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방법 및 내용 |
주된 연구방법으로는 문헌분석연구와 동서비교연구, 문화사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지며 예측되는 ‘한국윤리문화’에 포함되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한국윤리라 함은 사람이 살아가며 개인 또는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道理) 및 규범이며 윤리문화는 한마디로 한국인의 삶의 양식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인 까닭에 개인적 욕구의 충족까지도 사회적 공동생활을 통하여 성취하려는 것이 보통이며, 따라서 한 사회적 공동목표의 달성과정에서 그 사회의 제 구성원들은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하여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즉, 찬양과 비난으로써 그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양자(兩者)가 어떤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만들어낼 때 관습(慣習)이 형성된다. 또한, 이러한 관습이 오랜 자기수정(自己修正)의 과정을 거쳐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될 때, 윤리(倫理) 또는 도덕(道德)으로서의 권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윤리라는 단어가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예기 禮記〉〉의 “악(樂)이란 윤리를 통하는 것이다(樂者,通倫理者也).”라는 표현에서이다. 정현(鄭玄)은 이를 해석하여 “윤(倫)은 유(類)와 같고, 이(理)는 분(分)과 같다”고 하였다. 윤리란 부류별로 구분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새길 때, 〈〈예기〉〉에 나타난 상기 표현의 취지는 결국 윤리와 음악을 대비시켜, 윤리가 그룹별로 구분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인데 반해, 음악은 이 구별을 완화시켜 조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설문해자 說文解字〉〉에 의하면, ‘윤(倫)’자는 人+侖으로서, ‘사려’ 또는 ‘조리’를 뜻하는 侖에 사람인변(人)이 붙은 것으로, 인간사의 조리를 뜻한다. 한편, ‘이(理)’자에 대해서는, “이(理)란 옥(玉)을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단씨(段氏)는 이것을 해석하여, “〈〈전국책 戰國策〉〉에 정(鄭)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옥을 가공(理)하지 않은 것을 박(璞)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때의 ‘이(理)’란 가공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견고한 옥(玉)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가공하는 이치를 터득하면 기물(器物)을 만들기 어렵지 않으니, 이것을 이(理)라 한다.”고 하였다. 종합하면, ‘윤(倫)’이란 ‘인간사의 조리’, ‘이(理)’란 ‘사물의 본성에 따라 쪼개거나 파서 가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윤리란 ‘인간사를 순리적으로 처리하는 것’ 또는 ‘인간사에 대한 합리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덕이란 용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도(道)’자는 처음에는 ‘길’이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시경 詩經〉〉에 나오는 “주나라의 길은 숫돌처럼 평탄하며, 곧기는 화살과 같다.”는 용법에서 알 수 있다. 이것이 차차 원칙 · 규율과 같은 뜻으로 확대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공자(孔子)는,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에 거처하며, 인(仁)에 의거하고, 예(禮)에서 노닌다.”라고 하였고, 또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도 하였는데, 여기서 사용된 ‘도(道)’의 용법은 대략 사람이 따라야 할, 또는 치국의 근본원칙이라 파악할 수 있다. 노자(老子)의 ‘도(道)’ 개념은 공자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는 ‘도(道)’를 우주의 본체로 파악한다.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고 한 것에서 그 용법을 알 수 있다. 