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목적 및 배경 |
○ 연구목적
전통적 인간관계 규범을 계발하여 오늘날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덕목으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인문학부와 사회과학부가 장기간 공동연구를 통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이다.
올해는 구체적으로 예학 또는 예교의 현대적 재조명을 통해 시민윤리방향을 탐색하고자 한다. 한국의 전통사회의 예학논쟁은 중국을 능가할 만큼 정치하게 발전된 우리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예학에 정통한 인문학부의 연구자들이 조선시대의 예교 정신을 연구하고 사회과학부의 연구자들은 전통적 예교(예학) 정신을 현대에 계승하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여 학제간 연구를 통해 연구성과를 내도록 한다.
이 과제는 구체적인 예학의 텍스트를 사용하되 텍스트 연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보편적 주제를 발견해서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의미, 또는 현대적 시민윤리와의 연결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본 연구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신문제, 이기주의문제 등 일련의 사회문제들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東方禮儀之國이 아니라 東方無禮之國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 이는 상공업에 기반을 둔 근대적 시민사회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이기적 인간의 욕망이 상호 충돌하는 巿場에 바탕을 두면서도 시장을 넘어서는 질서를 통해 스스로를 규제할 때 비로소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될 수 있다. 근대사회가 그 활력을 유지하면서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근대적인 것과는 낯선 것일 수도 있는 중세적 내지 고대적 인간사회의 유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禮란 인간과 인간이 혈연적 혹은 비혈연적 위계질서 안에서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관계맺을 수 있게 하는 名分的 직서를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禮가 흔들리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따라서 흔들린다. 어느 사회이건 禮가 요구되지 않는 사회는 없다. 禮는 유학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法도 넓은 의미의 禮 속에 포함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서구로부터 근대 문명을 수입해 왔지만 서구근대사회를 규율해온 각종 禮의 질서는 제대로 수입 정착되지 못했고, 전통적 禮敎는 붕괴된 지 오래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禮의 무정부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전통적 예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전통적 예교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공업에 기초한 근대시민사회와 농본주의적 전통사회는 같지 않다. 유학의 가르침은 父子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가부장적 가족질서에 중심을 두고 君臣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적 질서에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적 예교의 핵은 부자관계와 군신관계를 分節해서 꾸미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시민사회의 이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예적 질서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대시민사회가 지나친 개인주의로 말미암아 인간관계를 난폭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은밀히 관료주의적 폐단디 강화되고 있다. 근대시민사회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근대시민사회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근대시민사회의 활력을 유지하면서 전통적 예교 속에서 근대시민사회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라는 것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다.
○ 연구배경
유학의 핵심은 孝弟의 윤리에 있고, 이를 실천하는 방안이 곧 禮라고 할 수 있다. 禮를 둘러싼 경학적 논의와 그 사회적 실천의 문제는 유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예학 혹은 예교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것은 繁文縟禮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禮와 관련된 담론이란 어느 것이나 지극히 복잡하면서도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무용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유학에서 예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그에 대한 논의들도 무수히 많았던 것이 사실이나, 대부분 텍스트 연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상식적 추측과 억설로 일관할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들어 국사학계를 중심으로 예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독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와 난삽한 논리로 점철되어 예학 혹은 예교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유학에서 禮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를 둘러싼 조선조의 복잡한 논의들이 갖는 진정한 사회적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새로운 시민윤리의 모색을 필요로 하는 이번 공동연구에서는 우선 예학의 원점에 있는 禮經들을 다시 읽고 기존의 국내외 예학 연구의 성과를 참고로 함으로써, 禮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치하게 발달했던 조선조 예학의 핵심적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추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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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 연구방법
1. 문헌연구
* 三禮와 그 주석서, 조선조를 지배한 小學과 朱子家禮 등의 한문원전에 대한 엄밀한 독해. (난해한 원전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讀會 개최)
* 禮學 관련 국내외 연구성과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2. 학제간연구
* 한문원전 및 이차자료에 대한 독해의 결과를 놓고 함께 토론. (원내 연구자들끼리는 수시로, 원외 연구자들과는 정기적으로)
* 인문학과 사회과학, 동양학과 서양학 간의 입장의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상호 융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 쓰여진 원고를 모아 윤독회를 연다.
3. 현지조사
* 전통적 예교를 잘 아는 원로나 전통적 예교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예교의 사회적 기능을 조사한다.
4. 전문가 자문
* 연구 초기 및 진행단계에 따라 전문가 자문을 얻도록 한다.
○ 연구내용
유학의 禮敎는 개화기 이후 근대화를 위해 버려야 할 봉건적 잔재로 비판받아 왔다. 이 비판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통적 예교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유의할 만한 긍정적 요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과제의 근본적인 가설이다. 6명의 공동연구자들은 전통적 예교 속에 오늘날 우리사회의 문제를 치유해줄 모종의 약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禮의 공시적 본질(제1부), 조선조 예학의 특징적 구조(제2부), 예교의 현대적 의미(제3부)를 탐색할 것이다.
제1부는 禮敎에 대한 철학적 연구이다. 두 명의 철학전공교수들이 禮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제1절에서는 최진덕이 예학적 논의의 원점이 되는 三禮를 중심으로 禮의 보편적 본질과 그 문제점을 탐색하고, 제2절에서는 한형조가 주자학의 본체론과 수양론 및 정치적 실천론과 연관해서 조선조를 집배해온 성리학적 예학의 원리와 그 한계를 탐색할 것이다. 제1부는 禮經이나 주자학에 대한 문헌학적, 철학적 탐색을 넘어 현대적 시민윤리와의 연관성을 놓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제2부 및 제3부의 공동연구자들과의 토론을 통해 유기적 관련을 갖도록 할 것이다.
제2부는 禮敎에 대한 역사적 연구이다. 조선조 예학의 특징적 구조를 성리학과 실학으로 나누어서 살핀다. 제1절에서는 역사학 전공의 고영진이 朱子家禮와 古禮, 士禮와 王朝禮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조선조 예학사의 흐름 속에서 성리학자들의 예학에 내포된 근본적인 통찰이 무언지를 탐색하고, 제2절에서는 사회학 전공의 정일균이 실학 그중에서도 특히 다산예학의 근본 메시지를 찾아내어 그것이 갖는 근대적 의미를 해석한다.
제3부는 전통적 禮敎가 갖는 현대적 의의에 대한 연구이다. 제1절에서는 교육한 전공의 박연호가 〈소학〉 〈가례〉 등을 중심으로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의 修身과 가족적 의례가 갖는 현대적 의미를 모색하고, 제2절에서는 사회학 전공의 한도현이 전통적 예교가 오늘날 시민사회 안의 문제점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 자산을 탐색해 보기로 한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전통적 예교와 시민윤리 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그리고 전통적 예교가 오늘날 시민사회의 무질서와 불신을 치유함에 있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를 공동연구자들 전원이 함께 토론하고 그 결과를 한 두 연구자가 논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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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예학적 논의의 원점이 되는 三禮를 중심으로 예의 보편적 본질과 그 문제점을 탐색하고, 주자학의 본체론과 수양론 및 정치적 실천론과 연관해서 조선조를 지배해온 성리학적 예학의 원리와 그 한계를 탐색하였다.
禮敎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조선조의 예학의 특징적 구조를 성리학과 실학으로 나누어서 살피고 조선조 예학사의 흐름 속에서 성리학자들의 예학에 내포된 근본적 통찰이 무엇인지 알아 보았다.
전통적 예교가 갖는 현대적 의미로서 修身과 가족적 의례가 갖는 현대적 의미와 전통적 예교가 오늘날 시민사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공동체적 의의를 모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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