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단독논문게재형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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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2006-22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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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신대철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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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6-03-31 ~ 2006-11-30 | 연구형태 | 개인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조선조 궁중의 향악과 당악은 조선조 후대로 오면서 어떻게 쓰였을까? 특히 조선조 초까지만 해도 그 수가 적지 않았던 이 두 갈래의 궁중음악이 중종대(1506~1544)에서 경종대(1720~1724)에 이르는 20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에는 어떻게 지속되었을까? 이 두 갈래의 음악 중 어떤 곡들이 이 오랜 기간 동안, 어떤 목적으로, 궁중의 어떤 장에서, 어떻게 연주되었을까? 이러한 점들은 연구자의 오랜 지속적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점들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아 위 시기의 조선조 궁중의 향악과 당악의 지속 과정을 밝혀 한국음악사 이해의 지평을 조금이라도 넓혀보려 함에 이 연구의 목적과 배경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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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위 연구에서 다룬 내용과 범위는 다음과 같으며, 이 연구는 문헌조사와 비교 및 분석의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중 『중종실록』, 『명종실록』,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仁祖實錄』, 『효종실록』, 『현종실록』, 『숙종실록』, 『경종실록』, 『숙종기해진연의궤』의 음악 관련 기사 중 향악과 당악의 쓰임, 지속,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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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이 연구의 결과로 아래와 같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보태평과 정대업은 선조대(1567~1607), 광해군대(1608~1623), 그리고 숙종대(1674~1720)에 종묘가 아닌 제례에서도 쓰였으나, 선조대 이후에는 연향악으로는 쓰이지 않았다.
향악: 여민락(만과 령 포함) · 정읍만기 · 유황곡 · 정동방곡 · 향당교주
위 향악곡과 당악곡 모두는 숙종대에 연례악으로서 강한 실존력을 갖춘 음악이었다. 그리고 일부는 고취악(밑줄 친 곡)의 실존력도 갖춘 음악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확인된 재미있는 사실 둘은 당악곡이 향악곡보다 훨씬 수가 많았고, 정재에서는 향악정재만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재를 포함하여 숙종대의 기록에 담긴 위의 향악곡과 당악곡만을 소멸되지 않고 당시로 지속되어 연주된 음악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분명히 이보다 더 많은 향악곡과 당악곡이 존재했었고, 또 후대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후속 연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논구되어야 할 과제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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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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