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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구분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1999-한국학-1
연구과제명
  • 국문 : 南冥 曺植의 思想과 그 現代的 意味
  • 영문 : -
연구책임자 박병련
공동연구자
  • 정순우 / 사회과학부 / 교수
  • 한형조 / 인문과학부 / 조교수
  • 이종묵 / 인문과학부 / 조교수
연구기간 1999-05-01 ~ 1999-12-15 연구형태 공동
연구목적 및 배경

○ 연구목적
   - 南冥 曺植은 우리나라 사상사의 맥락에서 볼 때 退溪 李滉과 병칭되면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학자이자 사상가이다. 공자와 안자에게 표준을 두어 실천을 중시하며 실용성을 강조하는 그의 학풍은 주자를 최고의 표준으로 하는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계열의 학풍과는 대립되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회재, 화담, 퇴계, 남명 등이 나타나기 이전 환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등으로 대표되는 사림이 추구한 학문적 명제는 소학 중심의 修己的 실천과 정치현실 속에서의 윤리성의 관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남명이 살았던 시대는 理氣의 틀에 따라 우주의 자연성과 인간의 윤리성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주자학적 구도에 학문의 중점을 두는가 아니면 洙泗學的 유교의 고전적 명제인 인본적 맥락에 치중하여, 인간이 직면하는 현실적 문제를 仁義 · 民本의 이념에 따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인격의 단련(修己) 및 그에 기초한 정치적 · 사회적 실천(治人)을 중시하는가의 分岐가 일어난 때였다.

   - 주자학적 구도의 이해에 학문의 중점을 두는 흐름을 대표하는 학자가 퇴계 이황이라면 이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두 번째의 흐름을 대표하였던 사상가는 단연 남명 조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맥락의 분기로부터 철학, 정치, 교육, 문학 등의 분야에서 의미있는 관점의 차이를 노정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명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약했거나 국지적이었고, 체계적이면서도 학제적인 재조명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 본 연구는 남명 조식에 대해서 그의 행위와 사상이 준거하는 철학적 체계와, 그에 따른 교육관과 정치관을 살펴 보고, 나아가 그의 일상과 생활상의 정서를 문학작품들을 통하여 재구성해 봄으로써 보다 심층적인 남명 이해에 도달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한국의 사상사 이해의 지평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배경
   ◎ 조선 유학사에는 잊혀지거나 금기인 사람이 많다. 뛰어난 학식과 경륜, 독창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는 것은 주로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초석을 마련한 경략가요 사상가인 정도전이 그런 사람이고, 남명 조식 또한 그런 유형에 속한다.
   남명은 당시 퇴계와 더불어 사상계를 양분한 걸출이었는데 그의 문인들이 광해와 인조 사이의 정치적 전환기에 패자인 광해편에 섰기에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 그 설분을 위해 지금은 그의 문중인 조씨 집안과 지역인 진주를 중심으로 그를 드높이려는 움직임이 〈남명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활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반발은 처음의 왜곡을 시정하려는 움직임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편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 두 경향 너머에서 남명을 조명하고자 한다. 그는 어떤 이력의 인물인가. 그가 느꼈던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고안했는가.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조 선비의 유형과는 아주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연구자들이 느낀 흥미는 바로 거기에 연유한다. 그는 우선 주자학의 이론적 철학적 심화를 중시하지 않았다. 동시대의 퇴계는 주자학을 철저히 파고들어 그것을 내면화하는 것을 일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남명은 그러지 않았다. 실용적 목적을 위해서는 이론적 천착과 철학적 편향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유학자들에게서 이단으로 금기되어 있던 무사적 호방함과 군사와 행정에 있어서의 실천적 경영방략에 더 깊이 몰두했다. 그는 이 생각을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의 문하에 임진란의 혁혁한 지도자들이 배출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퇴계처럼 자신 내부의 초월적 본성을 자기내적으로 확보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의도와는 달리 정적 유폐와 생기의 저상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럴 경우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동안은 퇴계의 학덕에 눌려 그의 이같은 태도를 지나친 사공적, 즉 공리주의적 태도로 폄하해 왔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의 평가는 달라졌다. 조선조 지식인들은 지나치게 철학적 문제에 사변적으로 골몰함으로써 진정 필요한 실무적 실용적 지식을 개발하고 계몽하는 〈실학〉을 만드는 데 소홀히 해왔다는 것이다. 이 판단은 당연히 퇴계보다 남명을 주목하는 쪽으로 가야하는데 학계는 그러지 않고 있다. 그곳은 여전히 전근대적 도통과 관행의 무풍지대에 있기 때문에 근대적 인식으로 과거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데 소극적이다.
   연구자들은 그렇다고 이 〈근대〉의 상식적 잣대를 무분별하게 들이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용〉을 〈생산〉과 〈효율〉의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功效로만 파악하지는 더욱 않을 것이다. 아울러 조선유학사가 굳혀놓은 지식인의 포폄에도 기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명을 읽는 지평 하나를 독자적으로 개발해보고자 한다. 구체적 성과는 진행과 더불어 나타날 것이지만, 학문외적 편견과 편향으로부터는 철저히 자유롭겠다는 다짐은 해 둘 수 있다.