노자의 ‘도(道)’ 또한 윤리학적 관점에서는 행위의 최고원칙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점에서는 공자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덕(德)’자는 〈〈우서 虞書〉〉의 “극명준덕(克明峻德)”이란 표현에서 처음 나타나며, 그 뜻은 내면의 감정 혹은 신념을 의미한다. ‘덕(德)’에 대해서도 유가와 도가의 해석은 약간 다르다. 유가에서는 구체적인 실행에서의 모종의 원칙이라 생각한다. 주자(朱子)는 “덕(德)에 거처한다”는 공자의 말에 대해, “덕(德)이란 얻는 것이다. 마음 속에 도(道)를 얻어 이를 잃지 않음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즉, ‘덕(德)’이란 도덕적 최고원리인 도(道)를 내면화시켜 구체적 행위에서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장자(莊子)는 ‘덕(德)’을 “사물이 그것을 얻어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천지만물의 전체적 자연이 도(道)이며 각종 사물이 얻은 바 자연을 덕(德)이라 파악했다. ‘도(道)’와 ‘덕(德)‘에 대해 유가와 도가의 입장은, 유가가 이것을 인간적 차원에 국한시켜 해석한 데 반해, 도가는 자연일반으로 확대시킨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윤리학적 차원에서 ’도(道)‘를 객관적 규범으로, ’덕(德)‘을 내면적 가치로 삼으며, 내면적 가치가 객관적 규범으로부터 유래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볼 때 동양의 윤리 또는 도덕개념은 처음부터 철저히 자연의 원리나 이법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한국에서의 윤리개념 또는 윤리관도 바로 이러한 동양적 개념의 범주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 한국 윤리의 역사 ]
동서양의 윤리이론사가 철학사 또는 사상사의 맥락 속에서 찾아지듯, 한국의 윤리사도 한국철학사 혹은 한국사상사의 맥락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부터 한국에 존립하여 온 전통사상은 토속적인 무교(巫敎)와 외래로서 한국화한 유교(儒敎) · 불교(佛敎) · 도교(道敎)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윤리사는 이 전통사상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전통사상들 속에 깃든 윤리가 곧 한국의 윤리사이다. 이와 같은 한국의 윤리를 역사 사실에 입각하여 고찰하려면 몇가지 방법론상의 문제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이 사상들이 일시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토속적인 무교가 먼저 있던 터(조건)에 유 · 불 · 도의 외래사상이 들어왔다. 또, 외래사상의 전래 수용에도 서로 차이가 있으며, 유행에도 시차가 있었다. 따라서, 이 사상들에 대한 고찰은 마땅히 시차관계의 시대별 고찰로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이 사상들이 다 존재할 경우에도 이것들이 반드시 동등한 세력으로 유행 병존하지 않았음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일정한 사상이 이데올로기화할 때에 그 일정한 사상은 한 시대사상으로 보다 우세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므로 시대별 고찰에서는 사상의 주류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동서를 막론하고 윤리가 철학적 사고의 배경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지만, 동양전통사상에 있어서는 이것이 더욱 더 그렇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동양의 전통사상들은 철학 이외에 종교 · 정치 사상의 특성을 매우 많이 지닌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각 사상간의 연관관계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이 사상들은 서로 내용에 있어 상동점(相同點)과 함께 상이점(相異點)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상들 간에 동화와 아울러 배척 · 갈등하게 되는 원인이다. 따라서, 이 사상들이 서로 어떤 점에서 동화 · 배척 · 갈등하게 되는가에 주목하여야 한다. 다섯째, 시대별 사상의 주류가 다르고 각 사상간의 내용에 있어 상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윤리에는 변치 않는 구조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로 다른 사상이 유입되어도 그 사상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한국 윤리적인 특질을 나타내게 한 요인이 된다.
