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목적 및 배경 |
21세기 한국사회의 화두는 노인, 여성, 그리고 어린이이다. 이 세 범주는 20세기까지 모두 사회적으로 약자의 범주에 속하고 있지만 21세기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과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세 범주는 21세기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노인'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오늘날 빠르게 변동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21세기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현대 한국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의 좌표를 탐색하는 키워드로 '노인'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가오는 21세기 사회를 표현하는 용어로 이미 여러 키워드가 제시되고 있다. '정보화사회', '후기산업사회', '포스트모던사회'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이다. 그와 함께 '노령화사회'라는 용어 또한 21세기 사회가 직면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서구사회는 1950년대에 높은 출산과 사망에서 낮은 출산과 사망으로의 인구학적 변천을 완료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인구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출산력이 계속 낮아져 이제 서구사회는 인구대체수준 이하로 출산력이 떨어져 있다. 사망력의 감소로 인한 평균수명의 증가도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1970년대에 내린 바 있었는데, 전문가의 예상과는 달리 고령층에서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평균수명이 끝없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천은 서구사회에서만 경험한 것이 아니고 한국도 비슷한 모습의 인구학적 변천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부부들은 평균적으로 2명 이하의 자녀를 낳는 데 반해, 노인들의 평균수명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오래 살고 싶은 오랜 인류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70세가 넘은 노인이 90세가 넘은 고령의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노인'은 인류의 오랜 역사에 비춰 20세기라는 찰나에 이룩한 혁명적인 인구학적 변화를 대표하고 있다.
둘째, 20세기 후반 한국사회에는 뒤르껨식의 가치관의 혼란에 따른 아노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된 전통가치, 서구의 합리적, 개인주의적 가치, 천민자본주의의 유입과 더불어 들어온 국적없는 가치 등이 혼재하고 있다. 소위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측면의 하나가 가치관의 혼란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가치의 하나로 '효'가 있지만, 그 전통적 가치로서의 효의 의미와 현실적 실천행위의 바탕으로서의 효의 의미 사이에는 불과 30-40년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낳았다. 이미 노인부모와 성인자녀, 성인부모와 미성년자녀 사이에 '노인' '효' 등에 대한 가치인식에 심각한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치관의 혼란과 불일치는 세대간에 긴장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이는 사회전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0세기 한국사회의 가치관의 혼란의 양상과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시도로 우리는 '노인'을 키워드로 살펴보려고 한다.
셋째, 현대 한국사회에서 '노인'은 사회적 약자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나이 든 노인의 경험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노인이 대접받았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반면에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고,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소화해낼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의 세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인권의 세기이다. 인권이 중요시되는 21세기 한국사회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범주의 사람들도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이다. 더구나 한국은 예로부터 민본의 전통 속에서 인권의 개념을 갈고 닦아왔기 때문에 소외되어 있는 약자가 다른 사회보다 더 적어야 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인, 장애인, 어린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삶이 무시되기 일쑤이고 제이류 시민으로 낙인찍히기 일쑤인 사회이다. 21세기에 성, 연령, 교육수준, 종교 등의 조건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이 사라지고 개인의 권리와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그동안 '노인'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약자로 전락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화, 경제성장 등과 함께 노인의 실제적인 삶의 여건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등 객관적인 측면의 과학적 탐구와 함께, 신문, 방송, 잡지 등 여러 매체와 담론 분석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이미지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확대재생산 되어왔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이 크게 세 가지의 이유로 현대 한국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좌표를 탐색하기 위한 키워드로 '노인'을 선택한다. 본 연구는 '노인'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고 '노인'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사회의 사회적 변동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노인에 대한 정부정책의 분석을 통해 가족 중심의 전통적 가치와 복지국가로서 펼치는 정책 사이에 어떤 긴장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노미 상황에서 21세기에 한국사회가 지녀야 할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 우리는 전통가치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동양과 서양의 가치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인지 탐색하고자 한다.
