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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구분 한국학 기초연구/모노그래프과제
과제코드 2003-28
연구과제명
  • 국문 : 철학의 미래 : 전통과 반전통의 사이
  • 영문 : -
연구책임자 정해창
공동연구자
  • - / - / -
연구기간 2003-03-26 ~ 2003-11-30 연구형태 문헌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전통은 그것이 '잘못된' 신념들 위에서 이룩된 것이든 아니든 한 번 수립되면 좀체로 깨어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에 익숙해져서 그 전통이 주는 다양한 요소들을 습관화, 의식화한다. 한마디로 전통에 안주해 있으면 위험에 직면할 필요도 없고 삶은 '편하다.' 그래서 이 전통에 도전하는 사람은 매우 강한 저항에 부딪친다. 전통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그 전통의 체제 안에서 모든 것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새로운 시도를 꺼린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가 우선 자신의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리리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의 타당성을 가리기보다는 그 전통이 주는 위안 뒤로 숨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전통의 완강함도 현대에 이르러 붕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티로 대변되는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적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해체주의, 철학의 종언 등으로 대변되는 철학에서의 변화는 전통과 반전통의 조화가 필요함을 요구하고 있다. 본연구의 목적은 이러한 추이를 분석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철학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다.

연구방법 및 내용

○ 연구방법

   문헌연구

 

○ 연구내용

   철학자들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사를 이루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의 정의에 관해서는 다양한 대답이 있어 왔지만, 그들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철학의 고유 영역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전제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철학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들이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철학적 문제들은 시지프스의 바윗돌과 같다는 칸트의 말은 철학의 종언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오늘날 단순한 경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인다. 돌을 굴려 정상에 올려 놓을 때마다 이제는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돌은 영락없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철학자들은 제각기 모두 시지프스이다. 모두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돌을 정상에 올려 놓고 스스로 철학적 구세주라고 선언하지만, 철학사에 나타난 그토록 많은 구세주들은 곧바로 권좌에서 돌과 함께 굴러 떨어지곤 했다. 그들은 새로운 개념들, 예컨대 신, 로고스, 정신, 이성, 언어라는 다양한 바윗돌들을 올려 놓으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한 가지의 바윗돌이 실패하면 철학자들은 또 다른 바윗돌을 밀어올려 본다. 다시 말하면, 철학자들은 기존의 개념이 설득력을 잃어갈 때 끝없는 대체놀이에 의해서 다른 개념, 표현, 은유를 제시한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일부 철학자들은 왜 우리가 바윗돌을 정상에 올려 놓아야만 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것이 무익한 일임을 공표하고 나섰다. 산 정상에 바윗돌을 올려 놓으면 확실한 앎을 얻게 되고, 따라서 진리가 보이고 유토피아가 전개되리라는 희망은 헛된 꿈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로티는 철학자들이 수정, 비판, 보완했던 전통적 방식의 철학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전통적 철학에 대한 부정은 로티뿐만 아니라 니체나 데리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로티는 다른 철학의 종언철학자들과 구별된다. 철학의 종언을 이야기한 다른 철학자들, 니체, 하이데거, 듀이, 비트겐시타인 등과 로티가 구별되는 점은 로티는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철학적 어휘를 사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는 논증을 구성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경우 그는 누구보다도 후기 비트겐시타인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전통적 철학의 주장들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학 때문에 잘못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철학 그 자체가 필요없다고 단언한다. 동시에 철학자가 해야 할 일은 그동안의 전통적 철학의 잘못된 진로를 밝혀내고 나면 없어진다는 그의 언명은 왜 그가 아직도 '철학적'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잇다. 이 글에서 필자는 로티의 반철학을 중심으로 그의 진리관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로티의 시도에 대한 철학계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회의적이다.

   물론 철학의 종언 문제가 유독 현대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서양철학사는 그 회의주의 전통을 통하여 이천 년 이상 이 문제와 씨름하여 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극단적 회의주의자들은 진리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서 철학을 부인하였다. 회의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피론(Pyrrhon)은 대답될 수 없는 골치아픈 문제는 접어두고 평정한 마음이 가져오는 평화와 조용함을 즐길 것을 권장하였다. 로마 시대의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는 철학의 합리적 체계를 비판하고 모든 앎은 감각경험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물자체의 개념과 과학의 토대 자체를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비물질적인 관념은 물질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상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 또한 인과적 관계란 객관적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마음에 순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이런 회의주의 전통은 근대에 이르러 영국 경험론에서 더욱 절정에 이른다.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모든 진정한 앎은 감각경험으로부터 도출되며 감각이 없으면 앎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고대 회의론자들의 맥을 잇고 있다. 이런 입장의 논리적 귀결을 제시하는 흄(Hume)은 세계에 관한 어떤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앎도 부정하였고, 감각경험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앎도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칸트(Kant)는 자신을 독단적 선잠에서 깨운 것은 흄의 회의주의였고 그로부터 보다 적절한 인식 이론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형이상학을 경험의 가능성을 위한 종합적, 선천적 조건 즉 세계에 관해서는 참이나 경험에 앞서고 반성에 의해서만 도출될 수 있는 조건을 기술하는 것에 제한하였다.

   생존 당시보다는 오늘날 그 영향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니체(Nietzsche)는 신의 죽음을 선포함으로써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의 궁극적 보증자의 존재를 부정해 버렸다. 신의 관념이 포기되면 인간의 행위를 가늠할 어떤 고정된 또는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진다. 이것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는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만큼 스스로가 강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는 상호간에 상충하고, 결과적으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갈등 상태가 유지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철학자들의 예비적 단계를 거친 뒤 20세기에 들어서 일단의 철학자들이 전통적 방식의 철학이 그 생명을 다하였다는 것을 선언하고 새로운 개념의 철학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철학의 종언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로티가 자신의 지적 선조로 간주하는 하이데거(Heidegger), 듀이(Dewey), 비트겐시타인(Wittgenstein)이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철학자들이다. 철학자들은 철학의 종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목소리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논의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기존의 문제, 관행, 방식들에 문제가 있으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줄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전통적 철학은 종지부를 찍었는가. 그렇다면 이천 년 이상 서양철학을 지배했던 플라톤 철학의 붕괴를 목격하는 20세기는 철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20세기 전반에 비트겐시타인이라는 '신비스러운' 철학자가 나타나서 철학의 모든 문제들은 자신이 해소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선언하여 그 여파가 한동안 지속되는 듯하더니 20세기 후반에 로티, 데리다와 같은 사람이 또 다시 철학의 종언을 주장하며 철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최근의 현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철학을 한다고 할 때 목표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철학의 추상성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은 서양철학의 전통을 면면히 지켜온 대륙철학자들만은 아니었다.

   실용주의자들은 대륙의 철학자들과는 독립적으로 추상으로부터 구체로 그리고 일상적인 문제 등으로 눈을 돌렸다. 대륙의 철학자들은 실용주의를 철학사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밖에 대하지 않았으나, 실용주의는 계속 수정되어 가면서 그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갔다. 금세기 후반을 넘어서면서 분석철학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을 때 영향력 있는 일단의 철학자들은 그 돌파구를 실용주의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철학의 종언은 20세기 초부터 대륙의 철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로티는 고전적 실용주의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지식의 가능성, 지식의 이론적 토대를 거부함으로써 인식론의 서거를 선언하는 것은 하이데거의 실존 중심의 사유 이전에 생긴 것이지만, 20세기 중반 실존주의가 그 힘을 잃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주제를 실용주의적 측면에 국한시키는 전환을 시도하였다.
2년의 연구 기간 중 일차년도에는 일단 서구의 실용주의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참고문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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