그 경쟁에서 진 나라들은 선진국에 비하여 후진국이라는 슬픈 열등의식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그 의지의 지배경쟁과 그 경쟁을 찬양하던 의지의 형이상학이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사상이 새로운 미래적 사유의 본질로서 도래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 사상사에서는 그것을 포스트 · 모더니즘이라고 부르지만, 이런 명칭 자체가 그렇게 행복하게 작명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명칭 자체가 자칫 어떤 일시적 유행을 연상시키는 그런 피상적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간 그 명칭이야 어떠하든 간에 새로운 변혁의 도래가 사상적으로 문명적으로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철학에서 저 모더니즘의 과학기술주의, 경제주의, 기능제일주의, 소유주의, 정치적 권력의지주의의 본질을 가장 심오하게 존재론적으로 해명한 이가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다. 그의 철학적 사유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앞질렀고, 또 심오하기에 많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하여 오해되어 왔고 제대로 읽혀지지 못한 그런 아쉬움을 남겼다. 대체로 이점은 동서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들은 하이데거를 현상학적 실존사상가나 또는 해석학적 현상학자로 늘 보려고 하는 한계를 거의 탈출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프랑스의 싸르트르(Sartre)는 하이데거를 너무나 오해했고, 또 해체주의의 철학자로 불리워지는 데리다(Derrida)의 사유도 그가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또 때때로 하이데거를 현존의 형이상학자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하이데거의 사유에 가장 깊숙이 영향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에 와서 서구에서도 하이데거를 우리의 해석과 유사하게 읽으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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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 연구방법
○ 연구내용
서론- 과학기술시대에 왜 하이데거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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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서론 과학기술시대에 왜 하이데거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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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저술의 목차가 잘 지시하고 있듯이 당호의 연구계획을 충실히 반영하였다고 사료됨. 그리고 Heidegger에 대한 연구자의 자득을 기술하려고 노력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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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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