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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구분 한국학 기초연구/단독논문게재형과제
과제코드 2008-26
연구과제명
  • 국문 : 조선시대 문과 重試 급제자 연구
  • 영문 : A Study of the Second Civil Service Examinationin Chosun Dynasty
연구책임자 원창애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2008-04-15 ~ 2008-11-30 연구형태 개인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 목적 및 배경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重試 급제자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문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科擧는 고려시대부터 계속되었으나, 조선시대 문과가 고려시대의 과거와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관원의 문과 응시 폭이 확대되어 의 성격뿐만 아니라 승진의 성격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고려 시대에는 현직 관원으로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범위를 7품 이하의 참외관으로 한정시켜놓았다. 반면 관료제가 고려시대보다 전진된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관원의 문과 응시의 폭이 당하관 이하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하관 이하 관원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重試까지 실행되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문과는 고려의 그것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重試의 설행은 조선시대에만 정기적으로 설행된 시험의 형태이다. 重試 설행 배경과 양상, 중시 급제자에게 실제로 적용되는 승진 내용, 重試 급제자 성분들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문과의 성격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2) 중시 급제자 연구를 통해서 조선 핵심 관료층 형성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사회 지배층의 특성을 밝힐 수 있다.

조선 전시기 문과 급제자 연구를 통해서 조선 사회 지배층의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성관별로 문과 급제자를 분류할 때, 15세기에는 특성 성관에 문과급제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적으나, 17세기 이후로는 특정 성관에 문과 급제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문과 급제자의 관직 진출 양상을 보더라도 17세기 이후로는 객관적인 문과 급제 등위보다는 가문의 門地나 學脈 등이 유력한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조선이 건국된 이후 사회 경제 체제가 확립되고, 안정된 이후로는 핵심 관료층이 보수화되어서 특정 정치 세력 내에서의 관료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관원을 대상으로 치루는 重試 文科 급제자는 참외관은 창상직으로, 참상관은 당상관으로 승진될 수 있다. 15세기의 경우를 예를 들면, 중시 급제자의 약 70%가 참상관이다. 이들은 重試 급제를 통해서 당상관으로 나아가게 된다. 국가의 정책 입안하고 결정하는 핵심 관료층이 되는 중시 급제자의 출신 배경, 관직 진출과 승진 등을 연구하는 것은 조선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전 시기의 重試 급제자를 다룸으로써 핵심관료층 형성의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연구방법 및 내용

 

본 연구는 重試 설행 양상, 중시급제자의 성분, 중시급제자의 승진과 진출, 중시급제자 가문 등을 파악하여 조선시대 문과의 성격과 중시 급제자의 사회적 지위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 내용은 연대기 자료와 법전류 그리고 『국조문과방목』을 이용하여 중시 설행 양상 정리, 중시급제자 전력·관력 조사, 중시급제자 가계를 파악해야 한다.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연대기 자료를 통해서 重試 설행 배경과 실태를 파악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통해서 重試 설행 배경과 의미를 파악하고, 설행 실태와 급제자에 대한 관직 제수에 대해서 알아본다. 평균 10년에 1회를 설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표1>을 참조하면, 세조 성종 영조대에 10년 이내에 실행되는 경우가 보이고 잇다.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國朝榜目』에 수록된 중시급제자를 엑셀을 이용하여 입력한다.

『國朝榜目』에 의하면, 중시 문과 급제자 정보는 급제자 전력, 이름, 그제한 문과 시험년도만을 기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 급제 당시의 방목을 통해서 내용을 보충하여 입력한다. 입력 항목은 중시 시험년도, 이름, 전력, 중시 급제 등위, 문과 시험 년도, 등위, 전력, 나이, 본관, 가족 사항(父, 祖父, 曾祖父, 外祖父, 妻父), 관직 등이다.

 

3) 중시 급제자 官歷을 조사한다.

『國朝榜目』에는 문과 급제자의 최종 관직이 18세기 중반까지만 기재되어 있다. 즉 국가에서는 單回文科榜目을 모아서 일괄 정리하였는데, 현존하는 방목은 정조대에 정리된 것이다. 따라서 영조대 이후로는 문과 급제자의 최종 관직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이 방목의 부실한 부분을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을 통해서 보완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을 통해서 중시 문과 급제자의 관력을 조사하되, 『淸選考』, 『登瀛錄』, 『翰苑題名錄』, 『國朝人物考』, 『玉堂先生案』, 『銓郞先生案』, 『舍人先生案』, 『判書先生案』, 『文衡錄』 등의 官歷 등을 통해서 관력을 보완한다.

 

4) 중시 급제자의 가문을 살핀다.