(1) 고조선 · 삼국시대
한국 고대사상의 기원은 원시무교(샤머니즘)의 풍토였지만, 단군(檀君)시조가 펼친 인간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여 밝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홍익인간(弘益人間) 윤리가 건국이념, 교육이념, 인간주의적인 윤리이념의 근간이 되어왔다. 삼국시대에 유 · 불 · 도 3교가 전래 수용되었고, 통일신라기에 그 3교가 유기적으로 응용되면서 각기 토착의 뿌리를 내렸지만, 3교의 응용이나 토착화 역시 무교의 터전에서 이루어졌다. 이때까지의 사상의 주류는 무교였다고 할 수 있다. 무교의 세계에 있어 윤리의식은 주로 신화(神話)와 제천행사(祭天行事)에서 이루어진다. 단군신화(檀君神話) · 주몽신화(朱蒙神話) · 박혁거세신화(朴赫居世神話) 등과 영고(迎鼓;부여) · 동맹(東盟;고구려) · 무천(舞天;예) · 한가위(신라) 등의 제천(祭天) 및 시조제(始祖祭) 행사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자료들로 보면, 당시 선악의 윤리관념은 천신 · 시조신에 대한 일정한 태도 및 행동이라고 믿었다. 이를테면, 천신에 대한 보본(報本)의 태도라든가 시조 조상에 대한 효(孝)가 곧 선(善)이라고 생각되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을 실현하는 데는 엄숙과 경건성이 요구되는 한편, 가무(歌舞)와 같은 풍류(風流)적 태도로서의 신바람이 항상 같이 한다. 위의 각종 제천 및 시조신 행사들이 단순한 윤리적 의식일 뿐만 아니라, 풍류문화가 같이 깃들어 있음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엄숙과 경건성이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풍류적 태도는 도덕적 엄숙주의로 흘러 소원해질 수 있는 하늘과 인간 혹은 인간 상호간의 구별을 완화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도덕과 풍류의 묘합이라 할 수 있는 이것은 마치 유교의 예약사상과도 통하며,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윤리개념구조는 이후 어떤 외래사상이 들어와도 변치 않은 문법이 되고 있다. 한편, 제정(祭政)의 분화가 시작되고 유 · 불이 수입되어 왕권이 강화되면서부터는 지금까지의 무교적 주류의 지위가 특히 불교와의 갈등 속에서 흔들리게 된다. 즉, 무 · 불간의 갈등현상은 단순한 정치역학의 변화뿐만 아니라, 윤리의식의 변이까지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은 무교의 주류적 지위 속에서 점차 불교가 윤리의식을 점차 지배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현묘한 도(玄妙之道)’로서의 ‘풍류’가 유 · 불 · 도의 사상을 다 포함하였고, 화랑(花郞)들이 충 · 효 · 신 등의 계율(戒律)을 지킨 사실은 윤리의식이 이미 무교의 차원을 넘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때부터 한국윤리의 특징적 문법의 하나가 되고 있는 다색편시적 공존논리[syncratism]가 잉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서로 성격이 다른 외래의 종교 내지 사상이 들어와도 처음에 기존 사상과 다소의 갈등을 겪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서로 조화와 타협하면서 공시적으로 한국인들의 윤리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2) 고 려
고려기(高麗期)에는 무 · 유 · 불 ·도가 다 공시적으로 병존하던 시대였다. 무교는 산천제 · 조상제 · 기우제의 사상적 근거였고, 팔관회 · 연등회에 일종의 기복행사의 성격도 겸하게 할 만큼 불교와 습합하는 힘을 발휘하였다. 도교는 ‘복원관(福源觀)’의 설립을 통해 교단을 조성하는 한편 왕실수호종교로 대우받았으며, 무교적 산천신앙사상과 깊이 습합한다. 풍수 · 도참이 역사상 최고로 흥성한 것도 당시의 이같은 경향에 말미암은 바 크다. 유교는 고려초부터 과거제의 시행을 비롯하여 많은 관료제의 확장을 뒷받침하면서 통치원리로서도 상당히 이용된다.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부터 이미 정책으로 추진되던 효(孝)를 중심으로 한 예속화의 측면에 있어서도 유교는 큰 영향을 끼친다. 고려에서의 효의 시행은 법률의 뒷받침을 받으며 상벌을 통해 장려되었고, 국왕의 시호에 효자(孝子)를 많이 넣을 정도로 중요시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공시적으로 여러 사상이 공존하면서도 당시의 시대사상으로서는 불교만큼 각광을 받지 못하였다. 고려의 국교는 불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중세사상은 불교로 대표된다. 당시 불교의 윤리의식은 각종 법회(法會)를 통한 선(善)지향의 계율의식이 가장 손꼽히는 것이다. 팔관회(八關會) · 연등회(燃燈會) · 인왕백고좌회(仁王百高座會) · 점찰법회(占察法會), 특히 팔관회와 점찰법회를 통한 ‘계율’의 수련과 ‘선악업보(善惡業報)’의식의 강화가 곧 그것이다. 한편, 여기서도 팔관회 · 연등회 등을 통한 계율의 수련에는 풍류적 문화가 같이 곁들여졌음은 물론이다. 이는 무교와의 습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지만, 이처럼 도덕적 엄숙과 풍류적 문화의 묘합구조야말로 한국적인 불교윤리를 형성하게끔 하는 요인인 것이다. 또, 이러한 점에서 신라 때의 원효(元曉)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든지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과 같은 한국적 불교윤리가 나올 수 있었고, 불국정토사상(佛國土思想)과 호국불교사상(護國佛敎思想)도 이해될 수 있다.