|
연구방법 및 내용 |
○ 연구방법
본 연구는 '노인'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 한국사회의 좌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개인의 생애과정의 변화, 노인의 경제적 처지, 거주여건의 변화 등은 1차 자료, 즉 원자료를 구입하여 분석한다. 원자료의 결과를 보강할 수 있도록 가능한 통계자료와 문헌 등 2차 자료도 다시 분석한다. 노인정책에 관해서는 정부에서 수립하고 실행한 모든 분야의 정책, 예를 들어, 의료보험, 연금제도 등에서 노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그 정책의 철학적 기반은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노인에 대한 이미지의 생산과 재생산에 관한 분석을 위해서는 신문, 방송,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과 담론분석을 행한다.
○ 연구내용
한국사회의 문제진단과 미래좌표의 탐색을 위해 본 연구는 '노인'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하였다. 구체적으로 '노인'을 중심으로 현대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분야를 탐구하고자 한다.
1) 개인의 생애과정의 변화
20세기에 이루어진 인구학적 변천은 개인의 생애과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60세를 맞으면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의 경사여서 회갑잔치가 성대히 베풀어지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지금 회갑을 맞는 일은 그렇게 기념할 일이 아니다. 90살이 넘어서도 정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인을 보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되고 있다. 반면에 영아사망률, 유아사망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어린이들이 성인기로 이행하는 비율은 과거보다 월등히 높다. 이들은 또한 과거보다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교육을 받고 있으며 30살이 다 되도록 아직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생애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미혼자녀와 노인부모 사이에서 성인들은 샌드위치가 되고 있다. 이들은 과거보다 자녀를 적게 낳아, 자녀 양육기는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의 교육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자녀양육의 부담은 과거에 비해 그렇게 줄지 않았다. 반면에 과거에는 높은 사망률 때문에 부모 부양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지금은 사망률의 감소와 평균수명의 증가로 인해 부모 부양의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성인부모세대는 자녀와 노인부모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성별에 따른 생애과정의 변화이다. 노인을 가족이 부양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부양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여자이지 남자가 아니다. 며느리 혹은 딸이 노인을 직접적으로 부양하지 장남이나 다른 아들이 부양하지 않는다. 여자가 밖에서 일하지 않고, 가사를 담당하는 시대에는 노인을 가족이 부양한다해도 문제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은 여자가 집에 머물러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에의 참여가 늘어나는 등 생애과정이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가족 차원에서 '노인' 부양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노인'을 키워드로 한국사회의 문제진단을 위해서는 먼저 20세기 한국인의 생애과정이 어떻게 변화해왔고, 노인들의 생애과정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생애과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노인'의 객관적 삶의 질과 삶의 여건
노인의 삶에 대한 객관적 고찰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분야이다. 먼저 노인들이 어떤 거주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이들의 경제적 여건은 어떠한지,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는 어떠한지 등을 원자료 및 이차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노인의 삶에 대한 객관적 분석은 평면적인 분석에 머무르지 않는다. 노인은 동질적(homogeneous)인 집단이 아니다. 연령, 건강, 재산상태, 사회적 지위, 거주지 등 여러 측면에 걸쳐서 아주 이질적(heterogeneous)인 집단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인의 객관적 삶의 질과 삶의 여건을 살펴보면서 평면적이고 횡단적인 분석보다는 다차원적이고 종단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노인을 이질적인 집단으로 인식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노인이 다른 집단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전제한다. 어느 집단보다도 '사회적 빈곤'선에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있고, 자신들을 위해서 부를 축적하지 못한 채 노인기에 들어선 불행한 집단으로 파악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성장의 주역이었지만 자식들이나 사회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한 세대가 현재의 노인세대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의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현실과, 심각한 사회문제인 빈곤의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키워드로서 노인의 삶의 여건과 삶의 질을 분석한다.