중시 문과 급제자의 姓貫과 문과 급제자의 姓貫을 비교 분석하고, 『國朝榜目』에 기재된 가족 사항을 기초로 하여, 중시급제자의 가문에 대하여 알아본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문신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1122년(예종 17)에 처음 시행되었다. 예종이 설행한 시험은 문신을 시상하는데 그쳤으나, 충렬왕대는 무신 친시를 통해 급제자에게 황패와 관직까지 제수되었다. 1389년(공양왕 1) 조준은 유학 진흥책으로 문신을 대상으로 시험을 시행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조준의 상소 내용은 조선 정종대에 하륜이 올린 중시의 필요성과 일맥 상통한다. 조준과 마찬가지로 하륜이 유학 진흥책을 표면에 내세웠으나,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탁용하고자 한 것이 실제 목적이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조선 건국에 소극적이던 하륜·권근 등이 태종과 더불어 행정체제를 정비하고, 왕권 강화를 도모하였다. 태종은 자신의 계획대로 새로운 조선을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인재가 필요했다. 1400년(정종 2)에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1407년(태종 7) 중시가 시행되었다.

 

중시는 1407년(태종 7)에 설행된 이래 10년에 1회 설행되었다. 1407년(태종 7)에서 1886년(고종 23)까지 57회의 중시가 설행되었다. 거의 10년에 1회씩 설행되었으나, 세조·성종·중종·영조대에 자주 중시를 설행하였다. 자주 설행된 중시의 성격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문신과의 친화를 도모하려는 중시 설행이다. 이것은 1466년(세조 12)에 설행된 발영시와 등준시가 기원이 되었다. 이러한 시험을 『속대전』에서는 문신정시라고 칭하였다. 문신 정시는 당상관도 시험 대상이 된다. 영조도 1774년(영조 50)에 등준시를 설행하였다. 이것도 문신 정시로서 종1품 이하 문신을 대상으로 하였다. 둘재는 새로운 인재의 탁용을 위해서 자주 중시가 설행되기도 하였다. 성종과 중종대의 중시 설행이 그러하다. 성종이 왕권강화를 추진하던 1477년~1487년 사이 중시가 집중시행되었다. 중종 역시 1538년(중종 33) 탁영시라는 이름으로 인재를 탁용하여 왕권 진흥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중시급제자의 성분은 중시 급제자 전력, 시험 이력, 중시 급제 연한 등으로 대별하여 살펴보았다. 중시급제자의 전력은 당상관이 7.3%, 참상관이 65%, 참하관이 18.6%, 산관이 6.9%, 급제·권지 2.2%로 참상관의 중시 급제자가 주류를 이룬다. 중시 급제자가 재직했던 관서는 참상관의 경우 육조·홍문관·오위·성균관·외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육조·홍문관·성균관은 참상 청요직이다. 특히 홍문관은 경연관으로, 성균관은 교육 기관이므로 중시 급제율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외관과 오위 서반직의 점유율이 높은 것이 주목된다. 외관은 15세기부터 꾸준히 급제자를 내고 있는데, 중시 급제를 통해 경관직에 제수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오위 서반직의 급제는 18세기 19세기에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18세기 이후 참상직의 적체 현상으로 서반직에 제수되었던 이들이 중시를 통해 동반직을 제수받고자 하였다.

 

참하관의 경우 중시 급제 점유율이 높은 관서는 승문원·성균관·교서관·홍문관·예문관 관원이 주류를 이룬다. 참하관의 경우 특징적인 것은 15세기·16세기에는 성균관·교서관 관원의 급제가 있었으나, 17세기 이후로는 승문원 관원의 급제만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17세기 이후 당쟁 정치기에 학맥과 문지가 중요한 분관의 요소가 되면서 승문원이 분관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하관의 중시 급제율이 17세기·18세기에 급격히 떨어지고, 산관의 중시 급제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와 18세기에는 중시가 참상적 중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중시가 새로운 인재를 탁용한다는 의미에서 보다 참상관의 승진을 위한 기회로 자리매김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시 급제자의 문과 급제 당시 전력을 살펴보면, 중시 급제자의 84%에 달하는 인원이 생원·진사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했다. 이것으로 보아 중시 급제는 요행이 아니라 강경과 제술을 두루 갖춘 학문적 소양이 높아야만 급제할 수 있었다. 중시 급제자의 문과 급제에서 중시 금제까지의 소요 기간은 당상관은 평균 16.1년, 참상관은 11.3년, 산관은 11.4년, 급제·권지는 4.8년이다. 문과 급제에서 중시 급제까지의 소요 기간은 문신들이 당상관까지 오르는데 16년 이상, 참상관이 되는데 11년 이상, 참하관이 되는데 최소 3년은 걸린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중시 급제자의 최고 관직을 조사한 결과 참상관은 75.3%가, 참하관은 47.9%가, 급제·권지는 40%가 당상관까지 승진되었다. 이것을 종합하게 되면 86%가 당상관에 승진한다는 결론이다. 이들이 역임한 당상관은 의정부·육조·사헌부·사간원·홍문관·성균관직이 주류를 이루며 특히 의정부·육조 당상의 점유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중시급제자가 조선 관료 사회의 학심을 이루는 관료층이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중시 급제자의 성관은 총 152개 성관이지만, 2명 이상 문과급제자를 배출한 성관은 80%에 달하고 있다. 또한 중시 급제자 가운데는 부자, 형제, 조부와 손자 등 한 집안에서 여러명의 급제자를 배출하는 사례가 17건이나 있다. 이러한 것은 중시 급제자는 학문적 소양이 높은 문신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특정 성관이나 가문에 편중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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