(3) 조 선
근세 조선에서처럼 통치원리 이외의 사상을 탄압 배척한 예도 보기 드물다. 유학, 그 중에서도 성리학만이 통치원리로 채택되어 정통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밖의 사상은 모두 이단시되던 것이 조선조였다. 물론, 이처럼 탄압 배척을 받는 환경 속에서도 내부적으로는 무 · 불 · 도가 공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산천제 · 기우제 · 성황제 등은 여전히 무교의 영향 하에서 시행되었고, 전에 보지 못하였던 민간신앙 형태의 동제(洞祭)를 주도하는 것도 무교였으며, 유교형식을 빌려 궁중에서 행한 나례(儺禮) 역시 무교의 영향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도교는 ‘소격서(昭格署)’의 혁파 등으로 부침이 무상하였지만, 궁중과 민간인 사이에서 보이지 않은 영향력을 상당히 편 것이 사실이다. 불교 역시 조선초부터 양반계층 사대부의 강력한 배척으로 이전과 같지는 않았지만, 왕후와 양반가 부인들의 비호 아래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전시에는 승군 등의 활약까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모두 지배층 사대부들의 탄압과 배척하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어느 사상도 과거에 비하면 쇠퇴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때에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시대사상으로 군림한 것은 역시 유학이요, 그 중의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이 마치 국교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세의 대표적인 사상은 성리학이라 하여도 무방하다. 조선조 성리학의 세계에서의 윤리의식은 〈〈가례 家禮〉〉와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의 철저한 시행(14c), 〈〈소학 小學〉〉에 의거한 수련(15 · 16c), 심성설(心性說;四七論, 人心道心論)의 연구를 통한 유교예(儒敎禮)의 합리화(16c) 및 당쟁까지도 예(禮)의 시각에서 하였던 예의식에서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충효열(忠孝烈) 중심의 윤리행의 실천 생활화와 그 이론적 합리화가 이 시대의 윤리의식의 대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조 때는 예이론(禮理論)이 발전하고 예송(禮訟)이 격화되는 것으로 보아 한국윤리의 묘합적 구조의 한 축인 풍류적 혹은 악(樂)적인 요소가 없었던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조선후기에 예의 정치이데올로기적 경쟁수단으로의 이용에서 비롯된 특수한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고, 세종이 보여준 음악진흥책, 사대부들이 읊은 시조 속에 넘쳐흐르는 은은한 가락, 양반을 욕보이는 광대놀음에서의 해학의 허용 등은 항상 예(禮)의 엄격성이 강해짐에 비례하여 강조되었던 악(樂)적인 근거들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상적 풍토 속에서만이 이황(李滉)의 ‘이(理)’개념의 묘합적 측면도, 이이(李珥)의 ‘이기지묘(理氣之妙)’, ‘이통기국(理通氣局)’의 논리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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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우리 한국을 옛 중국사람들은 '東方禮義之國'이니, '君子之國'이니 하며 아주 존중해 왔고 살기 좋은 나라로 부러워해 왔다. 그리고 중국 古史書에도 보면, "인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禮儀인데 예의를 잃거든 조선에 가서 배워 오라."고 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인간의 倫理와 禮를 중시하면서 살아왔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사실 우리 민족은 옛 조상때부터 孝를 중심으로 한 家父長權의 가족제도와 확고한 윤리의식 속에 미풍량속을 이루면서 살아왔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義理있는 민족으로 가정과 국가를 지켜온 민족이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는 어이없이 도덕 불감증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사회의 혼란과 불안으로 