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중점연구/연구교육연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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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AKSR2019-RE01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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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이종철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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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19-01-01 ~ 2019-06-30 | 연구형태 | 연구교육연계과제 |
연구목적 및 배경 | 본 연구는 2018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 전공에서 1학기 과목으로 개설한 <불교고전문헌 강독>의 연구교육 연계 사업으로 기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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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연구책임자는 『금강삼매경』 전체의 한문본과 티벳어 번역, 몽골어 번역 그리고 돈황본의 대조본을 만들어 『금강삼매경』의 원모습과 변형과정을 추적하며 『금강삼매경』의 사상적 입장을 규명해내고자 하였다. <불교고전문헌 강독>의 수강생들은 연구책임자가 한 땀 한 땀 마련한 『금강삼매경』의 교정본의 단락에 따라 『금강삼매경』에 대한 원효의 주석 태도를 점검함으로써, 촘촘하게 살필 시간적 여유는 없으나 개략적으로나마 원효의 사상적 입장을 정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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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제목>금강삼매경의 재검토 -티벳어번역본, 돈황본을 참고한 문헌학적 검토- <1>금강삼매경과 원효주석 본문 검토 <2>금강삼매경론 과단 <3>다언어 판본 대교본 금강삼매경, 금강삼매경론 텍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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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금강삼매경』은 학계에 유포된 ‘신라 찬술설’보다는, 東晉五胡十六國 시대 중 北涼(397~439)이 패권을 잡고 있던 때, 중국 북방에서 찬술되어 <北涼錄>으로 채록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다. - 티벳어 번역은 그 불완전성으로 볼 때 가장 초기의 『금강삼매경』, 즉 북량에서 수집된 『금강삼매경』을 저본으로 해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티벳어 번역본을 대조해볼 때, 『송고승전』의 원효조에 나오는, 大安이 八品으로 편집했다는 기술(“排來成八品”)은 오류임이 분명하다. 단지 大安이란 인물이 『금강삼매경』의 문장을 재편집했을 가능성은 높다. 원효가 주석을 단 『금강삼매경』 텍스트는 大安이 자구를 정비하여 재편집한 『금강삼매경』이었음에 틀림없다. - 『금강삼매경』의 여러 판본 중 <돈황본>(Stein. 2794)까지 고려에 넣고 판본의 성립 년대를 추론해보면, 다음과 같은 판본 순서를 상정해 볼 수 있겠다. * 티벳어 번역의 저본->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저본->궁내청본->돈황본->송, 원, 명본 - 『금강삼매경』의 사상 경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 따른 이해를 전제로 함. (1) 유식사상 (2) 여래장사상 또는 진제의 구유식사상에 입각해서 현장의 신유식사상을 회석한다. 이 점은 원측의 정통 유식사상, 즉 현장의 신유식사상에 입각해서 진제의 구유식사상을 회석하는 태도와 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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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금강삼매경론』(한국불교전서 제1책) 『금강삼매경론』(대정신수대장경 제34권) 『금강삼매경』(대정신수대장경 제9권) 『금강삼매경』티벳어 번역(Derge, Vol.10, No.135) 돈황본 『금강삼매경』(Stein, No.2794) 고익진, 『한국고대불교사상사』, 동국대출판부, 1989. 김영태, 「신라에서 이룩된 금강삼매경」, 『불교학보』25,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 1988. 김영태, 「금강삼매경에 있어서 地藏의 위치」, 『불교학보』28,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 1991. 기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일지사, 2000. 김종명ㆍ조은수 옮김, 『중국과 한국의 선사상 형성-불경 위경으로서의 금강삼매경』(로버트 버스웰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
水野弘元, 「菩提達磨の二入四行論と金剛三昧経」, 『駒沢大学研究紀要』13, 1955. 西本照眞, 『三階敎の研究』, 春秋社, 1998. 石井公成, 「金剛三昧經の成立事情」, 『印度學佛敎學硏究』46-2, 1998. R.E.Buswell Jr, The Formation of Ch'an ideology in China and Korea-The Vajrasamadhi Sutra, A Buddhist Apocryphon, Princeton Univ. Press,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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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연구결과 요약(초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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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삼매경』은 “北涼失譯人名”이란 기술이나 “北涼失譯”(송판, 궁내청본)이란 기술에서 보듯이, 북량 시대 무명씨 번역으로 전승돼 오고 있다. 그렇지만 “出北涼錄, 失譯師名”(원판, 명판)이란 기술을 보면, 『금강삼매경』은 그 번역자가 여전히 무명씨로 처리돼 있다 하더라도 『금강삼매경』 자체는 <北涼錄> 즉 북량시대 채록한 경전류에 들어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서 『금강삼매경』의 출처는 불명이지만 북량 때 수집되었다는 점만은 공통적인 인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나에게는 학계에 유포된 ‘신라 찬술설’보다는, 이 편이 곧 東晉五胡十六國 시대 중 北涼(397~439)이 패권을 잡고 있던 때, 중국 북방에서 찬술되어 <北涼錄>으로 채록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다.
- 티벳어 번역은 그 불완전성으로 볼 때 가장 초기의 『금강삼매경』, 즉 북량에서 수집된 『금강삼매경』을 저본으로 해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티벳어 번역본은 현행본과 같이 八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행본에 비해서 많은 글자 결락이 있고 문장이 조악하다. 티벳어 번역본을 대조해볼 때, 『송고승전』의 원효조에 나오는, 大安이 八品으로 편집했다는 기술(“排來成八品”)은 오류임이 분명하다. 단지 大安이란 인물이 『금강삼매경』의 문장을 재편집했을 가능성은 높다. 大安이 과연 신라 사람이었는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고,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는 大安이란 인물이 <北涼錄>에 수집된 『금강삼매경』을 편집했을 가능성도 높지만, 大安이란 인물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일단 ‘大安’이란 이름으로 가탁된 최초의 편집자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 원효가 주석을 단 『금강삼매경』 텍스트는 大安이 자구를 정비하여 재편집한 『금강삼매경』이었음에 틀림없다.
- 『금강삼매경』의 여러 판본 중 <돈황본>(Stein. 2794)까지 고려에 넣고 판본의 성립 년대를 추론해보면, 다음과 같은 판본 순서를 상정해 볼 수 있겠다. *티벳어 번역의 저본->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저본->궁내청본->돈황본->송, 원, 명본
- 『금강삼매경』의 사상 경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 따른 이해를 전제로 함. (1) 유식사상 (2) 여래장사상 또는 진제의 구유식사상에 입각해서 현장의 신유식사상을 회석한다. 이 점은 원측의 정통 유식사상, 즉 현장의 신유식사상에 입각해서 진제의 구유식사상을 회석하는 태도와 대비된다. (3) 유식사상의 입장에서 반야공 사상을 會釋한다.
- 원효 사상에 대한 비판 (1) 9식설 제8식=aalaya識=本識=情識=雜染 제9식=amala識=本覺=淸淨 (2) ‘顯現’ 강조≠生起: 진제는 正量部적인 시각에서 유식사상을 해석하여, 유식사상의 일부분인 法身사상을 여래장사상으로 심화시켰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顯現’의 개념이다. 상키야학파의 전변설에서 말하는 ‘轉變’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상 두 가지 『금강삼매경론』에 보이는 비판 사항을 놓고, 원효의 다른 저작과 비교해보면서 원효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음미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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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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