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단독논문게재형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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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2008-31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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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박현모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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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8-05-30 ~ 2008-11-30 | 연구형태 | 개인연구 | |
연구목적 및 배경 | - 본 연구는 영조의 개혁 내용보다는 그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것이다. 종래의 연구는 영조 시대에 추진된 개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추진되었는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 예를 들어 정만조 교수는 탕평책에 관한 연구에서 탕평책의 “본질과 성격, 정치적 기능 등을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정만조 1986). 영조의 탕평을 ‘완론(緩論)’탕평이라 규정짓고, 다섯 시기로 나누어 그 특징을 분석하고 있는 박광용 교수 역시 각 시기의 정치세력관계 및 주요 주장을 정밀하게 고찰하고 있다(박광용 1994). - 하지만 리더십이나 국가경영의 측면에서 볼 때 그 ‘내용’보다는 ‘방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의 과정과 방식이야말로 리더십 모델링의 주요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영조시대의 재판기록에 나타난 판부를 토대로 영조의 리더십 스타일을 고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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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 연구 결과, 영조는 사죄(死罪)에 대한 판부(判付)에 있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먼저 그 죄가 왕실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거나 왕위계승의 문제에 관여되어 있을 경우, 극형을 내리곤 했다(재위4년의 무신란, 재위5년의 황소사건, 재위6년의 최필웅 사건 등). - 이에 비해, 백성들끼리의 형사사건, 예컨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기 아내를 죽인 사건(영조실록 13/11/24) 등에 대해서는 관대한 형벌을 내렸다. 특히 그는 “한 사발의 죽을 가지고 다투다가 사람을 죽인”(17/11/24) 사건에 대해서 “배고픔이 사람의 본성을 잃게 한 것이니 그 잘못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 영조 때 내려진 여러 가지 진혹한 고문방법의 폐지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1725년(영조1년)에 압슬형을 폐지한 것이나, 1732년(영조 8년)에 포도청의 전도주뢰를 없앤 것,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733년에 낙형(烙刑)을 폐지한 것이 그 예이다(영조실록 9/8/22) - 영조의 판부를 토대로 그의 진단, 비전, 처방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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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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