극심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윤리문화라 함은 사람이 살아가며 개인 또는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 및 규범이며, 윤리문화는 한마디로 한국인의 실천적인 삶의 양식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입문 교양서서겸 전문서 성격을 띤 『한국윤리문화사』를 집필한 첫번째 이유는, 현대 우리사회의 갑작스런 인간가치의 근본이 무너지는 인문학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출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번째 이유는 기존의 한국윤리와 관련된 저서들이 한문으로 된 전통규범문화나 전통사상을 단순히 시대 구분하여 번역 서술 하고 있지만, 그것도 전문적 시각을 갖고 들여다보면 외래 불교문화나 유교문화의 유래과정과 정착화 되는 특성의 서술이 대부분이어서, 체계적인 한국적 규범문화의 원리나 방법,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개척의 여지가 많다. 따라서 현대적인 개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윤리문화'의 개념을 원용하여 기존의 저서내용들을 재조명하고 규범문화사적인 시각으로 분석했다. 세번째는, 윤리의 본질에 대한 폭넓은 동서 비교연구를 통해 현대의 윤리문제의식을 일깨워주고 한국학의 인문적 대안인 '윤리문화'와 시대적인 그 특성을 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윤리문화사」를 집필한 가운데 한국인의 뿌리가 되는 정통윤리사상과 위대한 문화가치를 통시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본다. 어제없는 오늘이 없고 조상없이 자손이 있을 수 없듯이, 전통과 현대는 반드시 조화되어야 하며, 그 가운데 한국적 윤리문화와 사상은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창출의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뿌리요, 가치관이 되어온 우리의 정통윤리문화와 사상은 민족적인 특수성을 띠면서도 인류를 위한 보편적 가치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세계화시대에 기여도가 클 것이다.
『한국윤리문화사』 내용체계는 제1부와 제2부로 나누며 제1부 2장에서는 윤리문화이해를 위한 윤리학분야의 기본지식으로 서양윤리에서 쟁점이 되거나 중요하게 인식되어온 윤리의식, 윤리의 진위성(도덕성의 인격적 성격), 삶의 지혜로서 윤리, 가치와 윤리, 절대론적 윤리의 회의, 도덕의 기준, 자연주의와 합리주의, 실천윤리과제 등을 개념화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3장에서는 윤리적가치의 궁극목적이기도 한 영역이며 종교철학이나 도덕철학에서도 주요대상인 동서의 절대가치변천을 논하고 있다. 4장에서는 한국윤리문화의 개관을 통해 2부에서 다루려고 하는 한국윤리문화사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의 이해를 돕고자 했으며, 5장에서는 필자가 현대 한국사회문제의 주요쟁점 가운데 평소 관심도가 높은 분야 즉 민족전통사상의 평화윤리문화 모색, 지식정보화시대 가치문화의 혼돈과 윤리적 대응, 반부패의식과 제도로서 전통적인 청백리의 규범문화를 제한하여 다루었다.
제2부에서는 한국윤리문화를 역사적으로 접근하였으며 시대적인 구분으로 1장에서는 고대 윤리사상과 문화, 2장에서는 삼국시대의 윤리사상을 다루며, 3장에서는 고려시대의 윤리사상과 문화, 4장에서는 조선시대의 윤리사상과 문화, 5장에서는 근대윤리문화를 다루었다. 다음의 기회를 위하여 이상의 연구결과로 한국 고유한 윤리문화의 특성과 가치를 발견하고, 나아가 미래사회를 위한 창조적 적용가능성의 필요성을 갖게 된다.
○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
일상생활에서 도덕규범문화 자체가 자유스런 것보다는 부자유스럽고 불편하며 전근대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남을 배려하는 일상생활의 기본태도는 물론 공동생활의 질서의식의 중요성을 포함한 윤리문화사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자체가 한국사회의 규범문화를 성숙되게 하는데 기여도가 크리라 본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로 저술된 택스트는 정규교육의 학생들이나 비정규교육의 일반대중에게도 가깝게 다가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윤리문화 제시로 선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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