 

   ◎ 연구의 배경을 이루는 특성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첫째, 퇴계 이황이 비교적 체제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남명 조식은 당시의 위정자들과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현실인식의 배경에는 퇴계와 구별되는 그의 철학적 사유와 그에 기초한 교육관, 정치관, 학문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둘째, 남명이 퇴계와 달리 "경세적 지식"이나 "武의 정신"을 소홀히 취급하지 않는 개방적 자세를 취하면서, 동시에 이들 지식이나 정신을 "心得(터득함)"을 통해 주체적 인격의 풍요함으로 통합하려 하였던 것은 그의 독특한 "선비관" 및 "출처관"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다.
   셋째, 그는 송시열이 말한 것처럼 "한국적 선비상"의 한 대표적 전형을 보여주는데 인간과 지식, 인격수양과 경세적 · 실용적 지식의 관계설정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대한 그의 해법은 정보화와 지식중심사회에서 과연 인간의 인격성이 어떻게 정초되어야 하며, 그 관계설정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남명 조식과 남명학파에 관한 연구는 근래에 이르러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와 남명학연구원이 설립되면서 상당히 활성화되어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많은 논문과 관련저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학문적 배경이나 지역적 특성에 따라 남명의 특정 측면에만 초점이 두어지는 경우가 많아 종합적인 이해에 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 다양한 시각과 비교적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심층적이고도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방법 및 내용

○ 연구방법
   - 남명의 철학적 사유의 체계에 관해서는 주자학적 체계와, 수사학적 체계의 특성에 비추어 검토하고, 동시에 퇴계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과 비교해 보는 방법으로 그의 철학적 입장의 특징을 분명히 하고,
   - 교육적 관점에서는 그의 공부론이 갖는 특성을 조선조 통상의 유학적 공부론과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인지를 밝히며, 특히 퇴계학단에서 강조하는 교육방법 또는 교육관과 비교하면서 그 특징을 분명히 한다.
   - 남명의 정치행정적 관점은 선행사상의 흐름과 연관하여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남명의 현실인식의 역사적 배경을 역사적 접근방식으로 살펴본 다음, 그의 군주관, 관료관, 민관, 군민간의 관계설정 등의 측면에서 다른 학파와 비교하면서 그의 사상상의 특징을 살펴본다.
   - 남명의 생활인으로서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데 그의 문학작품을 窓으로 사용한다. 생활인으로서 산천을 유람하고, 벗과 우정을 나누며,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문학 작품을 통해 재구성해보는 방법을 사용한다.

