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단독논문게재형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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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2008-28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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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정치영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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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8-04-17 ~ 2008-11-30 | 연구형태 | 개인과제 |
연구목적 및 배경 | 옛 사람들의 여행을 분석한 연구동향을 살펴보면, 먼저 해외의 경우, 일본의 지리학자들은 ‘도중일기(道中日記)’라는 기행문 자료를 이용하여 18-19세기 여행자들의 여행경로를 복원·분석하고, 여행자들의 행동과 그들이 가진 장소이미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서양의 지리학에서도 18-20세기에 식민지를 여행하고 기록한 유럽인들의 여행기(travel writing)를 통해 과거 특정지역의 사회현상을 분석하거나, 유럽인의 눈에 비친 식민지의 성격, 여행자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장소 이미지 등을 규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1500년대 이후에 발가되니 여행기를 대상으로 지리학 뿐 아니라 역사학·인류학·문학 등의 학문분야가 결합하여 학제적 연구를 수행한 결과물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사랃들의 여행을 다룬 연구들이 문학 분야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유산시(遊山詩)나 유산기(遊山記)를 분석하여 당시 사대부들이 여행을 한 뒤 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는지를 고찰하는 연구가 많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유산기를 이용하여 당시 사람들의 여행 동기와 성향 등을 고찰하거나, 연행록(燕行錄)을 이용하여 여정 분석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역사학 분야에서는 여행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으나, 일기를 비롯하여 보다 다양한 문헌자료들을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한편 서구와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지리학계에서는 아직까지 과거 사람들의 여행을 시공간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드물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본 연구자는 조선시대 저술돤 ‘금강산유산기(金剛山遊山記)’와 ‘청량산유산기(淸凉山遊山記)’를 자료로 사대부들의 금강산과 청량산 여행관행을 고찰한 바 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금강산과 청량산 여행은 유사한 면이 많으나, 여행자의 성격·여행·동기·여행 시기·여정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연구는 이들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선행연구를 통해 고찰한 사대부들의 금강산·청량산 여행관행과 비교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산 가운데 하나이며, 금강산·청량산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지리산을 어떤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여행하였는지를 고찰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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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이 연구는 유산기에 대한 기존 연구 성과의 검토와 더불어 지리산을 대상으로 조선시대에 저술된 유산기를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산기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현재 약 560편의 작품이 전해지는데, 그중 지리산 유산기는 70여 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산기는 대개 개인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어 이를 수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발간한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지역별로 유신기를 모아 영인한 『한국역대산수유기취편(韓國歷代山水遊記聚編)』, 그리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국국학진흥원이 제작한 『조선시대유산기』 사이트를 통해 총 55편의 지리산 유산기를 수집하였다. 수집한 유산기들은 먼저 저자 및 시대별로 분류한 후, 내용을 개략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박민(朴敏)의 『두류산선유기(頭流山仙遊記)』, 허목(許穆)의 『지리산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 성해응(成海應)의 『지리산산수기(智異山山水記)』, 황현(黃玹)의 『유방장산기(遊方丈山記)』 등과 같이 여정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내용이 빈약한 것은 연구 자료에서 제외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연구 자료로 선정된 유신기는 모두 22편이며, 시기별로는 조선전기의 작품이 3편, 조선 중기의 것이 10편, 조선 후기의 작품이 9편이다. 자료로 사용한 유산기의 형식은 작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첫머리에 유람의 동기나 목적, 동행인을 기술한 다음 날짜 별로 유람을 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하고 있어, 이를 분석하면 작가의 여행과정과 함께 여행지역의 당시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연구자료로 선별된 유산기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하게 내용을 분석하며, 유산기의 저자에 대한 검토도 병행하였다. 저자에 대한 검토는 저자의 출신 성분, 거주지, 사상적 배경, 교유관계 등에 집중하여, 지리산 여행의 동기, 동반자와의 관계, 주요 방문지점과 여행 중 방문인사에 대한 분석 자료로 활용하였다. 유신기의 내용분석에서는 여행 시기, 기간, 동반자, 경로, 숙박지, 교통수단, 주요 방문지점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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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지리산 여행자는 금강산·청량산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모두 사대부계층이었다. 이들은 연령대, 경력, 사승관계는 다양한 양상을 보였으나, 대부분의 여행자가 지리산 인근지역에 거주하였다는 점, 관직에 관계없이 지조와 절개를 지닌 인물이었다는 점, 산수를 유람하는 취미를 가졌다는 점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산 여행의 동기로는 먼저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하고 심신을 수련하기 위한 것을 들 수 있다. 금강산의 그것과 비교할 때, 특히 산 정상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리산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산재한 선인들의 발자취를 탐방하는 것도 여행 동기가 되었는데, 이상향인 ‘청학동’ 탐색, 최치원·조식 등의 유적 답사가 중요하였다. 유람을 통하여 현실세계의 어려움과 모순을 잊으려는 노력도 여행 동기로 꼽을 수 있다. 지리산 여행자의 여정은 금강산·청량산 여행자의 그것에 비해 개인에 따라 차이가 많았다. 출발지가 다양한 데다 지리산 내의 여행 기점도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발지에서 지리산까지의 왕로에 비해 지리산에서 돌아가는 귀로의 여정이 거리와 기간 모두 더 짧았다. 이 점은 대체로 귀로가 왕로보다 더 길었던 금강산 여행자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지리산 내의 여정은 크게 ①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을 오르기 위한 여정, ②청학동(靑鶴洞)이라는 신선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알려진 지리산 남사면의 화개계곡을 방문하는 여정, ③이 둘을 겸하는 여정, ④기타 여정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①번 여정은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키우고자 했던 이들이 주로 선택하였으며, ②번 유형은 지리산의 역사적 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은 사람들, 특히 최치원을 흠모하는 이들이 많이 선택했다. ③번 유형은 지리산 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지리산의 곳곳을 빠짐없이 여행하고자 선택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리산 내의 주요 경유지로는 주된 숙박지로 이용된 군자사·쌍계사·신흥사 등 사찰과 최고봉인 천왕봉, 그리고 ‘청학동’ 등의 전설과 관련된 장소와 최치원·조식과 관련된 유적 등이었다. 금강산·청량산 여행과 달리 지리산 여행은 봄과 가을에만 이루어졌고, 특히 가을에 여행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지리산 여행자는 선인들이 남긴 유산기를 이용해 미리 여행 준비를 하였으며, 말과 식량, 취사도구, 옷과 침구, 문방구 등의 준비물을 챙겨 여행에 나겄다. 여행의 동반자는 친구와 가족이 주를 이루었으며, 악공과 승려가 동반하였다. 왕로와 귀로의 주된 교통수단은 말이었고, 지리산 내에서는 17세기를 전후하여 도보에서 남여로 교통수단의 변화가 생겼다. 왕로와 귀로에서의 숙박 장소로는 친지의 집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고, 그 밖에 관아, 역, 그리고 조선말기에는 주막이 이용되었다. 지리산을 유람하는 동안에는 여행자들이 주로 사찰에서 숙박하였다. 식사 역시 왕로와 귀로에서는 친지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산중에서는 사찰에서 제공받거나 동행한 노복이나 승려를 시켜 밥을 해 먹었다. 또한 이동 중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였다. 여행 중의 활동으로는 친지 방문, 승려와의 토론과 시작(詩作), 제명(題名) 등이 중요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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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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