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
과제코드 |
2002-01-01 |
연구과제명 |
- 국문 : 한국인물대계 I : 사상과 인물 ㅡ서계 박세당 연구ㅡ
- 영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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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정순우 |
공동연구자 |
- 권오영 / 본원 / 조교수
- 박병련 / 본원 / 교수
- 윤사순 / 중앙대학교 /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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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2-03-22 ~ 2003-06-15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당시대 인물과 역사인물들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의 맥을 잇고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여 미래의 귀감으로 삼고자 함. 역사 속의 숨겨진 사상가를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꾀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2002년도에는 서계 박세당의 삶과 사상연구이다.
박세당(1629-1703)은 조선 후기 반주자학적 경학 해석을 과감히 도입하면서 조선 후기 지성사에 엄청난 충격을 준 인물이다. 그의 경학해석은 사문난적으로 몰려 조선시대 정신사에서 철저히 외면되어 왔고, 최근의 연구성과도 극히 미미하다. 그의 사후 300주년을 맞아, 최근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충분히 소화하면서, 그의 독창적인 경학관과 역사관 그리고 교육론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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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제1부 전근대인물연구(서계 박세당): 정순우, 윤사순, 박병련, 권오영
우선 박세당의 고유한 경학해석 방식을 「사변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이단적 사유의 특징을 살펴본다. 그의 철학이 노장적 사유에 밀착되어 있는지, 아니면 불가적 해석체계인지, 혹은 양명적 사유인지를 검토한다. 또한 당시 소론의 학문적 종장으로서 그의 역사관과 시대인식에서는 어떤 특질이 있으며, 그것의 정치사적 해석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등을 탐구한다. 이와 함께 그의 윤리관과 수양론 등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성사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한다. 각 연구자별 연구 영역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서계(박세당) 유학의 철학적 특성 (윤사순: 고려대 교수)
2. 박세당 '허문'비판의 정치사상적 의미와 정치적 행동의 특성 (박병련: 본원 교수)
3. 박세당의 삶과 그 사상의 신의 (권오영: 본원 편수연구원)
4. 서계 박서당 공법론의 양명학적 성격 (정순우: 본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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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I. 西溪 朴世堂 工夫論의 陽明學的 性格
················· 丁淳佑(본원 교수)
1. 서론
2. 西溪의 格物致知說
3. 西溪의 未發說을 통해서 본 陽明學的 性格
4. 결어
II. 西溪(朴世堂) 儒學의 철학적 특성
················· 윤사순(고려대, 명예교수)
1. 경전해석과 철학의 관계
2. 실리적 사고와 혁신적 학문태도
1) 실리 · 실질적인 일상적 사고
2)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학문태도
3. 정주 성리설에 대한 주요 비판론
1) “天卽理”의 부정
2) “性卽理”와 “理一分殊”의 부정
3) 주희의 心性說에 대한 서계의 반론
4. 그의 비판론의 철학적 함의
III. 朴世堂 ‘虛文’批判의 政治思想的 의미와 政治的 行動의 특성
················· 朴丙鍊(본원 교수)
1. 서론: 他者準據的 思惟의 解體
2. 西溪의 出處와 同志者들의 特性
1) 西溪 出處의 特徵
2) 西溪의 同志 : ‘賢者’와 ‘不肯屈首者’의 특성
3. 西溪 政治的 思惟의 特性 - ‘實效/虛文’의 意味論的 對立
1) ‘質實’과 ‘實踐’重視 思想의 淵源
(1) 南冥 曺植의 ‘空談性理’ 批判
(2) 象村 申欽의 ‘質實’重視論
2) 西溪의 ‘虛文’批判 : 他者準據的 大義論 批判
4. 西溪의 自我準據的 ‘實效’思想과 政治的 行動
1) 政治的 이슈와 西溪의 文戰
(1) 丙子胡亂과 節義 · 和義論爭
(2) 反尊攘論
(3) 金萬均 陪從拒否 事件
(4) ‘禮訟’에 대한 西溪의 입장
2) 기타의 政治的 이슈에 대한 西溪의 立場
(1) 金堉 墓 문제
(2) 仁顯王后 復位와 南人逐出 문제
5. 結語 : 黨爭 속에 묻힌 近代的 思惟의 萌芽
IV. 朴世堂의 삶과 그 思想의 新意
················· 권오영(본원 조교수)
1. 머리말
2. ‘閑人’으로서의 삶
3. 經傅註釋에 대한 새로운 해석
4. 老莊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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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1. 첫째, 그의 공부론에서는 격물설과 미발설 등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이 양명학적 요소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2. 둘째, 그의 경학연구에서 나타나는 혁신적인 사고와 실리적 사유는 친청정책을 가능하게 하고, 脫程朱學을 통하여 다산으로 이어지는 ‘실학의 철학’을 가능하게 하였다.
3. 셋째, 서계의 정치의식은 우암 송시열의 친명정책을 극복하고, ‘자아준거적’ 정치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다.
4. 유학사에서 그는, 노장학을 적극 수용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나, 정주학의 큰 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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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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