 

○ 연구내용
   - 남명 조식은 그가 살았던 당시에 그가 차지했던 사상계의 위치를 후대에서 제대로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잊혀진 사상가요 교육자이다. 그 이유는 그의 뒤를 잇는 제자 후학들의 정치적 좌절과 동시에 집권세력의 지속적 핍박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퇴계의 학문관, 현실인식, 대처방안 등 제방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던 그의 철학이나 사상이 오늘날에도 제대로의 이해와 평가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사상사의 단선적 발전(道統論적 전개)에 집착하는 조선후기의 학풍을 그대로 답습하는 폐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관심과 지향의 표적이 무엇이었으며, 퇴계와 비교하여 그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사유가 조선후기 사상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 선구적인 교육사학자 이만규가 남명의 교육사상적 특징을 퇴계와 비교하여 공맹의 정로에 더 가깝다고 평가했듯이 남명의 공부론은 조선조 유학사에서 볼 때 다른 학자와 뚜렷이 구별되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의 공부론도 객관적 지식과 인식주체와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유학의 보편적 원리 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공부론이 퇴계, 율곡 등 여타의 성리학자들과 크게 구별되는 점은 지식과 인식주체와의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을 근거부터 사상해 버리고자 하는 적극적 사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부가 몸과 마음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지와 행이 완벽한 합일을 이룰 수 있도록 일상 그 자체를 언제나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해 '의식의 깨어남(常惺惺)'의 상태를 여일하게 유지하려는 구도적인 자세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남명 조식은 사상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존재이고, 동시에 그의 문인집단들의 정치적 태도나 일상의 실천에서도 일반의 유학자들과는 구별되는 공통된 특징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임진란이 일어났을 때 가장 많이 의병을 일으킨 집단도 바로 남명학파였다. 그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읽는 관점과 문제인식의 틀은 퇴계 이황과는 대비되는 점이 매우 많다. 유가의 성인정치론이 갖는 기본구도에서 현실성의 요소를 깊이 고려하지 않으면 정치적 영역의 문제 해결의 최선의 열쇠는 치자의 덕성이라는 원리론적 해법으로 귀착되는 것이지만 남명은 그 사이의 격절을 인식하고서 그 해결의 구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 남명에 대한 연구가 근래에 이르러 활성화되고 있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남명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드물다. 생활인으로서 산천을 유람하고, 벗과 우정을 나누며, 친구의 불행을 슬퍼하고 자식의 죽음을 애달파하며, 잘못된 정치에 분노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재구성해 볼 때 보편적인 생활인으로서의 남명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남명, 잊혀진 유학자
      - 조선조 유학 전통의 특질
      - 남명의 관심과 지향
      - 남명과 퇴계: 내성과 외왕의 긴장
      - 근대, 실학, 그리고 유학의 실용주의

   2. 남명 功夫論의 성격과 의미
      - 日常과 惺惺
        - "敬" 확보의 공부과정
      - "義"의 일상적 실천 문제
      - 敬義學과 교육과정

   3. 儒家政治의 "經世性" 확보를 위한 남명의 구도
      - "人格性"과 "經世性"의 隔絶
        - "經世性"의 支末化와 성리학의 空疎性
        - 隔絶을 푸는 열쇠 ㅡ敬義의 확립과 실천ㅡ

   4. 남명 조식의 삶과 문학
      - 남명적 "日常"의 범주
      - 日常의 문학적 표현
      - 일상에 대한 의미부여의 체계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南冥, 그 武人的 儒學의 철학적 좌표

▨ 南冥과 退溪의 功夫論 比較硏究

▨ 南冥 思想에 있어서 道學과 政治

▨ 南冥 曺植의 삶과 文學

연구결과

   南冥思想이 갖는 武的 性格哲學的 座標를 새로이 드러내어 그의 사상적 특징을 밝혀낼 수 있는 새로운 맥락을 구축하면서, 또한 朝鮮前期 政治體制 設計의 모델을 儒者개념의 再定義復舊하려 했다는 새로운 解析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그의 思想을 떠받치는 敎育的 特性退溪比較하여 分析하고, 그의 生平日常文學이라는 을 통해 再構成하여 理解를 도우고 있다.

참고문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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