3) 세대관계의 변화
일찍이 Caldwell은 제3세계의 출산력 변화과정을 이끈 규범적이고 물질적인 기초로서 세대관계의 변화를 지적한 바 있다. 다산의 시기에서 자녀는 부모의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컸던 반면 소산의 시대에서 자녀는 부모의 자산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관계의 변화는 Caldwell의 논의와 같이 단일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관계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세대관계의 변화는 복합성과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포함하고 있다. 흔히 노인과 자녀의 관계는 자녀가 허약한 노인에 대한 의료와 경제적 보호를 제공하는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노인의 의존성에 대한 상식은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세대관계를 조명하는 데도 비적합하다. 전통사회의 가족관계가 기초하는 상속제도는 일생을 통한 세대관계의 호혜성과 계약성을 반영한다. 한편, 산업화에 따라 가족 재산의 상속성이 취약해졌고, 가계를 계승하는 자녀의 수도 줄어들었으며, 무엇보다 노년노동은 젊은 조동력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노동시장에서 강제적 퇴직을 종용받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노인의 의존성에 대한 편파된 인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여기서는, 실제 노인이 자녀와 주고받는 지원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노인의 의존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측면을 분석한다.
(1) 세대교체: 부부중심의 핵가족 이데올로기와 여성의 자율권의 신장은 시부모에 대한 가족지원의 기초를 약화시키고 있다. 급속한 사회변동은 세대교체의 시간을 빠르게 하면서 신교육과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전통적 지식과 문화속에 생활한 구세대간의 갈등과 긴장을 크게 하고 있다. 젊은 세대와 구세대의 만남이 창출한 새로운 세대관계의 방향을 효에 대한 세대간 인식의 차이 및 효사상의 시기적 변화과정과 연관하여 비판적으로 전망해본다.
(2) 지원과 책임의 호환성: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일방적으로 희생이 강요되면 와해되기 쉽다. 부모-자녀의 관계도 예외적인 관계는 아닐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관계는 책임, 애정, 의무와 같은 규범기제를 통하여 지속되는 점이 강하다. 다시 말하여 책임과 애정의식은 자원이 결핍된 시기에 긴장을 해소하고 장기간에 걸쳐 교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사회와 같이 자녀로부터 받는 수발이 이전 시기 부모가 자녀에게 베푼 헌신과 지원의 결과로서 이해되거나 현재의 자녀에 대한 지원을 노후보장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큰 사회에서는 부모-자녀관계가 장기간에 걸쳐 거래되는 교환행위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나아가 장기간의 교환은 교환되는 자원의 내용을 확대시킨다. 자녀가 노부모에게 제공하는 수발에 대하여 노부모는 다른 지원으로, 그리고 타인을 매개하여 그 수발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후보장수단"으로서의 자녀부양과 "자녀부양의 대가"로서의 노부모 부양 의식은 물질적 지원과 책임의식의 호환성을 상징화한다. 이러한 물질적 지원과 책임의식간의 호환성에 초점을 두면서 세대간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지원내용과 지원관계를 검토하고자 한다.
(3) 자원과 애정의 사회계층적 기초: 세대관계에는 사회적, 계층적 조건 속에서 구성된다. 특히 사회 보장체계가 결여된 맥락 속에서 가족수준에서 실현될 수 있는 자원이 세대관계에 미치는 효과는 강하다. 따라서 가족의 계층적 지우에 따라 세대관계의 유대와 성격은 차이가 클 것이다. 현 우리사회의 노인집단은 일반적으로 소득수준, 교육수준, 직업배경 등에서 사회저층에 속하지만 자녀가족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상당한 변이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가족수준의 계층적 위치가 세대연대 및 지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보고자 한다.
