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단독논문게재형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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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2008-22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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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박정혜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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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8-04-15 ~ 2008-11-30 | 연구형태 | 개인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이 연구의 목적은 17세기 문집에 나타난 많은 수의 계병 서문을 분석하여 같은 시기 계병 제작의 경향과 특징을 살펴보고 실제 남아 있는 작품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17세기 계병의 성격과 회화적 특징을 분석하는 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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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17세기 문집에 나타난 많은 수의 계병 서문을 분석하여 같은 시기 계병 제작의 경향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17세기 계병에 대한 개별 작품의 소개는 있었지만 국가 행사의 기념화라는 측면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계병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미흡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새로 발굴한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8첩 병풍인 《顯宗丁未溫幸契屛》을 바탕으로 17세기 稧屛의 제작 양상, 특히 산수화를 주제로 한 계병의 특징, 현종의 온양 이용과 《현종정미온행계병》의 제작 동기 및 특징, 청록산수의 양식 등을 정리해 보았다. 아울러 《현종정미온행계병》을 포함한 17세기의 현전하는 약간의 계병을 통해 보다 자세한 계병의 초기 양상을 규명하였다. 특히 남아 있는 17세기의 계병이 대부분 청록산수인 점에 근거하여 채색화로서 계병의 특징도 아울러 살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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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17세기의 계병으로 처음 소개한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현종정미온행계병》은 국왕의 궁밖 행행을 다룬 계병이라는 점에서 18세기의 《화성능행도병》에 비견되며 王維의 輞川圖를 주제로 한 청록산수병풍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을 밝혔다. 17세기의 계병에서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은 이른 시기의 계병에는 행사의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산수나 고사도가 선호되는 주제였다는 점이다. 이 점은 계병의 전성시기인 18세기 및 19세기와 차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병풍은 화축이나 화첩에 비해 장황 비용이 많이 들고 더구나 청록산수화, 즉 채색화로 제작하려면 공역비가 적지 않게 들었다. 따라서 계병은 도감의 경우는 당상관 위주로 분상되었으며 그러지 않을 경우에도 분배 범위가 넓지 않고 몇몇 관원들끼리 나누어 갖는 그림이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여러 벌의 계병을 소유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결국 계병의 기능은 사실의 기록과 기념에서 확대되어 집안에서 실제로 장식병풍이나 가구의 한 종류로 사용하였으며 높은 관직에 이른 관료들의 명예를 과시하는 방편으로도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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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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