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단독논문게재형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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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2006-21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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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김영운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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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06-03-22 ~ 2006-11-30 | 연구형태 | 단독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이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조선아악』에 수록된 1913년 고종 탄신일 축하연에서 연행된 악무(樂舞)에 관한 연구이다. 본 연구과제는 장서각 소장 『조선아악』 소재 연향 기록을 중심으로 이 시기의 변화된 왕실 연향의 실체를 파악하고, 조선시대의 연향과 비교하여 변화된 왕실의 위상에 따른 의례상의 차이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특히 악무에 드러나는 변화의 양상을 살펴 일제강점기의 왕실의례에서 전통적인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이 교체되는 양상과 그 사회 · 문화적인 배경을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아울러 이 연구는 지난 3개년 간 수행해 온 〈조선후기 궁중연향 연구〉 중 악무(樂舞) 관련 연구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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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이 연구의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었다. - 『조선아악』 수록 탄신일 축하연 관련자료의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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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이 논문에서 살펴본 1913년 고종 탄신일 축하연의 형식과 내용은 조선시대나 대한제국기의 국가적인 연향인 진연 · 진찬 등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처럼 왕실의 의례가 변화를 보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국권을 상실한 이후이기 때문에 고종에게 한 국가의 군주에 해당하는 예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의례의 형식과 내용이 큰 변화를 보이는 또 하나의 요인은 왕실 의례의 서구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축하연의 준비과정에서부터 전통적인 진연이나 진찬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였으며, 외빈이 참석하는 잔치는 서양식 연회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장소와 음식이 모두 서양식으로 준비되었고, 연회의 주악도 서양음악이었다. 이 축하연에서 공식적인 의식음악의 일부분을 양악에게 내어주고, 대부분의 전통 악무가 '여흥(餘興)'의 위치로 밀려나게 된 점은 당시의 정치 ·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조선아악』의 관련기록을 통하여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서 다양한 민간음악이 공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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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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