(4) 세대지원의 시점: 세대관계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예컨대 신체적으로 건강한 노인과 함께 살다가 노인이 만성질환으로 상당한 수발을 필요하게 될 때 수발을 전후 세대관계는 변하기 쉽다. 이와 같이 세대관계가 생애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규명하기 위하여 생애사의 중요한 사건(질환, 은퇴, 배우자의 사망 등)들을 전후로 세대관계가 지속되고 단절되는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4) '노인'에 대한 이미지의 생산과 재생산
전통사회에서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객관적인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 모든 노인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인을 모시고 살 수는 없었다. 그렇다해도 최소한 사회적으로 노인이 무시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십년 사이에 노인은 불필요하고,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 짐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산은 없이 오로지 소비할 뿐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심어져 있다. 노인에 대한 복지시책의 일환으로 노인들은 지하철역에서 무료승차권을 발급받을 수 있지만 경로우대 무료승차권을 달라는 노인은 왠지 약자의 입장에서 부탁하는 느낌이 들고, 무료승차권을 발급하는 역의 직원은 시혜를 베푸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노인에 관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은 으레 탑골공원에서 추레한 모습으로 장기를 두거나 무료배식소에 길게 늘어선 모습을 방영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노인은 별볼일 없고, 불필요하거나, 사회적으로 짐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회에는 노인을 공경하고 부양하는 '효'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고 강조해도, 우리는 노인, 여성, 장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때로는 노골적으로, 또 때로는 은연중에 생산, 재생산해온 것은 아닐까?
이 주제에 대한 분석은 20세기에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룩해 온 한국사회가 그 부정적인 산물의 하나로서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하고 소외시켜온 기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생산과 재생산의 기제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맞이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평등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5) 노인정책: 가족 아니면 사회?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아니, 복지국가라고 불리울 수 있는 측면이 있는지조차 의심할 수도 있다. 서구에서 복지국가 개념이 출현하면서 제일차적인 복지의 대상의 하나는 노인이었다.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의 노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복지국가가 출현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한 점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부양은 국가나 사회의 몫이 아니라 장남이나 가족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것도 장남이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양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인 형태로 기대되고 있다. 장남이 할 수 없다면 차남이, 아니면 아들 중 하나나 딸이 부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노인부양 형태이다. 노인부모를 양로원에 보내는 것도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부양형태가 아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장남 등 가족이 노인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아파트 형태로 재편되고 있는 도시의 거주공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잦은 직업과 거주공간의 이동 등은 가족에 의한 노인부양을 힘들게 하고 있다. 산업화를 겪은 서구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도 노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미 여러 형태로 노인정책이 수립, 실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현대 한국사회에 노인정책이 어떻게 실시되고 있는지 분석한다. 노인정책에 대한 분석은 정책에 대한 평면적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이 무엇인지, 그러한 노인정책은 우리의 전통과 가치세체계와는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등을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노인정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성공적인 정책과 실패로 돌아간 정책이 있다면 그 원인을 우리의 전통과 가치체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분석하는 사회문화적 접근방식을 취한다.
6) 새로운 가치관의 탐색: '사회적 효' 개념의 정립
지금까지 '효'는 한국사회 혹은 동아시아에 고유한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 효는 충과 더불어 밑에서 위로 흘러가는 일방적인 방향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효는 한국이나 동아시아만의 고유 개념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나 나이 든 부모를 부양하는 개념이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실천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21세기의 노령화사회, 정보화사회, 포스트모던사회에서 노인부양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맥락이 질적으로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노인부양에 관한 가치나 실천만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수레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이나 조건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실천양식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가족만이 책임을 지고, 아래로부터 위로만 흘러가는 일방적 '효'의 개념은 다시 한번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제 가족만이 효를 행하고 노인부모 부양의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 먼저 개개인이 노년에 대해 대비하고, 국가나 사회가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하며, 거기에 가족이 죄의식 없이 노인부양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가치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유림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회적 효'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김대중 대통령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고, 이미 장경섭교수 등의 가족사회학자들이 고안, 주장해 온 개념이다. 본 연구는 '노인부양'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통적인 유교가치를 오늘날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 현실적인 맥락 내에서 재해석하고, 미래 한국사회의 좌표로 탐색하려고 한다.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노인' 부양에 관해 효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미래 한국사회의 지향에 관한 정신적 측면의 전망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